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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예술](2)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오승희, '배려 깊은 악기'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존재감 (인터뷰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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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예술](2)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오승희, '배려 깊은 악기'처럼 은은하게 빛나는 존재감 (인터뷰Q)
  • 김윤정 기자
  • 승인 2016.03.29 07: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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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자 Tip!] 오케스트라의 가장 뒷줄에 서지만 중후하고 묵직한 저음으로 그 존재감을 뽐내는 악기, 콘트라베이스의 매력은 무궁무진하다. 바이올린, 플루트처럼 화려하면서도 대중적인 악기는 아니지만, 이들이 내는 음들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악기가 바로 콘트라베이스다. 그만큼 다른 악기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콘트라베이스처럼 털털한 친근감이 매력인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오승희를 서초동 카페 ‘르쁠랭’에서 만났다.

[스포츠Q(큐) 글 김윤정 · 사진 최대성 기자] 음악은 ‘귀’뿐만이 아닌 ‘눈’으로도 듣는다는 얘기가 있다. 클래식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클래식을 연주하는 연주가들의 표정과 호흡, 그리고 분위기마저 음악에 속한다는 의미에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오승희는 “음악엔 눈과 귀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눈’과 ‘귀’를 모두 만족시켜줄 음악가, 현악앙상블 ‘(사)조이오브스트링스(Joy of Strings)’ 수석 오승희다.

▲ 오승희

◆ “KBS교향악단 수석 故오양구 눈에 띄어 잡게 된 콘트라베이스, 스승 김창호, 권영주, 이성주 존경스러워”

올해로 만 34세가 되며 약 20년차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된 오승희는 29일과 31일 열릴 연주회준비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오승희가 처음 콘트라베이스를 잡게 된 건 중학교3학년 때였다. 음악을 좋아하는 어머니와 한의사 아버지 밑에서 자란 오승희는, 우연치 않은 기회에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하게 됐다.

“중학교시절, 아버지께서 어머니께 ‘콘트라베이스 해볼까’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신 걸, 음악을 좋아하던 어머니께서 진짜 선생님과 악기까지 준비하신 거예요. 아버지께서 한번 해보시곤 결국 콘트라베이스가 저희 집 장식품이 됐어요(웃음). 그래서 그냥 전 만져만 보다 어머니 권유로 콘트라베이스 선생님을 만나게 됐는데 그 분이 KBS교향악단 수석을 역임하신 故오양구 선생님이셨어요. 선생님께서 제 큰 체격과 손을 보시더니(웃음) 키워보고 싶다고 하셔서 본격적으로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하게 됐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콘트라베이스를 시작한 오승희는 계원예술고등학교에 입학하며 코리안 심포니 오케스트라 수석을 역임한 권영주를 스승으로 맞았다. 오승희는 권영주를 떠올리며 “절 쪼지 않고 ‘너의 음악’이라며 항상 놔주셨어요”라고 말했다. 권영주의 자유로운 가르침 속 음악의 즐거움을 알게 된 오승희의 실력이 월등히 늘어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 오승희

이후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한 오승희는 부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 역임 김창호를 또 한 명의 스승으로 만나게 됐다. 권영주가 오승희를 이끌어준 사람이었다면, 김창호는 오승희를 잡아준 사람이었다. 오승희는 정년퇴임을 하고도 여전히 솔로 독주회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김창호에 대한 존경심을 표하는 동시에 베이스 스승들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조이 오브 스트링스’의 예술감독인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는 오승희에게 유일한 바이올린 스승이다.

“2006년에 ‘조이 오브 스트링스’ 콘트라베이스 자리가 비어서 들어가게 됐는데 너무 재밌어서 지금 10년째 놓지 않고 있어요(웃음). 이성주 선생님은 꿈도 많으시고 정말 즐거우신 분이라 지금도 같이 연주하는 좋은 교수님이면서도 인생선배이자 고민도 털어놓는 엄마 같은 존재죠. 그만큼 선생님도 절 아껴주시고 챙겨주시는 것 같아서 늘 감사해요.”

