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30 17:08 (화)
[SQ현장] 다시 찾은 '씨름의 성지', 장충체육관서 새 스토리가 시작됐다
상태바
[SQ현장] 다시 찾은 '씨름의 성지', 장충체육관서 새 스토리가 시작됐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9.17 1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가위에 성공적 개최, 11월 천하장사 대축제도 예정...손명호도 생애 첫 백두장사 '5전6기' 스토리

[장충=스포츠Q(큐)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일본 도쿄에는 일본 무예의 성지인 부도칸(무도관)이 있다. 부도칸에서는 검도 대회는 물론이고 유도 대회와 스모 대회까지 열린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바로 씨름의 성지인 장충체육관이 있다.

지난해 1월 리모델링을 마치고 재개장한 장충체육관에서 모처럼 모래판 축제가 펼쳐졌다. 이만기, 이봉걸 등 1980년대와 1990년대 민속씨름의 전성기였을 때 장소가 바로 장충체육관이었다.

그러나 씨름이 쇠퇴하면서 한동안 장충체육관에서 씨름을 볼 수 없었다. 일양제약, LG황소씨름단 등 기업들의 씨름 팀은 잇따라 해체됐고 민속씨름은 설 자리를 잃었다. 일부 선수들은 K-1 등 격투기 선수가 되기도 했다. 씨름은 지방을 전전했다.

▲ 손명호가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6 추석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결정전 결승에서 장성복을 꺾고 생애 첫 장사 타이틀을 확정지은 뒤 황경목 감독과 감격의 포옹을 하고 있다.

하지만 씨름이 다시 장충체육관을 찾았다. 지난 3월 발족한 통합씨름협회는 추석장사씨름대회를 성대하게 열기 위해 장충체육관에서 한가위 연휴에 온 가족이 즐길 수 있는 이벤트로 마련했다. 그리고 대회는 성공적이었다. 남녀노소가 장충체육관에 무료입장, 관중석을 가득 메워 성황을 이뤘다.

◆ 5년만에 다시 찾은 '씨름의 성지' 장충체육관에서 중흥을 기대한다

장충체육관은 장충단에서 유래됐다. 많은 사람들은 장충단공원을 그저 도심 속 공원 정도로 생각하지만 사실은 대한제국 시대의 '현충원'과 같은 곳이었다. 을미사변과 임오군란으로 순직한 충신과 열세를 제사지냈던 곳이 바로 장충단이었다.

이 때문에 일제시대 장충단에서 씨름대회가 열리곤 했고 장충체육관에 만들어진 이후에는 씨름의 성지가 됐다. 1960년대 신문만 봐도 한국과 터키의 씨름 대회가 열렸다는 기록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1983년 제1회 천하장사씨름대회가 장충체육관에서 개최된 것 때문에 '씨름의 성지'라고 알고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태현 KBS 해설위원은 "장충체육관에서 5년 만에 씨름대회가 열려 너무나 뜻깊다. 나 역시 장충체육관에서 장사 타이틀을 들어올린 기억이 있다"며 "장충체육관이 있는 장충단이 순국하신 조상들의 추모 장소였고 이를 기리기 위한 씨름 대회가 이곳에서 자주 열렸다"고 말한다.

▲ 추석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결정전이 열린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는 한가위 연휴를 맞아 관중들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장충체육관에서 씨름 대회가 열린 것은 2011년 설날장사대회 이후 5년여 만이다.

그러나 장충체육관에서 2011년 이후 씨름을 볼 수가 없었다. 리모델링이 들어간 탓도 있지만 2011년 설날장사씨름대회가 마지막 대회로 열린 이후 지난 5년 동안 씨름은 지방을 돌아야만 했다. 물론 지방에도 씨름 팬은 있었지만 서울만큼은 아니었다.

통합씨름협회가 출범한 뒤 첫 명절인 추석을 맞아 추석장사씨름대회를 장충체육관에서 연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다. 1980년대부터 씨름을 즐겨봤다는 한 노인 팬은 "장충체육관만 오면 씨름에 대한 향수가 있다. 정말 오랫만에 서울에서 씨름을 본다"고 흐뭇해했다.

