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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 불편한 진실 '소셜포비아' 홍석재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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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 불편한 진실 '소셜포비아' 홍석재 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3.06 10: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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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지난해 서울독립영화제 관객상과 독립스타상(변요한), 부산국제영화제 넷팩상과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수상한 ‘소셜포비아’는 올해 독립영화계의 빛나는 자산이다. 군인 자살사건의 악플러에게 분노한 네티즌의 신상털기와 현피(웹상 분쟁 당사자들이 실제 만나 싸우는 행위) 생중계로 이어진 마녀사냥, 악플러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 추적 과정이 1시간42분 동안 긴장감 넘치게 질주한다.

홍석재(32) 감독은 첫 장편영화 ‘소셜포비아’에서 소셜네트워킹서비스 세상의 병리현상에 뜨거운 화인을 찍는다. 12일 개봉을 앞두고 그의 영화 활동 새터인 홍익대 인근 한국영화아카데미(KAFA)에서 조우했다. 날카로운 시선의 해맑은 청년이 등장했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당시 한 선수가 결승에서 패한 뒤 여성 네티즌이 악플을 단 뒤 신상이 털리고 PC방에 모인 사람들이 그녀의 집을 찾아가려고 한 사건을 모티프 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 베이징 올림픽 사건이 모티프가 됐지만 하나의 씨앗에서 오진 않았다. 인터넷에 관심이 많던 2011년 무렵 KAFA 기획수업에서 엄태화 감독의 인터넷 커뮤니티와 잉여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잉투기’ 프로젝트가 거론됐을 때 “왜 내가 먼저 못했지”란 안타까움이 솟구쳤다. ‘잉투기’가 가지 않은 길이 있을 거라 보고 자극을 얻었다. 그해 11월 기획을 했고 시나리오 작업을 이듬해 말까지 진행했다. 그 당시가 대선 무렵이라 일베(극우 성향의 인터넷 커뮤니티)의 충격적인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거기에 영향을 얻어 일베에 관한 영화로 하려했으나 간단치 않은 감정에 포기하고, 인터넷에 빠져 있는 아이들로 하자고 진로를 변경했다.

- 익명의 웹 세상을 숙주 삼은 일베의 규모는 그 당시에 비해 훨씬 더 커지지 않았나? 그에 따른 사회적 논란은 가열되고. 일베 관련 영화를 제작할 수도 있겠다 싶다.

▲ 처음엔 “뭐지?”란 반발심에 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충격을 받았다. 이런 이들이 무리를 형성하고 있는 데다 흐름이 굉장히 빨랐다. 이런 커뮤니티가 다음 세대의 중요 구성원이 되지 않을까 여겼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대중의 혐오와 무관심 탓에 더 이상 최전선은 아닌 것 같다. 만약 영화화한다면 (이번에 남자를 다뤘으니)인터넷에 빠진 여자를 소재로 하고 싶다. 아이돌 팬덤을 형성하는 커뮤니티 같은. 과거 ‘여고괴담’이 단순한 호러가 아니라 10대 여학생의 세대성을 띄었는데 지금은 학교가 그 세대의 대표성을 띄진 못하는 것 같다. 10대 여학생을 다룬다면 폰의 카톡창이 주 공간이 될 것 같다.

▲ '소셜포비아'의 9명 방문객들

- 청소년부터 중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많은 이들이 인터넷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카카오톡·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 ‘소셜포비아’는 그런 현실의 정중앙에 위치하는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왜 이 ‘세계’에 영화적 관심이 많은 건가.

▲ 솔직히 ‘말이 안 되는’ 매체다. 중세시대엔 내 생각을 말로만 전달했다. 글은 소수 계급만이 독점했다. 15세기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이후 보급률이 높아지면서 인간의 생각이 지역을 가로질러 전파됐다. 그런데 지금은 140자의 글을 쓰면 모르는 다수가 순식간에 내 생각을 볼 수 있게 됐다. 일상적 소통 감각을 붕괴시킬 정도라 무섭기까지 하다. 인터넷이나 SNS 활동을 하다가 자폭하는 이들이많은데 그 이유는 자신의 글을 얼마나 많이 보는지 체감하지 못해서다. 매체 자체는 빠르고 중립적인데 들불처럼 순식간에 번져나가지 않나. 사실이 오픈되는 건 좋으나 왜곡된 진실이 제대로 된 판단을 거치지도 못한 채 확산하는 현상을 짚어보고 싶었다.

- 악플러 레나가 신상을 털린 뒤 마녀사냥 당하고, 거기에 가담했던 경찰지망생 용민(이주승) 역시 신상털기와 마녀사냥의 피해자가 되는 내용이 그런 의미이지 싶다.

▲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상황이다.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또 욕하고. 우리의 현실을 완벽하게 비춰준다고 생각했다.

- 레나는 여성이고, 이를 응징하려는 9명의 방문자는 모두 남성이다. 성적인 대비를 이룬 이유가 있나?

▲ 일단 실화의 잔상이 강했다. 그 사건에서 여자가 끼지 못했던 과거 마녀사냥이나 종교제의의 느낌을 받았다. 또 남자 여럿이 여자 한명을 찾아가는 데서 오는 성적 긴장감도 고려됐다. 사회구성원 가운데 약자층인 여성이 타깃이 되거나 대상화되기 쉬운 존재인 현실도 반영했다.

 

- 영화에는 카톡과 트위터 대화창, 포스트잇, 대자보 등 텍스트들이 넘쳐난다. 홍감독은 텍스트 과잉시대를 표현하고 싶다는 얘기를 했다. 그런데 내용을 파악하기도 전에 휙휙 지나가는 불편함을 안겨준다.

