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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임흥순, 노동의 역사 찍어낸 '위로공단'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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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임흥순, 노동의 역사 찍어낸 '위로공단'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8.13 0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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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으로 세계 최고 권위의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본 전시에서 한국인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46). 미술작가와 감독의 경계에 우뚝 서 개인의 삶과 현대사의 굴곡을 정밀 묘사한다.

부모의 사진첩과 가족사진을 찍는 과정을 기록한 비디오를 통해 개인의 역사를 재구성·사회화시킨 ‘추억록’, 가난의 이념을 독특한 형식으로 구현한 ‘내 사랑 지하’, 베트남전과 이란·이라크전을 경험한 이란 여성의 시선으로 전쟁의 역사를 조명한 ‘환생’, 반복되는 역사와 지속되는 인간의 삶을 담아낸 ‘숭시’, 제주 4.3항쟁 역사와 93세 강상희 할머니의 파란만장한 삶을 엮어낸 ‘비념’ 등이 빼곡한 임흥순의 시각예술 아카이브에 꽂힌 최신 파일이 ‘위로공단’(8월13일 개봉)이다. 저마다의 꿈과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해 온 여성 노동자들의 40여 년을 기운 휴먼 아트 다큐다.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스에서 2년간 거주하며 지역 주민들과 영화를 만들 당시, 구로공단에서 일했던 언니를 둔 주민 연출가들의 이야기가 영화의 출발점이 됐다. 40년 넘게 봉제공장 시다로 일했던 어머니, 백화점 매장 일용직이었던 여동생을 둔 그에게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는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회의 모든 어머니, 여동생들에게 위로와 존경을 건네고자 했던 작품은 단박에 세계를 매혹했다. 베니스 비엔날레 심사위원단은 “자본 이동과 노동 변화에 따른 현실 불안을 예술적 언어로 써내려간 새로운 역사기록” “아시아 여성들의 노동조건과 관련된 불안정성의 본질을 섬세하게 살펴보는 영상작품”이라는 찬사를 안겼다.

“아프리카 출신으로 정치학을 전공한 오쿠이 엔위저 2015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은 예술의 사회적 역할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그래서 내 작업에 관심을 가졌지 싶다. ‘미술=개념·이론적’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전시장에 노동현실이 딱 펼쳐지니 파급력이 컸던 것 같다. 특히 노동문제는 앞서 유럽이 겪었고, 현재 아시아 국가들도 똑같은 상황이므로 공감의 폭이 넓었다. 예술이 시대적 요청을 품은 게 파격이자 이변으로 여겼다. 노동·자본의 이야기를 하더라도 중심에는 인간이 있음을 섬세하고 시적으로 풀어내 좋은 평가를 받은 듯싶다.”

 

각본·연출·촬영·편집을 도맡은 ‘비념’(2012) 전에는 일종의 제작자이자 매개자에 머물렀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가족이나 친구 이야기를 말할 수 있도록 영상을 미술적 도구로 활용했다. ‘비념’부터 본격적인 감독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작품엔 이전의 영상작업이 녹아들었다.

하지만 작가 임흥순의 영화에선 익숙한 영화문법인 서사가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는다. 사진이라든가 정적인 풍경, 인상적인 인터뷰 내용을 시각화한 퍼포먼스가 삽입됨으로써 ‘영화와 미술의 통섭’이라는 예술적 성취를 보여준다.

“예술의 역할은 사회가 만들어 놓은 질서, 규제, 통념을 해체하는 것이다. 미술과 영화라는 장르를 해체하고 확장시키는 게 나의 작업이다. 융복합이 트렌드이기도 하지 않나. 영화 ‘노예 12년’의 스티브 맥퀸 감독은 비디오 아티스트 출신이다. 미술작가 겸 영화감독인 내가 현대미술에서 흔한 사례는 아니지만 낯선 사례도 아니다.”

임흥순 작가는 경원대 회화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회화에서 시각예술로 작업방식이 바뀌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림이 어려웠다. 미술이 전시장 밖을 넘어, 대중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고민됐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삶과 밀접하게 관계맺는 것,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고민하다보니 회화보다는 비디오에 초점을 맞추게 됐다. 8mm 카메라를 들고 가족들을 찍다가 되돌려감기를 해보니 현실이 다르게 보였다. 카메라의 역할이 있겠구나 싶었다. 대학원 때부터 비디오작업, 설치작업 등 다양한 현대미술 작업을 하게 됐다.”

 

이후 대중의 삶 속으로 파고들었다. ‘도시+공공미술+지역 예술작업’의 성남 프로젝트, 외국인 이주노동자와의 미디어 워크숍, 2006년부터 2010년까지는 성산동 임대아파트와 등촌동에 들어가서 프로젝트 팀을 꾸려 영화를 만들고 미술작업을 했다. 그리고 금천예술공장 레지던스에서 주부 등 지역 주민들과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그들의 다양한 시선을 자양분 삼아 ‘위로공단’을 착상하게 됐다.

1970년대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노동현장을 지켜온 여성들의 땀과 눈물을 영상에 담았다. ‘위로공단’에는 임흥순 작가의 어머니를 비롯해 여성 노동자·감정치료사·연구원·꿈 해석가 등 21명, 역사의 현장을 직접 카메라에 담은 사진사 1명이 등장해 신념을 가지고 살아온 이들 특유의 솔직한 인터뷰를 들려준다.

영화가 완성되기까지 3년의 제작 기간, 65명의 인터뷰, 한국을 넘어 캄보디아·베트남을 누비는 시간과 공력이 투입됐다. 불발과 거절은 부지기수이고, 인터뷰를 따기 위해 6개월을 기다려야 했던 경우도 있을 정도였다.

“미술 하는 사람들의 욕심이자 단점이기도 하다. 영화감독은 하나의 인물로 쭈욱 끌고가며 서사를 구축하는데 미술작가는 조각조각 파편화한다. ‘위로공단’에선 서로 다른 세상을 많이 보려고 여러 직군, 분야의 사람들 인터뷰를 등장시켰다. 삶에서 일이란 무언지, 삶과 일의 문제는 무언지를 각자 달리 해석했으면 했다. 작업을 진행하다보니 위로와 감사의 의미로 시작했는데 점차 20대를 위한 마음이 커졌다.”

 

과거 세대에 비해 내면의 압박과 고통이 심해진 청춘들이 부모님 세대와 선배들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바라봄으로써 자신의 변화를 이루는 것과 동시에 일의 의미를 되새김질했으면 한단다.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해 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도움이 되고 싶은 마음에 베니스 비엔날레 버전엔 없던 20대 물리치료사 엔딩 컷을 넣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선택하는 삶, 자기가 잘하는 것을 시도하는 사회를 지향한다. 각자 잘 하는 걸 살려주는 게 중요하다. 그래야 다양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되지 않겠나. 이를 위해 난,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계속 만들어 나갈 거다.”

[취재후기]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꾸준히 작업해왔는데,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 이후 국내에서 대대적인 관심을 얻는 현실이 씁쓸하진 않느냐고 질문했다. “자신의 작업을 진득하게 해오고, 꿈을 잃지 않는다면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로 받아 들이겠다”고 답했다. 베니스의 안목이 녹록치 않음을 새삼 느낄 정도로, 세상을 이해하는 시선이 깊고도 넓은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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