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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베테랑' '위로공단' '앨리스'...답답한 사회에 숨통 틔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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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베테랑' '위로공단' '앨리스'...답답한 사회에 숨통 틔우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8.09 1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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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답답한 사회에 숨통을 틔우는 한국영화들이 여름 극장가에 맹위를 떨치고 있다.

여름철 성수기 시장을 점령한 ‘암살’과 ‘베테랑’은 상업 오락영화의 귀재로 불리는 최동훈 감독과 류승완 감독이 각각 메가폰을 잡았다. 하지만 단순한 오락성뿐만 아니라 ‘독립운동’ ‘친일청산’ ‘재벌의 갑질’ ‘민중의 지팡이’라는 키워드를 스크린에 또렷이 박아 넣는다.

오는 13일에는 젊은 세대에게 더욱 가치 있는 영화 2편이 개봉된다. 여성 노동자의 현실을 각기 다른 장르 및 시선으로 바라본 저예산영화 ‘위로공단’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다.

일제강점기 독립투사 이야기를 그린 '암살'과 재벌3세의 악행을 추격하는 광역수사대 활약상을 담은 '베테랑'

858만 관객을 모은 ‘암살’은 일제강점기 독립투사들의 활약상을 그렸다. 화끈한 총격액션을 비롯해 당시 시대상을 복원한 프로덕션 디자인,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조승우 등 초호화 배우들의 명연 등 볼거리가 가득하다. 만듦새 빼어난 상업영화로서 말 그대로 발광할 만하다. 하지만 ‘암살’을 곱씹어볼수록 만만치 않은 무게감을 부여하는 건 인물과 사건을 다루는 태도다.

극중 친일파 암살작전을 지휘하는 두 주인공은 상하이 임시정부의 백범 김구(김홍파)와 항일무장단체 의열단을 이끈 약산 김원봉(조승우)이다. 의열단은 폭력투쟁을 통한 민중혁명을 추구한 단체다. 해방 후 김구는 남한으로 돌아왔으며, 김원봉은 북한으로 건너가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까지 지냈다. 이데올로기의 맹아적 형태·방법론이 달랐음에도 ‘항일 독립’이라는 대의에 머리를 맞대는 김구와 김원봉의 모습은 '배척과 대립'이 팽배한 현실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또 영화 후반부엔 1949년 반민특위(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이 열린다. 해방 후에도 일제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으로써 경찰 고위직까지 오르며 승승장구하던 친일파는 피고석에 앉았으나 증거인멸과 거짓 증언에 힘입어 석방된다. 하지만 유유자적 길거리를 활보하던 그는 독립군 저격수였던 안옥윤(전지현)과 임시정부대원 출신 명우(허지원)가 쏜 총에 의해 처단 당한다. 미완의 역사적 과제를 영화가 이룬 격이다.

액션과 코미디가 포진한 ‘베테랑’은 안하무인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의 악행을 좇는 행동파 형사 서도철(황정민)과 광역수사대 팀의 활약상을 다룬다.

지난해 일명 ‘땅콩회항’ 사건과 최근 벌어지고 있는 ‘롯데가 형제의 난’으로 재벌에 대한 국민적 공분이 임계점을 넘고 있는 시기에 ‘베테랑’은 무소불위의 갑질에 탐닉하고 노동자의 죽음 앞에서 조작·회유·협박을 일삼는 재벌의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어? 수갑 차고 다니면서 가오 떨어질 짓 하지 말자”는 서도철의 대사는 권력의 하수인이 아니라, 국민의 파수꾼으로 살아가려는 날선 직업정신을 웅변한다.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고 있는 ‘베테랑’은 개봉 4일 만에 2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조원희 영화칼럼니스트는 “천만영화 ‘실미도’ ‘괴물’ ‘변호인’ ‘명량’ ‘국제시장’ 등 최근 10년간 관객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은 영화들은 대부분 사회적 함의를 갖추고 있다”며 “관객은 단순한 오락적 재미만이 아니라 영화를 통해 자아 성장과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이 깊이 있어지기를 원한다”고 짚었다. 이어 “사회적 이슈를 가져가는 게 영화를 윤택하게 만들어준다”고 강조했다.

국내외 여성 노동자의 역사를 풀어낸 시적 다큐멘터리 '위로공단'과 여성 노동자 수남의 세상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13일 관객과 만나는 ‘위로공단’은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서 한국인 최초로 은사자상을 수상해 세계적인 화제를 모은 임흥순 작가의 작품이다.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그리고 저마다의 꿈과 행복을 위해 일해 온 여성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한 인터뷰와 예술적 영상으로 풀어낸 다큐멘터리다.

시각예술과 영화의 경계를 아우른 ‘위로공단’에는 70년대 동일방직 오물투척사건과 YH무역사건부터 2005년 기륭전자사태, 현재의 감정노동자들에 이르기까지 40여 년을 아우르는 노동자들의 눈물과 아픔, 감동 스토리가 22명의 인터뷰와 자료사진으로 담겼다. 한국을 넘어 캄보디아, 베트남 여성들의 척박한 노동현실과도 마주함으로써 시대와 공간을 가로질러 존재하는 노동의 의미를 성찰하게 된다.

‘위로공단’이 위로의 서사시라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감독 안국진)는 잔혹한 블랙 코미디다. 남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집 한 칸 마련하기 위한 욕망으로 생활의 달인이 되고, 마침내 살인자가 되는 여자 수남(이정현)의 이야기다.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해 성실하게만 살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수남은 14개의 자격증을 취득하고, 건물청소·주방 설겆이·명함꽂기·복어해체·신문배달 등 비정규직을 전전한다. 열심히 살아도 행복해질 수 없는 세상에 대한 수남의 통쾌한 복수는 5포 세대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할 전망이다.

올해 상반기는 천편일률적인 흥행 공식의 영화들이 양산됨으로써 한국영화가 극도로 위축됐다. 만만치 않은 무게의 역사의식을 수록하고, 사회적으로 민감한 사안이나 부조리에 목소리를 내는 작품들이 연이어 관객의 품에 안김으로써 한국영화의 다양성, 개성화가 다시금 동력을 얻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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