오승희는 29일 ‘조이 오브 스트링스’의 수장 이성주가 참여하는 ‘All that Mozart(올댓모차르트) 모차르트 탄생 260주년 기념 콘서트’에 신진 마에스트로 이태정의 지휘에 맞춰 단원들과 함께 환상의 하모니를 선사한다. 이어 31일에는 ‘천원의 문화공감’이라는 주제 아래 열리는 연주회에서 비발디의 ‘사계 봄’, 브람스의 ‘헝가리 무곡’, 아스토르 피아졸라의 ‘리베르 탱고’를 비롯한 영화, 드라마 OST 등 일반인들에게도 익숙하고 쉬운 음악들을 관객들에게 들려줄 예정이다.

▲ ‘All that Mozart(올댓모차르트) 모차르트 탄생 260주년 기념 콘서트’ [사진 = '영음예술기획' 제공]

◆ “유학경험 없지만 다양한 경험으로 실력 쌓아… 연주회, 녹음, 출강 등 다방면으로 활동”

보통 클래식을 하는 연주자들에게 ‘유학’이란 필수불가결한 요소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오승희는 예외적으로 유학을 다녀오지 않은 연주자에 속한다. 그럼에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오승희는 ‘조이 오브 스트링스’ 활동을 가장 우선적으로 하면서도, 다른 연주회 요청이 들어오면 참여도 마다하지 않는다. 또한 영화, 가요 음악 녹음과 초등학교 출강 등 다양하게 활동하며 본인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대학원과 유학 사이에서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학원을 마치고도 ‘유학을 가볼까’ 했는데, 경험으로 대신했죠. 그만큼 현장에서 많이 뛰고 인맥도 더 많이 쌓았어요. 제 또래에 비해서는 남들보다 연주도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대학교 땐 불러주는 곳이라면 시간만 되면 다 뛰어다녔어요. 그렇지만 유학을 다녀온 사람들의 시간과 노력도 분명히 인정돼야 하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또 갈 수 있는 조건이 된다면 어린 나이에 빨리 다녀오는 게 좋다는 생각도 하고요.”

▲ 오승희

유학이란 경험은 한 줄의 프로필로 추가되는 단순한 이력이면서도 연주자들의 능력을 대변해 주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일반인들이 취업을 할 때 이력서로 1차 평가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연주자들에게 유학 이력 또한 이와 같은 의미로 작용한다. 그만큼 유학의 경험은 분명 ‘플러스’ 요인이 되지만, 중요한 것은 실력이라는 게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로 활동 중인 오승희의 생각이다.

“콘트라베이스는 바이올린이나 첼로에 비해 하는 사람도 적지만, 그만큼 자리도 적은 게 사실이에요. 매년 음악 하는 사람은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정작 유학까지 다녀와서 연주는 하고 싶어도 자리가 나지 않아 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아요. 특히 클래식이란 분야가 대중적이지 않으니 불러주는 데도 많지 않고요. 대신 바이올린, 첼로, 플루트 같은 악기들보단 비교적 늦게 시작해도 큰 무리가 없다는 장점도 있어요. 초등학교 자녀를 둔 부모님들이 ‘콘트라베이스 시킬까요?’라고 물으시면 ‘공부 좀 더 해도 돼요’라고 대답도 하거든요. 음악이라는 게 나와의 싸움이기도 해서 전공을 하려면 본인의 고집도 중요하고, 부모님 등 주변에서 도와주는 것도 중요해요. 유학도 중요하지만 결국 본인의 실력이 더 중요한 거죠.”

실제로 유학 경험이 전혀 없는 ‘순수 국내파’ 신지아는 퀸 엘리자베스 국제바이올린 콩쿠르, 롱 티보 콩쿠르 등의 세계 유수 콩쿠르 등에서 입상하며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대열에 합류한 인물로 유명하다. 악기를 하는 모든 이들에게 유학은 필수가 아닌 선택이라는 방증이다.

▲ 오승희

◆ “‘매번 똑같은 음악 연주 하냐’는 클래식? 연주할 때마다 다 다른 음악 나와”

500년, 600년 전 음악을 연주하는 클래식에 대한 오승희의 애정은 남다르다. 특히 재즈에서는 멋진 솔로 악기로 빛을 발하는 콘트라베이스지만, 오승희는 다른 장르보다 클래식을 연주할 때의 ‘짜릿한 손맛’을 최고로 친다.

