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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신은 지금 말하고 계신가요?...연극 '스피킹 인 텅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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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당신은 지금 말하고 계신가요?...연극 '스피킹 인 텅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17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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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 기자] 시원한 하늘색 세트를 배경으로 관능적인 탱고음악이 흐르며 두 커플의 춤이 펼쳐진다. “우린 말이 너무 많아요”란 대사처럼 네 남녀는 무수히 많은 말을 뱉어낸다. 두 인물이 같은 말을 동시에 하는가 하면, 돌림노래처럼 연이어 대사를 이어가기도 한다.

국내 초연되고 있는 연극 ‘스피킹 인 텅스(Speaking in Tongues)’는 호주 유명 극작가 앤드류 보벨의 대표작으로 1996년 시드니에서 초연 후 큰 반향을 일으키며 호주작가협회상 공연부문을 수상했다. 이후 2001년 작가가 직접 시나리오로 각색해 제작된 영화 ‘란타나(Lantana)’는 호주뿐 아니라 미국, 유럽 등지에서도 개봉돼 흥행에 성공했고, 호주영화협회상 7개 부문을 수상했다. 또한 2003년 런던비평가협회상에서 작가상까지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1막의 주인공은 레온과 소냐, 피트와 제인 부부다. 어느 날 우연히 만난 상대와 불륜을 저지른다. 제온은 제인과, 소냐는 피트와. 답답함을 참지 못한 소냐와 피트는 배우자에게 자신의 불륜을 고백한다. 두 부부의 관계는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든다.

2막에선 닐이 자신을 버리고 떠난 옛 연인 사라에게 편지를 쓴다. 사라는 자신의 상담치료사 발레리에게 닐에 대해 이야기한다. 발레리는 심야의 외딴 길에서 차가 고장난 뒤 사라진다. 발레리의 남편 존은 아내 발레리의 실종에 애타 한다.

제인은 옆집 사는 유부남 닉의 수상쩍은 행동을 경찰에 신고한다. 3막에서 형사 레온은 닉의 알리바이를 추궁한다. 한편 존은 아내가 집으로 도움 요청 메시지를 녹음했던 시각, 내연녀인 사라와 함께 있었음을 레온에게 고백한다.

‘스피킹 인 텅스’의 부제는 ‘잃어버린 자들의 고백’이다. 자신의 삶과 인간관계 속에서 실종돼 버린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 작품은 두 갈래 이야기를 다룬다. 4명의 배우가 출연하지만 3막에 걸쳐 등장인물은 9명이다. 이들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으며 막과 막을 넘나들면서 존재한다. 이야기는 옆으로 튀거나 역행하기도 한다. 이미 보았던 장면을 다른 관점에서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스피킹 인 텅스’는 등장인물간의 연결고리와 예상치 못한 만남, 오버래핑되는 짧고 중의적인 대사, 배우들의 1인 다역을 통해 퍼즐 조각을 맞춰가듯 이야기를 완성해가며 메시지를 극대화한다. 혁신적인 평가를 받을 수 있으나 한편으론 복잡한 인물관계와 극 구성으로 인해 난해하게 여겨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공간에서 여러 이야기가 겹쳐서 펼쳐지고, 한 배우가 여러 인물을 연기하는 등 기존과 다른 내러티브 형태와 전달 방식은 불편하기보다 흥미로운 관극으로 전환된다.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긴장감을 조성하는데다 요즘 관객들에게 익숙한 장르이기 때문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부부, 연인은 모두 끊임없이 말하지만 상대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결코 타인은 이해하질 못하는 ‘스피킹 인 텅스(방언)’로 자리매김한다. 방언은 기독교에서 성령에 충만해 혼자 내뱉지만 소통의 언어가 되지 못하고 아무도 못 알아듣는 말을 일컫는다.

방언처럼 분출하는 방대한 대사와 이의 배치를 통해 역설적으로 소통 그리고 관계의 본질을 제기한 작가의 비범함, 연출의 영민함이 돋보인다. 극중 대사처럼 “믿음은 간단 명료”하다. 우리는 과연 그러고 있는지를, 요즘의 감수성으로 결코 가볍지 않게 그려낸 수작이다.

상처 입은 삶과 상실의 외로움을 1인 2·3역 연기로 극명하게 전달한 배우 이승준, 강필석, 김종구, 정문성, 전익령, 강지원, 김지현, 정운선의 열연도 인상적이다. 끈끈한 라틴 선율과 서늘한 팝 피아노 음악은 드라마의 밀도를 높인다. 연극 ‘프라이드’, 뮤지컬 ‘심야식등’을 선보인 김동연이 연출을 맡았다. 7월19일까지 대학로 수현재씨어터.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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