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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대무용수 한선천의 드라마틱한 터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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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현대무용수 한선천의 드라마틱한 터닝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2.29 10:1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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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동윤(플로어1스튜디오)] 스물다섯 현대무용수 한선천. 지난해 케이블TV 댄스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 시즌1에서 준수한 외모와 자유로운 춤사위로 뜨거운 관심을 샀다. 한동안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졌던 그가 돌아왔다. 국내 초연되고 있는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킹키부츠’(내년 2월22일까지·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드랙쇼(여장남자 쇼)를 하는 도발적인 앤젤로 연말 공연가를 달구고 있다.

◆ 뮤지컬 ‘킹키부츠’서 여장남자 쇼걸 앤젤 활약

가업인 수제화 공장을 물려받은 청년 찰리와 여장남자 롤라의 특별한 우정과 성공 스토리를 담은 ‘킹키부츠’는 성 소수자를 소재로 한 작품이다. 자유분방한 롤라는 6명의 앤젤과 함께 런던의 한 게이클럽에서 공연하며 생계를 꾸려간다.

 

화려한 가발과 의상으로 성장한 앤젤들 가운데 한선천은 단연 두드러진다. 현대무용으로 연마한 춤동작은 군무임에도 클래스가 다르다. 복싱이 치러지는 링에 비키니 차림의 라운드 걸로 등장할 때는 남녀 관객의 탄성을 자아낸다. 그에게 쏟아지는 객석의 박수세례는 주연 배우를 능가할 정도다. 화장을 지운 한선천을 26일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무용이 오롯이 신체 움직임으로 스토리를 표현한다면 뮤지컬은 연기, 노래 그리고 춤으로 캐릭터의 특성을 표현하는 점이 다르죠. 더욱이 무용은 추상적이라 제 의도를 관객이 다르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은데 뮤지컬은 노래와 대사를 통해 직접적으로 전달하니까 표현이 어렵지 않아요. 처음엔 뮤지컬에 적응하기가 힘들었는데 지금은 너무 재미있어요.”

◆ 도발적인 비욘세, 메간 폭스 연상하며 여성 캐릭터 준비

‘킹키부츠’ 오디션 1개월 전부터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뒤 지난 8월 중순부터 연습에 들어갔다. 무려 3개월에 걸친 대장정이었다. 캐릭터 구축을 위해 드랙퀸 영상물을 섭렵했다. 연출자로부터 각자 되고 싶은 여배우나 가수를 생각해오라는 숙제를 받고 그는 섹시하고 도발적인 팝디바 비욘세와 여배우 메간 폭스를 상상했다.

“거울을 보면서 표정과 동작을 만들어 갔어요. 재즈댄스를 배워서 여성적인 동작은 익숙한 장점이 있었고요. 또 잡지 속 모델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더 여성적이고 멋있어 보일까를 고민했죠.”

 

앙상블인 앤젤은 합창과 군무, 솔로 안무를 담당하므로 개개인의 보컬능력이 전면화되는 역할은 아니다. 부담이 덜하지만 톱, 브래지어, 숏팬츠를 착용하는 민망함을 감수해야 하는데다 주조연 배우들과 달리 대역 없이 주 8~9회를 내리 출연하므로 체력소모가 극심하다. 한선천 역시 벌써 5kg의 체중이 줄었다.

“중고교 시절엔 노래방에 자주 가서 버즈와 에머랄드 캐슬의 록발라드를 즐겨 불렀어요. ‘발걸음’이 애창곡이었죠. 노래를 따로 배워본 적은 없으나 ‘킹키부츠’의 넘버들이 팝과 재즈장르라 친숙해요. 현대무용할 때도 재즈음악을 자주 사용했거든요. 더욱이 배우들과 음악감독님이 미성이라고 칭찬해주셔서 자신감이 샘솟더라고요. 많이 가르쳐주셔서 실력도 늘고 있고요.”

◆ “무용, 연기, 음악, 설치미술, 패션 통합무대 꾸미고파”

현대무용수에서 뮤지컬 배우로의 터닝. 느닷없는 변신으로도 다가오지만 그에겐 필연의 산물이다. 유년기 시절 영어뮤지컬 ‘그리스’의 남자주인공 대니를 맡았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당시엔 제대로 소화를 못해서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그리스’에 도전해보고 싶은 게 소망이다.

