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2 17:12 (목)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 "저 4차원 아니에요~" [인터뷰]
상태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 이정현 "저 4차원 아니에요~"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8.08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꼬박 20년이 걸렸다. 1996년 영화 ‘꽃잎’에서 슬픔과 한을 간직한 소녀 역으로 신들린 듯한 연기력을 보여줬던 이정현(35)이 20년 만에 맡은 여배우 원톱 영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8월13일 개봉)로 가공할 연기술을 터뜨린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 대상 수상작인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열심히만 살면 행복해질 줄 알았던 수남의 파란만장한 인생역정을 그린 코믹 잔혹극이다.

판타지와 리얼리즘, 블랙코미디가 혼재한 영화는 사랑하는 남편과 살 집 한 칸을 마련하기 위해 투잡, 쓰리잡을 전전한 생활의 달인 수남이 그녀의 행복을 방해하는 세력에 살인도 서슴지 않는 복수극을 벌여가는 내용을 담았다. 수남의 순수함과 광기가 뒤섞인 캐릭터는 이정현의 호흡으로 빛을 발한다.

 

폭염이 절정을 치달았던 7일 오전, 약수역 부근 카페에서 꽃잎을 연상케 하는 풍성한 원피스 차림의 이정현과 마주했다.

◆ 박찬욱 감독 권유로 출연...순수한 톤으로 '사랑밖에 모르는' 수남 연기

천만 영화 ‘명량’ 이후 시나리오는 쇄도했으나 소모적이거나 잊혀지는 캐릭터들이라 줄줄이 거절했던 차였다. 특히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2012년 독립영화 ‘범죄소년’의 어두운 미혼모 효승 역할을 한 뒤라 이미지가 고정되는 것을 우려한 소속사의 판단으로 한 차례 거절했던 작품이었다.

그런데 판타지 영화 ‘파란만장’(2010)으로 인연을 맺었던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뭐하고 있느냐”고 묻기에 “놀고 있다”고 대답하자 “최고의 시나리오다. 출연해라”고 권유했다.

“박찬욱 감독님은 제가 웃기대요. 코믹 요소를 잘 소화할 거라고 판단하셨대요.(웃음) ‘차이나타운’은 여성 투톱이고, ‘밀양’도 남자배우가 서브로 존재하는 영화인데 여자 혼자 끌고 가는 작품이라 관심이 갔어요. 예측 불가능한 이야기라 1시간 만에 단숨에 읽어버렸어요. 쿠엔틴 타란티노의 과감성과 잔인함이 느껴졌고, 여배우를 통해 사회적 문제를 이야기하려는 점도 매력적이었죠. 무엇보다 수남 캐릭터가 바로 잡혀서 너무 신났어요.”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평범하지만 손재주 뛰어난 30대 여자가 저지르는 비범한 일로 가득하다. 복수와 응징을 관객에게 이해시키려면 수남의 캐릭터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수남은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예요. 한 남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서, 남자의 불행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이런 일을 저지르니까 순수하고 맑아야죠. 엉뚱하면서 사랑스럽게 보여야 하고요. 그래서 어린 조카의 직각형 글씨체를 모방하고, 말투와 표정을 유아틱하게 만들어갔어요. 반면 일에 시달리는 친구라 외모는 초췌해보여야 했어요. 머리는 볼륨을 살려 부스스하게 매만지고, 의상은 안국진 감독님께 제안해 동대문시장에서 구입해온 허름한 옷으로 대체했고요.”

 

◆ 스쿠터·명함꽂기·칼질 달인급 기술...여배우 중심 영화 활성화 소망

극중 이정현은 스쿠터를 선수급으로 몰고 다니며 신문배달, 명함 꽂기, 청소대행, 주방 설거지, 칼질과 복어 해체를 뚝딱 해낸다. 자전거조차 타지 못했던 이정현은 스쿠터 운전을 위해 무술감독에게 특수훈련(?)을 받았고, ‘생활의 달인’ 자료 비디오를 숙지한 뒤 차 안에서나 집에서 틈만 나면 명함 날리기에 매진했다.

“평소에도 청소를 잘 하는 편이에요. 현장에서 스태프들로부터 칭찬을 많이 들었죠. 문제는 스쿠터였는데 슛 들어가면 천천히 몰고, 컷 사인이 나면 넘어지고의 반복이었어요. 상처가 많이 났어요.”

한국영화아카데미(KAFA)가 제작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는 적은 제작비로 인해 이정현은 노 개런티로 출연했고, 스태프들도 재능기부로 참여해 완성시킨 작품이다.

“개런티가 문제인가요? 새로운 걸 느낄 수 있게 해주면 얼마든지 개런티 없이 출연 가능하죠. 정말 이번에 내 스토리를 다 보여줄 수 있어서 너무 신났어요. 원 없이 연기할 수 있었으니까.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로 좋은 피드백을 주고 차기작으론 상업영화에 출연해서 정당하게 개런티를 챙길래요. 후후.”

