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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나의 거리'에 우뚝 선 오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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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유나의 거리'에 우뚝 선 오나라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6.28 10:4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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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발레 전공 대학생, 뮤지컬 배우, 드라마 연기자로 급커브를 틀어왔던 오나라(37)가 JTBC 월화드라마 ‘유나의 거리’의 소매치기 출신 억척주부 양순 역으로 화제를 뿌리고 있다. 페이소스 묻어나는 연기와 간드러지는 노래솜씨는 그가 어떤 배우인지, 궁금하게 한다. 섭씨 30도를 웃도는 27일 오후 청담동 골목길에 자리잡은 한 키친에 들어섰다. 무용으로 다져진 늘씬한 몸매에 깜찍한 차도녀(차가운 도시여자) 이미지의 오나라가 사람 좋은 웃음으로 인터뷰어를 반겼다.

 

김운경 작가- 작가님 이름 석자 때문에 출연하기로 했다. 그의 작품에 참여하는 게 영광이었다. 자상하며 꼼꼼하고 기분파다. 술자리도 좋아해서 거나하게 취한 뒤 노래 부르는 걸 좋아하신다. 출연자 한명 한명에게 조언해주는 다정다감한 스타일이고.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에 이모티콘과 하트를 날려주는 센스쟁이!

문자 메시지- 처음에 욕심을 가졌다. 이번에 어떻게든 거듭나 봐야겠다고. 잘 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작가님으로부터 문자가 왔다. “책 읽듯이 표현해 봐라. 그렇게 할수록 빛날 거다. 하려고 들지 말아라. 내가 다 해주겠다”. 조언대로 감정을 빼고 담백하게 연기를 하니까 양순 캐릭터가 더 부각됐다. 신비로운 체험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힘들 때마다 이 문자를 들여다보곤 한다.

양순- 한때 잘 나가는 소매치기였다. 바지(대상)을 찍는 안테나나 분위기 잡는 애들이 아닌 깝지(지갑)를 직접 터는 핵심 멤버였다. 그러다 자신을 체포한 형사의 강압(?)에 결혼한 뒤 마음잡고 잘 살아가는 여자다. 생활력 강하고 억척스럽다. 남편에게 무시로 돌직구를 날려 꼼짝 못하게 한다. 후배들을 잘 거두는 의리도 있고, 솔직 당당한 사랑스러운 여자다.

 

안내상- 강력계 형사 시절 비리를 많이 저질러 ‘봉걸레’란 별명이 붙은 남편 봉달호 역 안내상 선배와는 첫 공연이다. 처음 만났을 때 “날 무시할수록 우리가 돋보인다. 어려워하지 말고 막 대해라”란 말을 해주시더라. 그랬더니 오래 산 부부처럼 보인단 얘기가 들려왔다. 눈으로 먼저 상대 배우를 읽어내는 베테랑이다. 첫 촬영 때 선배를 주먹으로 때리고 낭심을 걷어차는 장면이 있었다. 정말 맞은 듯 리액션을 하더니 “내가 맞는 거 전문이야!”라고 말하더라. 큭큭.

부부- 수감과 결혼 사이에서 선택한 거니까 양순은 첨부터 봉걸레를 사랑한 건 아니다. 하지만 양순이 봉걸레를 의지하고 사랑하는 게 느껴진다. 결혼이란 ‘함께 살아가는 것’ 아닌가. 남편한테 툭툭 아무 말이나 다 하면서도 애정이 느껴지는 양순 캐릭터에 나의 모습도 투영될 거다. 지인들이 그더러라. “야 니가 보여!!”.

엘레나가 된 순이- 남편과 운영하는 노래방 도우미로도 투입된다. 어쩔 수 없이 룸에 처음 들어서 부른 노래가 안다성 님의 ‘엘레나가 된 순이’다. 듣도 보도 못한 노래였다. 작가님 애창곡이란다. 받은 날부터 매일 듣고 연습했다. 배우들의 캐릭터가 다 표현된 애달픈 노래다. 방영 후 실시간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 뒤이어 역시 생소한 ‘서울야곡’이 미션으로 주어졌다. 2주 동안 트레이닝한 뒤 최대한 담백하게 불렀다.

▲ 극중 양순이 '엘레나가 된 순이'를 부르는 장면[사진=JTBC 방송화면 켑처]

이희준- 남주인공 창만 역을 맡은 후배 이희준과는 내가 뮤지컬 배우, 그가 연극배우로 활동할 때 서로 팬 사이였다. 뭔가 하려고 하지 않는데도 디테일이 보이는 연기가 매력적이었다.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응원해주며 희준이가 속한 ‘간다’ 팀을 열심히 후원했다. 그랬던 희준이 멋있게 떠서 공연하게 돼 너무 뿌듯하다. 언젠가 나 역시 기회가 되면 연극을 꼭 해보려 한다.

