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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 대모 2인의 '디지털' '아날로그'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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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무용 대모 2인의 '디지털' '아날로그' 무대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6.08 07: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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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안애순 '공일차원'...전미숙 '아모레 아모레 미오'

[스포츠Q 용원중기자] 한국 현대무용 대모 안애순(55·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 전미숙(57·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의 작품이 지난 5~7일 각각 대학로 무대에 올려졌다.

이화여대 무용과 출신인 두 사람은 미국 스타일의 현대무용을 국내 첫 도입한 스승 육완순 등 현대무용가 7명과 함께 ‘세계현대무용사전’에 등재된 바 있다. ‘작은 체구의 카리스마’ 안애순이 근대화 과정 속 전통과 현대의 충돌, 타 장르와 협업에 집중하는 강단 있는 안무가라면, ‘조용한 도발자’ 전미숙은 소통과 관계라는 주제의식을 다분히 여성적이면서도 집요하게 표현하며 독특한 무대미술에 강점을 발휘하는 안무가다.

따라서 ‘공일차원’과 ‘전미숙의 아모레 아모레 미오’는 1990년대 이후 한국 현대무용을 주도해온 색깔 다른 두 안무가의 ‘동시대(컨템포러리)’ 작품을 ‘동시기’에 감상할 수 있는 흥미로운 기회였다.

대학로아트센터에 오른 안애순 국립현대무용단 예술감독의 신작 ‘공일차원(Zero One Dimension)’은 고도로 발달한 자본주의 시대, 불안과 위기의 암울한 상황에 처한 사람들이 영웅을 찾는 내용이다. 공연은 '공일차원'이란 제목처럼 디지털 시대의 주요 언어 0과 1, '있다'와 '없다', 현실과 가상, 위기와 구원이 공존하는 가상공간을 무대에 구축했다.

'공일차원'[사진=국립현대무용단 제공]

공포에 질린 표정으로 무대에 등장한 무용수들은 감정을 최대한 배제한 채 단순한 움직임을 반복했다. 서로 때리고 쓰러지는가 하면 칼을 휘두르고 총을 쏘는 동작, 로봇을 연상시키는 움직임, 사지가 뒤틀리고 바닥을 뒹구는 몸짓,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단말마의 비명에 가슴이 묵직해졌다. 이상향일 줄로만 알았던 디지털 환경에서조차 폭력과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며 기본적인 욕구를 박탈당한 채 게임이나 가상공간으로 빠져드는 현상을 몸으로 풀어냈기 때문이다.

영화감독이자 미디어 작가, 큐레이터로 활동해온 박찬경 감독은 공연의 시각연출을 맡아 우주공간 같은 무대를 꾸몄다. 천체와 행성 영상을 스크린에 투사하며 현대 사회에서 제대로 숨 쉬지 못하는 사람들의 폐를 상징하는 비닐 구조물을 설치함으로써 미래적 이미지를 구현했다. 어어부 프로젝트의 장영규는 음악을 맡아 가상현실에 어울리는 전자음과 효과음을 뒤섞으며 미래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무용수들의 동작은 불협화음과 조응하며 불연속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13명의 춤꾼이 무대 가장자리를 사각형으로 반복 질주하는 동작은 슬로모션처럼 이뤄지며 강렬한 인장을 남겼다. 남성 무용수가 깊은 잠에 빠진 여성의 몸을 제 맘대로 움직이는 장면은 성적·노동착취의 메타포로 읽혔다.

공연의 끝자락에 나타난 UFO. 그토록 기다리던 영웅이 등장할 것인가. 인간은 구원을 얻을 수 있을까. 선연한 물음표를 던진 채 막이 내려졌다.

‘공일차원’이 만만치 않은 무게의 다소 난해한 공연이었다면,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 오른 전미숙 무용단의 ‘아모레 아모레 미오(Amore Amore Mio·사랑 나의 사랑)는 흥미롭고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사랑의 속성을 풀어낸 ‘아모레 아모레 미오’는 2010년 초연 당시 3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고 춤 비평가회의 '춤 비평가상'을 받은 작품이다. 초연 때 출연했던 신창호 차진엽 김동규 최수진 김보라 위보라 박상미 등 거물급으로 성장한 한예종·LDP무용단 제자들이 그대로 나왔다. 여기에 최근 현대무용계 스타로 떠오른 이선태 정태민이 합류, 갈라쇼를 방불케 하는 9명 진용으로 관객을 매혹했다.

'아모레 아모레 미오'[사진=전미숙 무용단 제공]

공연 제목은 이탈리아 여배우 클라우디아 카르디날레 주연 영화 ‘형사’(1959)의 주제가 ‘시노메 모로(죽도록 사랑해)’에 나오는 가사에서 따왔다. 중장년층에게 절로 향수를 일으키는 명곡을 관통하는 정서를 육체언어로 형상화한 ‘아모레 아모레 미오’는 뜨겁고 황홀하지만 깨지기 쉬우며 구속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는 연인 사이의 여러 감정을 다채로운 장면과 움직임으로 담아냈다.

진부할 법한 ‘사랑’이라는 주제를 신선하게 덧칠한 동인은 오케스트라 피트까지 포함해 하나의 화폭이 된 무대, 미술적인 요소로 구성된 장치들과 더불어 무용수들의 탁월한 기량이었다.

주요 오브제로 등장한 커피잔과 받침은 향긋하고도 뜨거웠으나 이내 차갑게 식어버리고, 부서지기 쉬운 ‘위태로운 사랑’을 상징했다. 장엄한 검은색 그랜드 피아노는 무용수들이 춤추고 드러눕는 서브 스테이지로 기능했다. 피아노 위에서 토해내는 사랑에 대한 정의와 다양한 뜻을 내포한 복잡한 감정은 한 음, 한 음 소리를 내는 듯했다.

스타 무용수들은 현란한 테크닉을 과시하기보다 절제된 춤과 일상성을 띈 움직임으로 현실의 사랑을 무대로 끌어냈고, 객석에 전달했다. 공감의 폭은 넓어질 수밖에 없었다.

거의 공연 내내 무대를 지킨 신창호 전 LDP 대표의 낭비됨이 없는 동작, 쉴 새 없는 움직임으로 피아노 위 독무를 펼친 박상미, 위트 넘치는 대사의 렉처 댄스를 시도한 김보라, 묵직한 존재감을 뿜어낸 차진엽과 깃털처럼 가볍고 예리한 최수진은 인상적이었다. 압권은 도입부 아코디언 연주에 맞춘 전미숙의 독무. 핀조명과 함께 점점 줄어드는 사각 프레임에 갇혀가는 여인의 회한과 절규는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안무가에 앞서 그는 독보적인 춤꾼이었다.

‘시노메 모로’가 흐를 때 남녀 무용수들이 흰색 원피스를 입은 채 시도하는 단순한 팔 동작은 코믹하면서도 중독성이 강렬했다. 아코디언 인스트루멘털, 오페라 아리아, 미사곡, 영화음악, 찻잔 진동 효과음으로 감정의 스펙트럼을 넓힌 음악 역시 매력적이었다.

‘공일차원’과 ‘아모레 아모레 미오’는 결이 다른 작품임에도 절제된 움직임, 대사 활용, 무대·음악 등 타 장르와 통섭을 통한 종합예술 추구라는 측면에서 요즘 현대무용의 한 특징을 공통적으로 보여줬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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