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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 도쿄 현지 취재] 정의란 무엇인가? '데스노트' 공연 현장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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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 도쿄 현지 취재] 정의란 무엇인가? '데스노트' 공연 현장을 가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4.18 10: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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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스포츠Q 용원중기자] “마치 신이 된 양 사람을 마구 죽이더니, 결국 마지막엔 너무나 인간답게 처참히 뒈지는군. 아무것도 안 남아, 아무 의미도 없고. 정말 이런 게 제일 재미없단 말야.”

15일 밤 뮤지컬 ‘데스노트’가 공연되고 있는 일본 도쿄 중심가 긴자의 1200석 규모 닛세이 극장. 주인공 라이토를 조종해온 사신(死神) 류크 역의 요시다 고타로가 마지막 대사를 거침없이 토해내며 피날레를 장식하자 팽팽한 긴장감에 숨죽이던 관객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 일본 ‘망가’와 서구 뮤지컬의 결합...인간의 선악, 정의 성찰

‘데스노트’는 일본의 ‘망가(만화)’와 서구의 뮤지컬이 결합한 작품으로 제작 단계에서부터 화제를 모았다. 2003년부터 ‘주간소년 점프’를 통해 연재된 오바타 다케시의 인기 만화는 일본에서만 3000만부 이상 발행되고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과 유럽, 미국 등 세계 35개국에서 번역돼 히트했다. 독창적인 소재와 탄탄한 스토리 덕분에 시리즈 영화, 애니메이션으로도 변주된 이 작품이 뮤지컬로 만들어져 지난 4월6일부터 초연되고 있다.

▲ 일본 도쿄 닛세이 극장 무대에 오른 뮤지컬 ‘데스노트’. 데스노트를 주운 천재 대학생 라이토와 명탐정 엘의 두뇌 싸움을 그린 작품이다.[사진=씨제스컬쳐 제공]

이름을 쓰면 누구든 죽일 수 있는 ‘죽음의 공책(데스노트)’을 둘러싼 이야기다. 우연히 데스노트를 주워 악인들을 처단하는 천재 법대생 라이토와 그에 맞서는 명탐정 엘(L)의 치열한 두뇌싸움을 그린다.

오는 6월 한국어 공연을 앞두고 미리 본 일본 뮤지컬 ‘데스노트‘는 여러 면에서 인상적이었다.

먼저 작품의 묵직한 메시지다. 원작은 풍요롭지만 지루한 폐색감이 지배하던 21세기 초, G2국가 일본의 도쿄를 배경으로 한다. 빈곤, 원한, 전쟁 등 뚜렷한 동기 없이 저질러지는 묻지마 범죄가 증가하던 시기, 인간의 존엄한 생명이 경시되고 정의가 무참히 파괴되는 ‘조용한 광기’가 출몰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대적 상황을 바탕으로 인간의 선과 악, 정의, 사랑의 본질을 예리하게 파헤치기에 한국의 현재 정치사회 상황과도 겹쳐지며 공감대를 넓힐 전망이다.

이날 일본을 대표하는 연출가 구리야마 다미야는 범죄 스릴러 장르를 장착, 이런 주제의식을 거장의 숨결로 관통시켰다. 연극 연출의 대가답게 연극적 요소와 대사가 많은데다 일본어로 공연이 이뤄짐에도 작품에 절로 집중하게 됐다.

◆ 흑백 무대로 메시지 강조...분할화면 구도로 방대한 에피소드 효과적 처리

2층 구조의 단순한 세트, 선명하게 대비되는 흑백의 무대는 작품의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강조했다. 쿵쿵대는 심장 박동소리와 째각째각거리는 시계 초침 소리마저 정교하게 배치돼 시청각 효과를 발휘했다.

▲ 라이토-엘-사신 류크의 3중창

방대한 에피소드, 사신이라는 비현실적인 캐릭터,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1차원의 원작을 3차원 무대예술로 어떻게 구현할 지도 관심거리였다. 구리야마 연출은 무려 28개에 이르는 신(Scene)을 리드미컬하게 이어가며 영상매체에서 자주 사용되는 2중·3중 분할화면 구도를 적극 활용했다.