“뮤지컬 오디션에 도전한 건 종합예술을 꿈꾸고 있기 때문이에요. 무용, 연기, 음악, 설치미술, 패션을 공부해서 서로 다른 장르가 어우러지는 무대를 꾸미고 싶거든요. 모두 관심이 많은 분야라 배워보고 싶어요. 뮤지컬은 연기와 노래를 배울 수 있는 장르라 제 구상의 출발점인 셈이죠.”

 

‘초자’로 밑바닥부터 배우는 단계라 고충은 피할 수 없다. 특히 10cm 이상의 아찔한 킬힐을 신은 채 걷고 춤을 춰야하는 건 전문 무용수인 그에게도 만만치 않은 도전이다. 계속 신다보니 발목과 무릎에 무리가 왔고, 여성스러운 S라인 자태를 만들다보니 허리에도 이상이 왔다. 그럼에도 얼굴엔 미소가 끊이질 않는다.

“그동안 무용 작품에선 남성의 슬픔과 카리스마만 표현해 왔는데 평소엔 신지 못하는 힐을 신고 여성을 연기하는 게 흥미로워요.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거든요.”

반면 상체를 풀업(Pull-up)해서 호흡을 유지하는 점은 발레와 동일하기에 중심을 잡기는 어렵지 않다. 킥(Kick)을 하고나서 사이드 점프를 한 뒤 착지를 하는 고난도 동작도 능수능란하다.

◆ 중2때부터 무용 시작...내성적이던 성격 확 바뀌어

유년기 시절부터 TV에 나오는 가수들의 춤을 따라하길 좋아했던 한선천의 무용인생은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됐다. 동네 문화센터에서 재즈댄스를 배운 그는 네 살 터울인 누나 한선비를 따라 재즈댄스 학원에 등록했다. 재능을 알아본 원장이 현대무용을 권유, 6개월 만에 무용콩쿠르에 출전해 대상을 수상했다.

“내성적이고 말도 잘 못하던 저와 춤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춤을 추면서 성격이 활발해졌고 표현력도 좋아졌어요. 무엇보다 연습실에서 땀 흘리는 제 모습이, 뭔가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에 희열을 느꼈고요.”

▲ '댄싱9' 시즌1에서의 무대 장면(왼쪽)과 뮤지컬 '킹키부츠'의 앤젤 장면[사진=CJ E&M 제공]

덕원예고와 한양대 무용과를 거쳐 ‘가림다 무용단’에 입단, 전문 무용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경제적 문제와 미래에 대한 고민 탓에 무용을 그만 두고 미용사 자격증을 획득하려고 준비하던 찰라, ‘댄싱9’ 오디션 공고를 접하게 됐다.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도전을 했고, 그로 인해 접을 뻔했던 무용인생이 재점화하게 됐다.

◆ 미용사로 진로 바꾸려던 시기 ‘댄싱9’ 도전하며 무대 소중함 깨달아

“무대 위에서의 기쁨을 다시 맛본 계기가 된 거죠. 무용수로서의 책임감은 더욱 커졌고요. 다른 장르의 춤을 추는 동료들을 보면서 이렇게도 움직일 수 있구나, 갇혀있던 생각이 확장됐어요. 그러다가 뮤지컬을 하면서 더욱 확장이 됐고요.”

시즌1에서는 한선천 외에 현대무용수 이선태·이루다·남진현, 비보이 하휘동 등의 스타탄생이 이뤄졌다. 그들과는 지금도 협연 무대 등을 통해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댄싱9’ 이후 한선천은 무용단 공연, 안무작 발표, 누나와 해외 공연 등을 하며 춤꾼으로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문체부로부터 젊은 안무가 지원을 받고 있는 그는 새해엔 개인 작품을 만들어서 무대에 올릴 계획이기도 하다.

 

“새롭게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종합 아티스트가 되기 위해 개척자 정신으로 무용뿐만이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싶어요.”

[취재후기] 롤모델을 묻자 “누군가 나를 롤모델로 삼아주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여리여리한 외모와 달리 옹골차다. 성공을 위해선 열심히 노력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누구나 달콤한 열매를 맛보진 못한다. 실패와 좌절의 쓰라림을 맛보는 게 부지기수다.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질문했다. “호기심이 있어서 도전하는 거니까 제 모토는 ‘놀듯이 일하자’예요.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마인트 콘트롤을 하려고 애를 쓰죠”. 즐기면서 일하는데 당할 자가 없지 않나. 그의 말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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