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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성장의 20년, 국내 영화제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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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성장의 20년, 국내 영화제의 빛과 그림자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6.03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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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전국은 지금 ‘영화제의 계절’이다.

지난달 전주국제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인디포럼, 유럽단편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광주국제영화제가 숨 가쁘게 열렸으며 6월엔 아랍영화제와 무주산골영화제(4일 개막), KT&G상상마당음악영화제(5일), 퀴어영화제(18일), 미장센 단편영화제(25일)가 개최된다. 7월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8월엔 제천국제음악영화제가 성대한 막을 올린다.

이렇듯 크고 작은 영화제들이 1년 내내 넘쳐나고 있다.

▲ 영화제 역사 20년을 맞는 올해 100개가 넘는 각종 영화제가 전국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개최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전경

◆ 국내 영화제 역사 20년...현재 100개 넘어 평균 3.5일에 하나씩 개최

국내 영화제 역사는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시작됐다. 올해로 20년이다. 부산국제영화제가 일찌감치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성장했으나 베니스(72년), 칸(65년), 베를린(63년)국제영화제와 비교하면 3분의1도 안 되는 짧은 역사다. 우리 경제가 그렇듯 국내 영화제 역시 짧은 시간에 고도성장을 한 셈이다. 비약적 성장에서 파생한 성과와 폐해가 극명하게 교차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집계한 결과, 국내에는 지방자치단체의 지원을 받는 영화제만 48개(국제영화제 15개, 국내영화제 33개)가 있다. 이 가운데 영화진흥위원회가 자체 기준에 따라 보조금을 지원하는 ‘글로벌 국제영화제’인 7대 영화제는 부산·부천·전주·여성·제천·청소년·DMZ이다. 중소 규모 영화제를 합치면 100개가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3.5일에 한 차례씩 영화제가 열리는 셈이다.

이들 영화제는 특성과 규모에 따라 적게는 하루부터 많게는 7~10일, 몇 백만원에서 수십억원의 예산, 불특정 다수 혹은 아주 특정한 대상을 상대로 다채롭게 열린다.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유일무이한 판타스틱 장르영화를 소개하는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디지털’ ‘대안’ ‘독립’의 차별화된 프로그래밍으로 입지를 굳힌 전주국제영화제가 부산국제영화제와 함께 3대 국제영화제를 형성한다.

 

이외 ‘특성화한 주제’로 열리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서울환경영화제, 서울LGBT필름페스티벌, 퀴어영화제, 서울인권영화제, 서울국제사랑영화제, 여성인권영화제, 장애인영화제, 서울노인영화제, 서울국제청소년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KT&G상상마당음악영화제 등이 있다.

‘영화 장르’를 대표하는 영화제로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 부천국제애니메이션페스티벌, 인디애니페스트, DMZ국제다큐영화제, EBS 국제다큐영화제,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 서울국제뉴미디어페스티벌 등이 있으며 ‘영화 형식’에 초점을 맞춘 영화제로는 미장센단편영화제, 대단한단편영화제, 아시아나국제단편영화제, 부산국제단편영화제, 대구단편영화제 등이 있다.

◆ 독창적 영화 소개, 신진 창작자 육성·지원 vs 구성원 내 불협화음, 방만한 운영

아카데미 영화상, 대종상영화제, 청룡영화상과 같은 ‘영화상’과 달리 ‘영화제’는 시상이 목적이 아니라 영화인과 관객이 영화를 매개로 어우러지는 페스티벌이다. 관객 입장에서 영화제는 멀티플렉스와 상업영화 중심의 환경에서 보기 힘든 작품들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반가운 대상이다. 영화인에게 있어선 독창적인 창작물을 소개하는 통로인 동시에 신진 창작자들의 발굴·육성 및 지원의 장 역할을 톡톡히 한다.

하지만 영화제 난립, 군소 영화제의 영세성으로 인한 부실한 콘텐츠, 정부나 지자체 보조금·대기업 후원금에 대한 지나치게 높은 의존도, 방만한 경영, 지자체 개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김선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공동 집행위원장은 “해외 네트워킹과 영화 수급 루트, 노하우가 없는 군소 영화제에서 해외 영화보다 걸기 쉬운 독립영화를 대거 초청하면서 오히려 독립영화가 피해를 보는 부분이 있다”고 걱정했다.

▲ 올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 영상프로젝트 발굴 및 육성 프로그램인 '피치&캐치' 참석자들(사진 위)과 지난달 열린 순천만세계동물영화제 행사에 참석한 어린이 청소년 관객들(아래).

조원희 영화감독 역시 “독립영화를 알바로 고용해 열정 페이를 주는 느낌”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광역단체장이 영화제를 자신의 실적과 존재감을 과시하는 지자체 이벤트로 접근하면 ‘개입’이 이뤄지며 영화제 자체가 흔들린다. 지자체는 스폰서 및 인프라 제공자 역할에 머무르고, 기획·참여자들의 독립성을 지켜주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홍준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도서관과 미술관을 두고 난립한다고 말하진 않는다. 많을수록 좋다고 여긴다”며 “국내 영화제가 그간 성장 지향의 길을 걸어왔기에 최근 들어 인적 구성원 사이의 불협화음이나 방만한 예산 운영 등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영화제가 한국 영화산업 발전에 기여하며 중요한 인프라로 자리 잡았기에 현재 부침과 부작용이 있더라도 긍정적인 면이 훨씬 많다.

그렇다면 영화제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관객 중심’을 꼽는다. 주 대상 설정부터 형태와 규모, 기획 등이 영화제의 주인인 관객을 중심으로 놓고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 관객의 꾸준한 관심, 영화제 내외부 요인 점검, 정부 지원 및 배려 필요

‘대한민국은 영화제 공화국’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영화제가 많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나 양적인 접근은 무의미하다. 성과와 관객 만족도 등 질적인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질적인 도약을 위해서는 잡초처럼 생존하는 작은 영화제부터 세계적 수준으로 발돋움한 영화제에 이르기까지 관객의 꾸준한 관심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영화제 관계자들은 스무 살 성년을 맞은 국내 영화제가 시대적 요구와 원래 목적에 부응하고 있는지, 동떨어진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닌지, 낭비되는 부분은 없는지 내외부적 요인을 겸허히 점검할 때다.

‘문화 융성’을 주창하는 정부·지자체는 ‘일자리 창출·지역경제 활성화’라는 경제논리를 앞세우기보다 다양한 영화제에 걸맞은 지원과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당장 영진위의 국고 지원 영화제 예산 배정액이 적절한가에 대한 건설적 논의부터 이뤄져야한다는 게 영화관계자들의 공통된 목소리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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