무대 위에 여러 장면이 동시에 등장하며 시공간을 건너뛰고, 장면과 장면이 자연스럽게 개입하고 포개지는 형식이다. 매우 효율적인 연출 방식이라 눈길을 끌었다.

◆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귀에 쏙쏙 박히는 대중적 선율

‘지킬 앤 하이드’ ‘몬테 크리스토’ ‘황태자 루돌프’로 유명한 미국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의 음악은 현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에 걸맞게 대중적인 정서를 최대치로 드러냈다. 드라마틱하면서 아름다운 선율을 만들어내는 데 정통한 그의 ‘데스노트’ 음악은 비장한 서정성부터 밝고 경쾌한 분위기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웠으며 엔카나 가요, 팝, 록음악을 듣는 듯 했다.

특히 풍성한 하모니의 중창(2중창·3중창·합창)이 귀에 쏙쏙 박힐 만큼 수려했으며 엔딩을 장식한 앙상블의 ‘레퀴엠’은 감동을 자아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 앙상블이 장중한 선율의 '레퀴엠'을 열창하고 있다

이날 공연에서 라이토 역의 우라이 겐지는 데스노트를 손에 넣은 평범한 고교생에서부터 ‘정의의 심판자’를 자처하며 타인의 목숨을 놓고 게임을 벌이는 괴물로 변해가는 캐릭터를 실감 나게 연기했다. 일본 아카데미상 신인배우상을 수상한 엘 역의 코이케 텟페이도 만화 속 모습 그대로 짙은 다크서클에 구부정한 자세의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 엘을 리얼하게 연기했다.

관객이 느끼기에 작품의 중심은 류크 역의 요시다 고타로였다. 데스노트를 인간 세계에 떨어뜨리고 나서 라이토가 살인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조종하는 그는 괴기스러운 외모와 달리 능청스럽고 코믹한 동작과 대사로 극을 이끌었다.

◆ 6월 한국공연...출중한 가창력 캐스트로 오리지널의 감동 증폭

국내 공연제작사 씨제스컬쳐는 이 작품을 라이선스 공연으로 6월20일부터 성남아트센터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린다. 한국 공연에는 김준수(엘), 홍광호(라이토), 정선아(미사·라이토의 여자친구), 박혜나(렘·여자사신), 강홍석(류크·남자사신)이 출연한다.

영국 웨스트엔드에 진출해 ‘미친 가창력’의 매력을 뿜어낸 홍광호는 국내 무대 복귀작에서 극단의 캐릭터 라이토를 압도적 가창력으로 소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류스타 김준수는 카랑카랑하고 허스키한 보이스로 엘을 연기하며 이미지 변신을 꾀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이들의 ‘브로맨스’ 호흡이 얼마나 밀도 높을지가 궁금한 대목이다.

▲ 아이돌 탤런트 미사와 여자 사신 렘의 애틋한 시스터후드가 드러나는 장면

천진난만한 아이돌 탤런트 미사 역의 정선아와 카리스마 넘치는 여자사신 렘 역의 박혜나는 자타 공인 최고 가창력의 디바들이다. ‘위키드’에서 호흡을 맞춘 두 여배우의 극중 애틋한 자매애도 관심거리다. 라이선스 뮤지컬 ‘킹키부츠’에서 여장남자 롤라 역을 천연덕스레 소화한 강홍석의 사신 류크 캐스팅도 싱크로율이 매우 높다.

일본 뮤지컬 배우들에 비해 가창력, 연기력 면에서 우위에 선 한국 배우들의 무대는 완성도가 더욱 높아질 전망이다. 이날 공연을 관람한 씨제스컬쳐 관계자는 “한국 공연에서는 우리 관객의 눈높이에 맞게 무대와 의상 등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 공연의 연출을 맡은 구리야마 연출 역시 “부분적으로 장면을 보강하고 살릴 수 있는 부분을 더욱 살려내 변화를 꾀할 것”이라고 전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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