“사람들은 ‘똑같은 음악을 매번 하냐’고 묻지만 연주할 때마다, 컨디션에 따라, 사람에 따라 모두 다 다른 음악이 나와요. 또 음악이 나온 그 시대에 맞는 악기를 갖고 작곡가의 의도에 맞춰서 연주하는 것도 클래식의 묘미 중 묘미라고 할 수 있죠. 오케스트라를 하게 되면 지휘자와의 컨텍이 완벽하게 떨어졌을 때, 그리고 자기 소리에 더 민감해야 하는 앙상블에서 연주할 때 짜릿함을 느껴요.”

그러나 여전히 대중들에게 클래식이란 무겁고 어려운 존재다. 연주를 하는 오승희 또한 이 부분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다. 관객들과의 소통과 교감을 원하는 오승희가 생각하는 클래식과 대중을 연결할 수 있는 매개체는 무엇일까. 오승희는 해설을 진행하는 음악회를 언급하며 ‘정통 클래식’에서 벗어나지만 흥미를 끄는 얘기를 전했다.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를 가도 모르는 노래가 나오면 재미없지 않을까요? 대부분의 클래식 관객들도 프로그램을 미리 보고 공부해 오는 사람은 별로 없어요. 아는 곡을 들으면 ‘아, 나 이거 알아’ 이런 식이죠. 지하철만 가도 ‘사계 봄’이 나오는데 그게 사계의 봄인지 아무도 모르죠. 통화대기음에는 ‘사계 봄 3악장’이 나와요. 주변에 음악이 없을 수 없고, 있는 것 중엔 클래식이 굉장히 많은데 사람들이 관심이 없을 뿐이고 그냥 스쳐지나갈 뿐이죠. 그걸 조금만 더 끄집어 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물론 정통클래식도 중요하지만 완전한 클래식이 아니더라도 같이 즐길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클래식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해설을 하면서 진행하는 음악회나 음악의 일정 부분을 들려주고 설명하는 식으로 관객들의 이해를 돕는 방법도 좋다고 생각해요.”

▲ 오승희

무대 위 오승희는 음악에 빠지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특히 ‘베이스’를 깔아주는 콘트라베이스가 흔들리면 다른 연주자들의 집중도에도 영향이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음악에 빠져들기 위해 노력한다. 또한 단원들과 함께 열심히 연습한 음악을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면서 전달하는 것, 그리고 스스로 즐기면서 연주하는 점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은 음악을 들으려면 보정도 돼 있고 깨끗한 음악이 나오는 완벽한 CD를 듣는 게 좋죠. 그런데 연주를 보러온다는 건 연주자들의 표정과 호흡, 감정 등을 즐기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는 그걸 최대한 살려서 관객들에게 보여주고, 내가 즐기는 만큼 관객들도 즐기려고 하면 저는 저절로 즐겁게 연주를 하고 있더라고요.”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 오승희는 음악의 힘을 그곳에서도 느끼고 있었다. “음악을 하면서는 비뚤어진 사람들을 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 비뚤어진 아이들도 음악을 시작하면 거기서 탈출구를 찾는 것 같고요. 그러니까 음악을 하는 사람이 음악을 즐기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즐기면서 하는 것.”

마지막으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오승희는 좋아하는 음악가로 브람스를 꼽으며 유쾌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브람스가 좀 어두운 기운이 있는데, 그 기운이 따뜻하더라고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아요. 브람스 교향곡을 연주하다 보면 ‘미쳤다’란 생각이 들 정도로 계속 닭살이 돋는데, 그만의 색깔이 좋아요. 어렸을 땐 느린 음악하면 ‘으’ 했는데, 아무래도 나이가 들었나 봐요. 지금은 그런 게 좋아요(웃음).”

▲ 오승희

[취재후기] 베이스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은 확연히 다르다. 오케스트라가 아닌 소규모 앙상블에서의 콘트라베이스의 존재는 더더욱 그렇다. 많은 음들이 있진 않지만 ‘기초공사’라고 할 수 있는 콘트라베이스가 무너지면 다른 악기들도 제대로 된 소리를 내지 못한다. 그만큼 콘트라베이스는 있는 듯 없는 듯 자신을 내세우진 않지만, 정확한 비트와 음으로 뒤에서 받쳐주는 스스로의 역할을 해내는 ‘배려 깊은’ 악기다. “연주가도 악기에 따라 변한다”는 오승희의 말처럼 오승희는 ‘콘트라베이스’ 같은 연주자였다. 스스로를 내세우진 않지만 묵직한 존재감이 은은하게 빛나는 ‘화려하진 않지만 화려한’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오승희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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