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9 21:02 (월)
'역사저널 그날', '토정비결' 이지함은 애덤 스미스 '국부론'보다 200년 앞선 경제학의 혁명가였다?
상태바
'역사저널 그날', '토정비결' 이지함은 애덤 스미스 '국부론'보다 200년 앞선 경제학의 혁명가였다?
  • 류수근 기자
  • 승인 2016.02.07 21:1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큐) 류수근 기자] 예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은 새로운 해가 밝으면 정초에 일 년의 길흉화복을 점치곤 했다. 대표적인 점복풍속이 ‘토정비결(土亭秘訣)’이다.

‘도참(圖讖)’은 앞날의 길흉화복을 예언하는 술법이고, 이를 적은 책을 ‘도참서’라고 한다. 토정비결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토정’ 이지함(1517~1578) 선생이 지은 도참서로 알려져 있다.

KBS 1TV ‘역사저널 그날’은 7일 밤 10시30분에 설 기획 ‘한국인의 비결’ 2부작 제1편으로 ‘토정비결, 희망을 꿈꾸다’ 편을 다룬다. ‘토정’ 이지함 선생은 앞날을 내다볼 수 있었던 조선의 노스트라다무스였을지 시간 여행을 떠난다.

▲ 설 기획 '한국인의 비결' 2부작 제1편 '토정비결, 희망을 꿈꾸다'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토정비결’의 저자로 알려진 토정 이지함은 점·천문·음양·술서 등에 모두 능했다고 전해진다. 처가의 멸문지화와 자신의 죽음까지 예언했을 만큼 비범한 예지력을 지닌 인물이었다고 한다.

비범한 능력만큼이나 예사롭지 않은 삶을 살았고 팔도를 유랑하며 수많은 말과 행동들을 세상에 남겼다.

이지함은 어떤 생각을 가진 사상가였을까? 그는 성리학을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론에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던 실천가였다. 1573년 포천 현감으로 부임한 이지함은 고을의 가난을 해결하기 위한 방도를 담은 상소를 올린다. 물고기와 소금 등 자원을 활용하여 백성들의 삶의 질과 국가의 부를 증진시키자는 주장이었다. 실제로 그는 경기도 포천에 있으면서도 전라도와 황해도의 작은 섬에서 무엇이 나는지 알고 이용할 것을 제안했다. 농업을 근본으로 하던 조선 사회에 가히 혁명적 주장이었다.

영국의 대표적 경제학자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을 펴냈다. 골자는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이었다. 이지함의 혜안은 ‘국부론’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애덤 스미스보다 무려 200년이나 앞서 혁명적인 생각을 했던 것이다.

▲ [사진=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토정비결’의 저자는 이지함이 맞는 걸까? 아니라면 왜 ‘토정비결’이라는 이름이 붙어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을까?

19세기 말 조선은 세도 정치와 조세 제도의 붕괴로 어지러운 시대였다. ‘토정비결’은 현실에 대한 좌절과 절망이 가득했던 조선 백성들에게 큰 위안이 되면서 베스트셀러가 된다. ‘토정비결’은 마치 백성의 어려움을 이해하고 이를 살피던 토정 이지함의 마음을 닮아 있었다.

그런데 이지함이 세상을 떠난 후 출간된 시문집 ‘토정유고’와 조선 후기 백성들의 생활상이 기록된 ‘경도잡지’ ‘동국세시기’에는 ‘토정비결’이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과연 ‘토정비결’의 저자는 누구일까?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서 그 진실을 추적해 본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