노동의 대가인 임금마저 포기한 채 뛰어들도록 만든 이유는 가슴을 짓누르는 답답함이다. 여자가 극을 이끌어가는 작품은 저예산 독립영화에서나 가능하고, 대규모 상업영화에서는 철저히 외면 받는 현실 때문이다.

 

“‘차이나타운’ ‘암살’이 잘 돼서 다행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도 흥행에 성공해야 해요. 개인적으론 그래야 시나리오가 들어오니 급해요.(웃음) 언젠가 모 영화제작자에게 ‘우리나라에 놀고 있는 여배우들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이런 거냐’고 물은 적이 있어요. 투자자들이 티켓파워가 있는 남자배우들을 선호하고, 여성 관객들 때문이라고 대답하시더라고요. 넌센스예요. 여성관객이 좋아할 여자 캐릭터 중심의 영화가 얼마나 많은데요. 나탈리 포트먼 주연의 ‘블랙 스완’ 같은 작품 보세요. 투자자 마인드가 바뀌었으면 해요.”

◆ “절대 4차원 아니에요. 후배 동료들은 너무 평범하다고 놀려요”

배우 이정현을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진실 혹은 오해’는 ‘강렬한 캐릭터’와 ‘4차원’이다. 맡는 역마다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올 법한 캐릭터 그리고 이를 소화하는 연기다.

“관객에게 확 각인시키기를 원하기 때문이에요. 예쁘고 청순한, 편안한 느낌의 여자 캐릭터는 너무 많은 배우들이 할 수 있으니까요. 감동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고르다보니 강한 역할을 많이 한 것 같아요. 또 보통 배우들이 연기를 어떻게 할지를 감독님에게 말하곤 하는데 전 캐릭터의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요. 이에 대한 인지만 하고 큐에 들어가면 확 빠져버리죠.”

이정현이 ‘4차원’ 소리를 듣게 된 데는 범상치 않은 캐릭터뿐만이 아니라 가수활동을 통해 구축한 이미지 영향이 크다. ‘와’ ‘바꿔’의 스테이지는 15년이 흐른 지금도 그녀의 이미지를 규정한다.

“저 4차원 아니에요! ‘와’ 때는 신비주의가 통했기에 무대 뒤에서조차 연기했던 거였거든요. 콘셉트일 뿐이었죠. 후배나 동료들이 저를 만나면 너무 평범하다고 놀릴 정도예요. 박찬욱 감독님께서 촬영현장에서 만신에게 ‘재 신기 있냐’고 묻자 ‘없다. 정령이 너무 맑다’고 말씀하셨어요.”

 

이정현은 배우와 가수활동을 겸업하는 흔치 않은 엔터테이너다. 팝스타 레이디가가에 앞서 도발과 파격의 노래·의상·무대를 선보였다. 2000년 이후 중국 활동을 지속해오고 있는 원조 한류스타이기도 하다. 그랬던 그녀가 지난해 말 ‘무한도전- 토토가’를 통해 가수로서 재조명되며 다시금 화제의 중심에 서게 됐다.

“영화 ‘꽃잎’ 이후 연기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어린 나이 탓에 연기 폭이 좁아서 너무 답답했어요. 풀 수 있는 걸 찾다가 가수를 하게 된 거예요. 배우는 선택 받아야 하고 운도 따라야하는데 가수는 나 혼자 언제든지 할 수 있는 직업이니까요. 쌓인 에너지를 잘 풀었으나 이미지가 강해져서 이후 공포물만 들어오더라고요. 한을 중국·일본 활동을 하며 푼 거예요.”

하지만 아무리 대륙이 ‘와’ ‘바꿔’의 여신에 열광해도 모국에서 활동하고 싶은 욕망에 힘들었다. 한국에선 이정현이 연기하기 싫어서 쉬는 줄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러던 차에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파란만장’ 제의를 받고 다시금 영화계로 되돌아오게 됐다. 이정현에게 박찬욱 감독은 배우임을 깨우쳐준 멘토와 같은 존재다.

◆ 국민행복지수 낮은 시대, '성실한...' 관람하며 스트레스 해소하기를

‘토토가’ 이후 2000년대 출생 팬들이 많이 생겼다. 그들이 음반 발표를 원해서 계속 좋은 곡을 받고 있다. 이제껏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콘셉트로 올해 안에 음반을 출시할 예정이다. 누구보다 성실하게 살아온 20년차 배우 이정현은 “내려놓는 법을 배우고 세상과 타협할 줄 알게 돼 여유로워졌다”며 “나이가 드니 표현할 수 있는 게 많아져 기쁘다”고 활짝 미소 지었다.

“한국사회가 집에 대한 집착이 심해서 하우스 푸어가 많잖아요. 취업·결혼·출산을 포기하는 3포세대, 5포세대의 어려움에 굉장히 공감해요. 제 주변의 부유하게 사는 이들도 불행해 하는 경우가 많고요. 국민 행복지수가 낮기 때문일 거예요. 힘들게 살아가시는 많은 분들이 ‘성실한 나라의 앨리스’를 보며 스트레스를 푸시길 바래요.”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관련기사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