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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관습에 저항, 장점 버린 '블러드 브라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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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관습에 저항, 장점 버린 '블러드 브라더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07.13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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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젊은 톱스타 조정석, 송창의, 오종혁, 장승조가 한꺼번에 캐스팅돼 화제인 뮤지컬 ‘블러드 브라더스’ 한국어 공연이 막을 올렸다.

비극을 향해 치닫는 쌍둥이 형제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블러드 브라더스’는 1982년 리버풀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져 이듬해 웨스트엔드 초연됐다. 그해 저명한 로렌스 올리비에상에서 최우수 신작 뮤지컬과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웨스트엔드 초연 이후 24년간 1만회 이상 관객과 만난 흥행작이다.

▲ 의형제를 맺는 미키(조정석)와 에디(장승조)[사진=쇼노트 제공]

1960년대 경제공황 시기의 영국 공업도시 리버풀을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편이 집을 나간 뒤 홀로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존스턴 부인은 쌍둥이 임신 사실에 절망한다. 그때 불임으로 고민하던 중산층 라이언스 부인은 아이 한 명을 달라고 부탁한다. 두 사람은 성경에 손을 얹고 비밀협정을 체결한다. 쌍둥이의 비밀을 영원히 감추려는 두 엄마의 노력에도 미키와 에디는 자석처럼 서로에게 끌려 의형제를 맺는다. 헤어짐과 만남을 반복하며 성장하는 가운데 신분의 격차는 커져가고, 둘 사이에 비극이 싹트면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싸인다.

연극 ‘리타 길들이기’ ‘셜리 발렌타인’으로 유명한 영국 극작가 겸 작곡가 윌리 러셀은 뮤지컬의 상업성과 양식화된 연기, 노래에 신물이 나서 ‘반(反)뮤지컬’ 선언과 함께 이 작품을 만들었다. 따라서 ‘블러드 브라더스’는 노래보다 드라마, 배우들의 퍼포밍보다 연기에 치중한다. 한마디로 연극 느낌이 강한 뮤지컬이다.

▲ '블러드 브라더스'의 극중 장면[사진=쇼노트 제공]

이 작품의 최고 미덕은 대단한 이야기의 힘이다. 쌍둥이가 각기 다른 환경에서 성장해 나중에 운명적으로 만난다는 내용은 소설,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숱하게 다뤄온 익숙한 소재다. 클리셰일 수 있는 쌍둥이 소재를 계급·계층 갈등이 첨예하던 시공간에 자연스레 녹여내 설득력 있는 캐릭터와 개연성 있는 극 전개를 만들었다.

내레이터(문종원)의 비장한 설명과 간결한 무대세트는 이에 집중하게끔 한다. 파란만장한 삶을 사는 존스턴 부인(구원영), 서서히 광기에 사로잡히는 라이언스 부인(김기순), 두 형제 사이에서 흔들리는 린다(최유하)의 심리가 씨줄과 날줄로 정교하게 엮어지며 극은 더욱 풍성해지고 몰입도는 높아진다.

1막은 쌍둥이 형제의 탄생 배경과 함께 성인 배우들의 아역연기로 빼곡히 메워진다. 드라마, 영화에서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다가 3년 만에 무대에 복귀한 조정석의 '거진 여덟살'에 가까운 7세 소년 연기는 매우 인상적이다. 대사 타이밍과 톤을 능수능란하게 조절하며, 별다른 분장 없이도 철부지 개구쟁이로 빙의된 모습을 보여준다.

▲ 7세 소년 미키로 변신한 조정석

2막에선 청년으로 성장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그런데 흥미롭게 전개되던 극은 마지막에 이르자 한꺼번에 발생하는 많은 일들과 느닷없이 다가온 비극적 결말로 허겁지겁 마무리된다. 운명의 아이러니로 마주 선 미키와 에디의 엔딩신은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인데 노래는 없고, 미키의 "날 왜 보내지 않았어요?"란 절규만 터진다. 감동을 충분히 증폭할 수 있음에도 ‘스톱’ 버튼을 눌러버린 느낌이다. 정작 중요한 2막과 무려 1시간20분에 이르는 1막에 대한 힘 조절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뮤지컬임에도 귀에 꽂힐만한 넘버와 주인공들의 노래 분량이 적은 것 역시 아쉽다. 특히 가창력 좋은 조정석의 솔로 넘버가 한 두 곡에 그친 점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환호성을 내던 팬들에겐 원성(?)의 대상이 되지 않을까 싶다.

'블러드 브라더스'는 이야기와 연기 면에서 매우 만족할 만한 작품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가진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폐기 처분해버린, 안타까운 상업 뮤지컬이기도 하다. 작가의 선택으로 인한 문제다.

▲ 엄마인 존스턴 부인(구원영)과 아들 미키(조정석)

미키 역에 송창의, 에디 역에 오종혁, 존스턴 부인 역에 진아라가 더블 캐스팅됐다. 9월14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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