▲ 관객이 보면서 질식당하는 느낌을 얻길 원했다. 수 없는 말에 삼켜질 것 같은 기분. 그게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리얼리티이기도 하다.

- 러닝타임 내내 영화는 사건을 차곡차곡 포개가며 등장인물의 감정을 점층한다. 관객은 몰입과 긴장의 끈을 놓치지 않게 된다.

▲ 어떤 감독은 인물의 감정 등 캐릭터 중심으로 영화를 만들지만 난 사건 중심의 영화를 좋아하며 동선을 중시한다. 인물이 어떤 공간을 이어나가는 지가 중요하다. 동선이 쉬지 않고 이어지면서 긴장과 몰입력을 주지 않았을까 싶다. 두 주인공의 공간인 노량진과 고시원, 네티즌의 공간인 PC방의 톤이 이어지다가 중간에 호텔이 등장해서 다른 느낌을 주고...이런 것들이 흥미롭다.

- 용민의 권유로 얼떨결에 현피에 참가하는 경찰지망생 지웅 역 변요한과 인터넷에 중독된 경찰지망생 용민 역 이주승은 독립영화계의 스타이지만 질감은 아주 다른 배우들이다.

▲ 요한씨가 주연한 ‘들개’의 김정훈 감독은 KAFA 동기이자 형이다. 이 형을 통해 캐스팅했다. 주승씨는 ‘셔틀콕’을 본 뒤 매료됐는데 이유빈 감독이 중앙대 연극영화과 선배라 캐스팅에 도움을 얻었다. 둘을 붙여놓고 보니 양과 음의 느낌이었다. 요한씨가 성큼 다가가는 스타일이라면, 주승씨는 다가오게 하는 스타일이다. 캐릭터와 너무 잘 맞았고 환상의 궁합이었다. 현장에서 연기 디렉션을 할 필요가 없었다. 배우들의 몸이 이야기를 더 잘 이해하는 순간이 발생한다. 불편하거나 이상하다고 말하면 이를 바꾸기 위한 논의를 집중적으로 하면서 촬영했다.

 

- 특별히 공 들인 장면과 대사를 소개해 달라.

▲ 후반부 텍스트로만 진행되는 채팅방 장면이 이 영화의 코어였다. 사람들은 나오지 않은 채 텍스트로만 싸우는 2분 동안 관객이 진짜 이 세계를 체험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길 원했다. 대사로는 악플러 레나가 다닌 대학 문창과를 찾아갔을 때 친구가 했던 “에고는 강한데 알맹이가 없다”가 있다. 실제 나와 주변 사람들, 뭔가를 만들거나 웹하는 사람들을 보면 눈과 자존심이 강하고 내뱉고 싶은 욕망이 크다. 그게 어떤 때는 독설로 튀어나오곤 한다.

- 궁지에 몰린 용민이 자살소동을 벌이는 옥탑방 옥상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 웹은 관음증이 활발하게 이뤄지는 공간이다. 타깃을 잡아서 몰아세우고 비난하는 모습은 아고라(광장)이나 검투사들이 싸우는 콜로세움을 연상케 한다. 그 공간은 높은 곳이었으면 했다. 탁 트인 곳에서 사건이 벌어졌으면 좋겠다 싶어 옥상을 선택했다.

- 홍 감독을 영화로 이끈 동기는 무엇인가.

▲ 원래 애니메이션을 좋아했다. 안노 히데아키 감독의 ‘에반게리온’을 접했을 때 신세계를 만난 느낌이었다. 그래서 미술학원을 열심히 다녔다. 그런데 실사 영화감독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전환한 오시이 마모루 감독을 보곤 이런 방식도 가능하겠다 싶어서 영화연출을 전공하게 됐다. ‘소셜포비아’의 텍스트 장면은 ‘에반게리온’의 타이포그래픽에서 영감을 얻기도 했다.(웃음)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애니메이션을 연출하고 싶다.

- 전작인 단편영화 ‘필름’은 대학 총학생회장 선거를 배경으로 성희롱 사건을 다뤘고, ‘Keep Quiet’은 대학 도서관에서 공부하던 중 맞은편 자리에서 울린 휴대전화를 받으며 휘말리는 사건을 담았다. 이 시대 청춘이 겪는 사건과 사회성을 스크린에 담아내는 작업이 이어지는 건가?

 

▲ 감정보다 현상에서부터 시작한다. 자극을 주는 이야기, 사회 현상을 담아낸 이야기,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만들고 싶다. 사이즈가 큰 상업영화로 만들기에 적합하지 않은 아이템은 독립영화로 만들 거다. 새로운 스포츠 e-게임시장을 연 스타크래프트 소재 아이템도 구상하고 있다. 2000년대 초중반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표이지 싶다 태동기엔 많은 인물과 사건이 등장하므로 이건 저예산으로는 불가능할 것 같다. 다큐멘터리를 좋아해서 기회가 되면 다큐 작업도 하고 싶다. 다양한 작업에 대한 욕망이 크다.

[취재후기] ‘기발한 필력과 안정적인 연출력’. 홍석재 감독에 대한 수식어다. 얌전한 인상의 젊은 감독은 “감독은 예민해야 할 것 같다”며 늘 레이더를 켜놓은 채 지낸다. 웹서핑 시 흥미로운 콘텐츠, 사건사고를 발견했을 땐 늘 즐겨찾기를 해놓는다. ‘소셜포비아’를 할 때도 도움을 얻었다. 뉴스와 만화 등 서브컬처를 보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동시대성을 담고 있기에 자극을 얻을 수 있어서다. 각자의 분야에서도 도움이 될 만한 습관이다. 귀담아 들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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