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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열전] 출구잃은 청춘의 민낯 '유나의 거리' 김옥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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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열전] 출구잃은 청춘의 민낯 '유나의 거리' 김옥빈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25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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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지난해 사극 ‘칼과 꽃’ 이후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로 복귀한 김옥빈(27)은 보통의 드라마에서 요구하는 여주인공 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독특한 캐릭터를 맡았다.

과거 영화 ‘가족’의 수애, ‘무방비도시’의 손예진 등이 소매치기를 연기한 적이 있으나 시청층이 광범위하고 규제가 엄격한 드라마에서 소매치기를 여주인공으로 내세운 적은 별반 없다. 더욱이 안방극장 여주인공은 역경을 극복하는 신데렐라일지언정 ‘예쁘고 스타일리시’가 철칙이다. 그런데 김옥빈은 박시한 점퍼를 걸치고 모자를 눌러쓴 채 남의 지갑을 터는데 골몰한다. 나와바리(구역) 전쟁에서 육탄전을 불사할 만큼 거칠고 직선적이다.

 

서울의 달동네를 배경으로 3류인생들의 애환을 담은 ‘유나의 거리’ 속 강유나는 전설적인 소매치기 왕의 딸로, 자신 또한 전과 3범의 소매치기 조직원 출신이다. 출소 후 친한 언니의 카페에서 서빙을 하며 틈틈이 소매치기를 한다. 지난달 14일 제작발표회에서 김옥빈은 “다른 드라마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캐릭터다. 원래 이런 캐릭터에 끌리는 데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캐릭터란 생각이 들었다”며 유나에 매료된 이유를 설명했다.

유나는 성경의 10계명을 위배하는 자신의 직업이 나쁘다는 걸 알면서도 아버지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간 사회에 대한 분노, 바닥 식구들에 대한 의리, 자포자기 심리, 돈도 기술도 없이 새출발하는 데 대한 두려움을 동시에 품은 인물이다. 김옥빈은 이렇듯 복합적인 감정선을 유나로 빙의한 듯 연기한다.

▲ '유나의 거리'의 김옥빈과 이희준[사진=JTBC 제공]

전직 소매치기로부터 받은 개인 과외를 토대로 업계 전문용어와 은어들을 능숙하게 대사 처리하는가 하면 소매치기할 때의 침착하면서 날카로운 모습부터 다세대주택 주민들을 대할 때의 친절하고 수더분한 모습, 남자로부터 애정공세를 받는 순간 고개를 내미는 허당기까지 다채로운 얼굴을 하나하나 끄집어낸다.

특히 선배 미선(서유정)과 집앞 공터에서 주먹다짐을 벌인 뒤 그리고 소매치기 깡순(라미란)을 면회하면서 뱉어낸 “개년아”란 리얼한 대사는 소름끼칠 정도였다. 자신과 남수 일행을 습격해오는 건달패거리를 향해 맥주병을 집어든 채 “덤벼, 이 새끼들아”라고 외치는 장면에서의 위압감 역시 대단했다. 그간 드라마에서 이 정도 수위의 욕설과 격렬한 액션을 행사한 여배우는 없었다.

2005년 학원 공포영화 ‘여고괴담4’로 데뷔한 김옥빈은 몽환적 이미지가 두드러지는 인형같이 예쁜 여배우였다. 이런 이미지를 줄곧 소비하는 캐릭터와 어색한 연기로 인해 논란의 대상이 되곤 했다. 2009년에 이르러서야 박찬욱 감독의 ‘박쥐’에서 억눌린 욕망을 일깨워준 뱀파이어 신부 상현(송강호)과 위험한 사랑에 빠져드는 유부녀 태주 역으로 연기에 눈을 떴다. 비현실적인 어려운 캐릭터를 혼신의 힘을 다해 소화, ‘김옥빈의 재발견’ 평가를 들었다.

 

이후 ‘고지전’의 단역인 북한군 저격수, ‘여배우들’ ‘뒷담화: 감독이 미쳤어요’와 같은 컨셉추얼한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 다양한 쓰임새를 끊임없이 실험했다. 한동안 숨을 고르는 것처럼 보였던 그가 ‘유나의 거리’를 만나 그동안 축적해온 역량을 분출하고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또래 배우들에게서 발견하기 힘든 자신만의 몽환적이고 우울한 이미지를 캐릭터 연기의 주재료로 적극 활용해 이채롭다.

김옥빈이 ‘한 방’을 보여줄 수 있었던 데는 김운경 작가의 힘이 매우 크다. 20년 전 드라마 ‘서울의 달’에서 성장 드라이브 시대의 제비 홍식(한석규)을 통해 성공을 향해 달리는 밑바닥 청춘의 좌절을 어루만졌던 그가 이번엔 신자유주의 적폐가 가득한 시대의 소매치기 유나를 통해 출구 잃은 청춘의 민낯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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