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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혼술남녀' 아픈 것도 죄가 되는…'미생'의 전쟁터보다 치열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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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포인트] '혼술남녀' 아픈 것도 죄가 되는…'미생'의 전쟁터보다 치열한 '지옥'에서 살아가는 이야기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9.21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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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첫 강의에서 갑자기 어지럼증을 느끼며 쓰러졌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괜찮냐'는 따뜻한 걱정이 아니라 '왜 칠칠치 못하게 첫 날부터 쓰러지고 난리냐'는 차가운 말 뿐이다.

어릴 적부터 날 너무나 사랑해 준 외할머니의 고희연이다. 어머니는 열심히 공부하라며 굳이 힘들게 오지 말라고 했지만, 사랑하는 외할머니의 생일을 축하해 주기 위해 고무줄 늘어난 트레이닝복 대신 오랜만에 정장도 빼입고, 외할머니가 좋아할 선물까지 챙겨들고 찾아갔다. 하지만 그 곳에서는 어머니가 외할머니에게 좋은 대학도 못 나오고 몇 년 째 공무원 시험 본다고 백수생활 하는 내가 부끄럽다고 오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20일 방송된 tvN 월화드라마 '혼술남녀'(극본 명수현 백선우 최보림·연출 최규식 정형건) 6회에서는 노량진에 첫 입성한 국어강사 박하나(박하선 분)와 노량진에서 몇 년 째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 공시생 김기범(김기범 분)의 서글픈 자화상이 공개됐다.

▲ tvN '혼술남녀'에서 박하나(박하선 분)은 첫 강의를 앞두고 민진웅이 준 건강보조식품으로 인해 알러지 반응을 일으켜 수업시간에 졸도한다. 하지만 원장(김원해 분)은 박하나를 걱정하기는 커녕, 박하나로 인해 나빠진 종합반의 이미지부터 걱정한다. [사진 = tvN '혼술남녀' 방송화면 캡처]

우여곡절 끝에 노량진 일타강사 진정석(하석진 분)이 주도하는 공무원시험 종합반에 탑승하게 된 박하나는 의욕에 넘쳐 첫 강의를 준비하다 그만 잠도 못 자고 식사도 거른 채 첫 강의를 하기 위해 출근했다. 행정학 강사인 민진웅(민진웅 분)은 그런 박하나에게 강의는 밥심이라며 자신이 먹는 건강보조식품을 챙겨주지만, 박하나는 그 건강보조식품이 알러지 반응을 일으켜 그만 첫 강의에서 졸도하고 말았다.

하지만 졸도한 박하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은 싸늘하기만 했다. 원장(김원해 분)은 쓰러진 박하나가 업혀서 나가는 모습을 보고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별 일 없어야 할 텐데"라며 박하나를 걱정하는 것 같더니 곧바로 "아니 종합반 첫 날부터 이게 뭔 일이야"라며 박하나의 안위보다 종합반을 먼저 걱정한다.

게다가 쓰러졌던 박하나가 병원에서 정신을 차리고 급히 돌아오자 "아니, 몸은 괜찮어?"라고 걱정해주는 것 같더니 대뜸 "아니 지금 괜찮은 거 말고 진짜로 몸 괜찮은 거 맞냐고? 건강한 사람이 어떻게 밥 한 두끼 굶고 잠 못 잤다고 기절을 해? 지병 있는 거 아냐? 지병 있는데 숨기고 있는 거 아니냐고? 스펙도 없고 건강도 없는데 야망만 있는 거 아니냐고!"라며 건강진단서를 끊어오라고 명령한다.

입장은 다소 다르지만 이는 공시생 김기범도 마찬가지다. 외할머니의 회갑연이라고 모처럼 정장까지 쫙 빼입고 괜찮다고 오지 말라는 것을 선물만 전해주고 오겠다고 찾아갔지만, 어머니는 외할머니에게 "내 기범이 이 자슥 때문에 챙피해 죽겠다. 여기 온 친척아들은 전부 서울에 있는 좋은 대학 다니고 벌써 취직한 아도 있는데, 기범이만 저 모양 아니가?"라고 혀를 찬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와서 선물만 주고 간다는 거 겨우 뜯어 말렸다. 이 판국에 선물이 대수가? 떡하니 합격하는게 진짜 선물이지"라며 김기범을 차갑게 무시한다. 여기에 외할머니까지 "오늘 안 온 걸 보면 그래도 마음 단단히 먹고 공부한다는 거 아이겠나?"라고 말하자 결국 김기범은 선물도 전해주지 못하고 그대로 발길을 돌리고 말았다.

▲ tvN '혼술남녀'에서 김기범은 외할머니의 고희연에 선물만 전달해 주기 위해 찾아가지만, 그 곳에서 어머니가 좋은 대학도 못 가고 취직도 못한 채 공무원 시험을 몇 년 째 준비하는 자신을 부끄럽다고 말하는 모습을 보고 발길을 돌리고 만다. [사진 = tvN '혼술남녀' 방송화면 캡처]

'혼술남녀'는 재미를 만들어 내기 위해 억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지 않는다. 공시 준비를 하면서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인이 된 여자친구(하연수 분)와 이별을 하게 된 김동영(김동영 분)의 이야기나, 할머니의 생일잔치에 참석하지 못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던 손자 김기범. 이 이야기들은 드라마틱한 전개를 만들기 위해 억지로 쥐어짜낸 그런 이야기가 아닌 바로 노량진 공시생들이 수시로 겪을 법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이야기다.

뿐만 아니라 사범대를 졸업하고 교사 임용을 꿈꿨지만 열악한 가정형편 탓에 임용고시 준비를 하지 못하고 입시학원 선생의 길을 택했고, 그나마도 다니던 학원이 망해서 우여곡절 끝에 노량진까지 흘러 들어와 온갖 굴욕을 감내하는 박하나(박하선 분)의 이야기 역시 단순히 웃자고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디딘 초년생이라면 한 번쯤 겪어봤을 생생함으로 가득하다.

'혼술남녀'는 그래서 제목처럼 단순히 혼자 술을 마시는 '먹방'을 찍는 드라마가 아닌, 사회 초년생이나 취업 준비생이 겪는 서글픈 현실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tvN 드라마 '미생'이 한국기원 연구생 출신의 '장그래'라는 인물의 시선으로 대기업이라는 '전쟁터'에서 치열하게 생존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면, '혼술남녀'는 대기업 사원에 뒤지지 않을 만큼 열심히 발버둥치며 살아가는 '공시생'을, 그리고 박하나로 대표되는 사회 초년생들을 애잔하게 응시한다.

'미생'에서도 이런 대사가 나오지 않는가? "회사가 전쟁터면 밖은 지옥"이라고. '혼술남녀'는 바로 이 '지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씁쓸한 이야기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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