아직까지 씨름 팬은 향수를 느끼고 싶어하는 노년층에 국한되어 있다. 일부 어린이 팬과 젊은 층도 있었지만 가까이 관중들에게 다가가 물어보니 선수 가족이 많았다. 남녀노소 팬들이 몰렸다고는 하지만 씨름이 1980년대 민속씨름의 전성기를 다시 한 번 맞이하려면 장충체육관을 중심으로 이벤트와 스포츠 마케팅을 펼쳐야 한다.

다행히도 기회는 더 있다. 통합씨름협회는 오는 11월 16일부터 20일까지 천하장사 씨름대축제를 연다. 천하장사는 씨름의 한 시즌을 마무리하고 결산하는 '챔피언전'과 같은 대회다.

선수들이라면 모두가 천하장사를 꿈꾼다. 태백급, 금강급, 한라급, 백두급 등 체급에 관계없이 맞붙을 수도 있어 더욱 뜨거운 열전이 기대되는 경기이기도 하다.

▲ 추석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결정전이 열린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 장사에게 주어지는 황소 트로피가 놓여있다.

◆ 5전6기 끝에 장사 타이틀 차지한 손명호의 인생 역정, 콘텐츠는 충분하다

5년 만에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추석장사씨름대회는 너무나 극적이다. 태백급부터 한라급까지 모두 수원시청 선수들이 따낸 것도 있었지만 백두급이 하이라이트였다. 단 한 번도 장사 타이틀을 차지해본 적이 없는 손명호(의성군청)이 백두장사에 올랐다. 5번 결승에 오르고도 모두 모래판에 무릎을 꿇어야 했던 손명호로서는 '5전 6기'의 신화를 쓴 셈이다.

특히 손명호는 지난해 2월 설날장사대회 당시 결승에서 맞붙었던 장성복(양평군청)을 상대로 19개월 만에 설욕전을 펼쳤다. 당시 손명호는 첫 판을 따내고도 내리 세 판을 내주는 바람에 장사 타이틀을 내주고 말았다. 당시 경험을 발판삼아 손명호는 장성복에 대한 전술을 새롭게 짰다.

손명호는 경기가 끝난 뒤 "설날대회 때는 내 힘만 믿고 그대로 밀고 들어가려다가 장성복의 변칙 기술에 내리 세 판을 내줬다"며 "이번에는 덤비지 않았다. 들어오는 것을 보면서 침착하게 경기를 풀어간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그동안 장사 타이틀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손명호는 "2%, 아니 20% 부족했기 때문에 다섯 차례나 결승에 오르고도 우승을 차지하지 못했던 것 같다"며 "주위에서는 벌써 장사를 했어도 몇 번이나 했어야 했다고 말하는데 내 기량이 그만큼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 손명호가 17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6 추석장사씨름대회 백두장사 결정전 결승에서 장성복을 꺾고 생애 첫 장사 타이틀을 확정지은 뒤 꽃가마를 타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또 손명호는 "그동안 씨름대회가 지방에서만 열리다보니 서울에서 일하시는 어머니(안정자 씨)가 처음으로 씨름장에 오셨다. 아무래도 어머니의 응원이 있었기 때문에 승리를 차지한 것 같다"며 "또 아내(송정아 씨)와 딸(유주)도 내게 힘을 주는 사람들이다. 모두의 성원이 있었기에 정상에 오른 것 같다. 천하장사 대회도 서울에서 열린다고 하니 내 평생 꿈인 천하장사에 오르겠다"고 각오를 밝혔다.

아직 여성부 대회로 하루가 더 남았지만 추석장사씨름대회는 숱한 스토리를 남겼다. 이를 콘텐츠로 연결시키면 스포츠 팬들의 씨름에 대한 관심을 다시 끌어올 수 있다.

재미와 감동이 담긴 스포츠 판에는 언제나 팬들의 관심이 집중되기 마련이다. '씨름의 성지' 장충체육관을 다시 찾았으니 어떻게 팬들을 끌어올 수 있을 것인가만 남았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