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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에잇 데이즈 어 위크' 비틀즈의 숨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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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스:에잇 데이즈 어 위크' 비틀즈의 숨은 이야기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6.09.05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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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오소영 기자] 전설의 밴드 비틀스(비틀즈)의 숨은 이야기를 더 재밌게 만난다. 10월 개봉하는 영화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 – 투어링 이어즈'를 통해서다.

'비틀스-에잇 데이즈 어 위크'(수입 미디어로그, 배급: 메가박스 플러스엠) 개봉을 앞두고 관전 포인트를 소개한다.

◆ 공연장 내 인종차별 반대 주장

비틀스가 미국에 진출했던 당시 미국에는 인종차별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백인과 흑인이 공연장을 비롯한 공공장소에 나뉘어 자리잡는, ‘인종분리’라는 제도가 행해졌다. 

1964년 9월 11일 미국 잭슨빌 게이터 볼에서 공연이 예정돼 있던 비틀스는 ‘인종분리’ 제도에 대해 듣게 됐고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지 그 사람들을 나누지 않는다”며 인종으로 구분된 관객들 앞에서는 공연을 하지 않겠다는 계약서를 썼다.

▲ [사진=미디어로그 제공]

당시 남부에서 흑인 노동자 3명이 실종되는 등 인종 정책에 있어서 흉흉한 분위기였지만, 비틀스에 의해 남부 최대의 공연장에서는 인종차별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 음악 소울메이트 조지 해리슨과 밥 딜런 

비틀스는 짧은 시간 동안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내며 팝음악을 새로운 차원으로 발전시켰다. 로큰롤과 모타운 팝, 리듬앤블루스 등 미국 흑인 음악의 초석을 다졌다. 

비틀스는 많은 가수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받았지만, 가장 큰 영감을 받은 사람은 동시대의 라이벌이자 포크 뮤지션 밥 딜런일 것이다. 존 레논은 “음악에서 나 자신을 표현하려고 했다. 그걸 깨닫게 도와준 이가 밥 딜런이다. 토론을 통해서가 아니라 그가 부르는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렇게 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밥 딜런의 주관적이고 사회적인 메시지는 아이돌의 이미지로 대중음악을 선도하고 있던 비틀스를 변화시켰다. 이후 비틀스는 좀더 사회적이고 정치적 견해가 담긴 노래를 선보이며 음악 세계를 넓혔다. 

◆ 비틀스가 돌연 공연을 그만둔 이유는?

1962년 6월 공연을 시작한 이후, 미국에서의 성공적인 데뷔를 발판으로 비틀스는 전세계 순회공연을 결정했다. 5년간 미국, 캐나다의 북미, 영국을 포함한 유럽 전역, 호주 동부 지역과 일본까지 총 15개국, 90여 개의 도시에서 815회의 공연을 열었다.

▲ [사진=미디어로그 제공]

비틀스의 공연으로 인해 생긴 ‘비틀 매니아’라는 이름의 문화적 현상은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을뿐 아니라, 전세계에 공연의 새로운 기준을 만들었다. 이는 이전의 그 어떤 대중가수도 엄두를 내지 못했던 대담하고 혁신적인 활동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공연은 데뷔 5년째인 1966년 8월로 끝났다. 공연을 통해 팬들과 직접 만나며 소통했던 비틀스에게 어떤 일이 있었고, 왜 공연을 멈추게 됐는지 영화를 통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 명곡 ‘예스터데이’의 원제목은 ‘스크램블 에그’

빌보드지에 따르면 전세계 2,500여명의 아티스트가 명곡 ‘예스터데이(Yesterday)’의 리메이크를 했다고 한다. 이는 멤버 폴 매카트니가 작곡, 작사한 곡으로 꿈에서 깬 그가 피아노 앞에 앉아 꿈에서 들었던 음악을 곡으로 만든 것이다. 임시방편으로 붙인 제목은 그가 제일 좋아하는 메뉴인 ‘스크램블 에그’였다. 

‘스크램블 에그’에서 ‘예스터데이’로 바뀐 것은 폴 매카트니가 작곡 후, 14세 때 유방암으로 떠난 어머니를 떠올리며 가사를 쓰던 중 그에 맞게 제목을 정했기 때문이다.

알면 알수록 더 재미있는 비틀스의 이야기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영화 '비틀스: 에잇 데이즈 어 위크'는 풍성한 재미를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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