대사-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닌, 일상 속 대사들인데 주옥과 같다. 너무 재밌어서 빵빵 터진다. 소매치기 유나(옥빈)가 꽃뱀 미선(서유정)에게 십계명을 거론하며 “족보로 따져도 언니가 더 나빠”라고 말하는 장면, 양순이 유나에게 “미선이 걔, 무식하지? 예전에 나한테 ‘언니 가슴에 뽕 넣었냐’고 물어 보더라” 같은 장면은 감정 없이 툭툭 던지는 대사가 압권이다.

비움- 이런 작품은 처음이다. 그동안 빛나 보이고 싶어 욕심을 부렸는데 이번엔 욕심을 내려놨다. 표현하지 않으려한 건 처음이다. 비워야 빛이 난다는 걸 깨닫는 나날이다. 앞으로 깊이 있는 배우가 되는 터닝 포인트가 되지 않을까.

 

무용과 학생- 춤추고 노래하고 싶은데 방법을 몰랐다. 에너지를 발산하는 게 좋아서 고교시절 발레를 했고 대학(경희대 무용과)에서도 발레를 전공했다. 대학 2학년 때 본 뮤지컬 ‘쉘부르의 우산’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흔들었다. 뮤지컬배우 남경읍 선생님을 무작정 찾아가 “뮤지컬을 하고 싶다”고 청했다. 그러자 “창작뮤지컬 ‘사랑은 비를 타고’를 연습해보지 않을래?”라고 다리를 놔주셨다. 잔심부름을 하는 도우미로 지냈다. 주연을 맡은 남경주, 최정원 선배를 보며 꿈을 키웠다.

뮤지컬- 서울예술단에 입단해 기본기를 닦고, 이후 4~5년 넘게 앙상블로 활동했다. 무용을 전공한 배우가 거의 없던 시기라 앙상블 요청이 쇄도했다. 그러다 ‘사랑은 비를 타고’의 여주인공 유미리를 맡게 됐다. 도우미로 인연을 맺은 지 4년 만이었다. ‘사비타’ 이후에도 춤이 가능하단 이유로 앙상블을 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자 “나는 누구인가”란 회의에 빠졌다. 하지만 발레를 전공하지 않았다면 무대 위에서 자세가 예쁘고 빛이 나는 배우란 소리를 못 들었을 거다.

시키(四季)- 신인 배우로 주목받던 시절, 돌연 일본의 유명 뮤지컬 극단 ‘시키’ 행을 선택했다. 한국 뮤지컬 배우로는 처음으로 스카우트된 사례다. 언어장벽과 텃세, 외로움으로 인해 힘에 부쳤으나 3년을 버텼다. 시키를 그만 두고는 현지 공연기획사 문을 두드려 6개월 동안 도쿄, 오사카, 요코하마 등지를 순회하며 콘서트를 진행했다. 추진력 하난 무식할 정도로 좋다. 관객과 일본어로 대화하고, 노래를 불렀다. 돈 주고도 못 살 경험을 했다.

 

소극장 로코 1세대- 귀국 후 한국어로 연기하는 게 너무 편했다. 상대 배우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듣다보니 디테일한 연기가 살아났다. 이때 연기력이 급상승했다. 소극장 로맨틱코미디 뮤지컬 ‘아이 러브 유’ ‘김종욱 찾기’ ‘싱글즈’ 초연 여주인공을 꿰찼다. ‘로코의 요정’으로 불리더니 어느 날부터 ‘여왕’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뮤지컬 여배우로서 무대에 얼마나 오래 설 수 있을까, 회의가 엄습했다. 우연히 시작한 드라마 비중이 커지면서 뮤지컬과 멀어지게 됐다. 하지만 기회가 되면 다시 돌아가고 싶다.

드라마- ‘엄마도 예쁘다’ ‘역전의 여왕’ ‘미쓰 아줌마’ ‘사랑해서 남주나’에 조연으로 출연하며 경력을 쌓아갔다. 여주인공의 친구나 시누이를 주로 맡았고, 남편을 쥐고 흔드는 똑 부러지면서 코믹한 감초 캐릭터를 소화했다. 비련의 여주인공 등 다양한 역할을 해보고 싶으나 앞으로 기회가 많을 테니 주어진 역할을 충실히 소화하는 게 중요하다. 출연제의가 있다는 건 내가 필요한 배우란 소리 아닌가. 행운이므로 이 순간을 즐겁게 보낸다. 세월이 흐르니 내공 쌓인 배우가 돼 있더라.

 

[취재후기] 첫인상은 서울 깍쟁인데 웃는 순간 상대방을 무장 해제시키는 반전 매력이 반짝인다. 적당히 푼수기 있으면서 빠릿빠릿하다. 도전과 긴장을 즐기는 오나라는 일하는 게 좋아서 결혼도 안 하는 워커홀릭이다. 인터뷰 내내 하이톤의 웃음을 날리던 그에게 경험을 살려 공연 기획이나 뮤지컬 배우 매니지먼트를 해도 잘 해낼 것 같단 어줍잖은 조언을 했다. 그러자 날아온 대답. “아니요. 저 혼자 잘 먹고, 잘 살래요! 하하”.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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