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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만에 돌아온 70년대 여배우 문숙의 '뷰티 인사이드'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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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년 만에 돌아온 70년대 여배우 문숙의 '뷰티 인사이드'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8.14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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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몇 해 전부터 ‘자연치유가’ ‘명상가’ ‘요가·치유식 전문가’로 저서(‘문숙의 자연식’ ‘문숙의 자연치유’ ‘마지막 한 해’)를 출간하며 국내에 다시금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여배우 문숙(62)이 38년 만에 스크린으로 돌아왔다.

◆ 판타지 로맨스 ‘뷰티 인사이드’에서 매일 변하는 남자 우진 엄마 열연

판타지 로맨스 ‘뷰티 인사이드’(백감독)에서 자고 나면 매일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 가구 디자이너 우진의 엄마 역을 맡은 그녀를 13일 오후,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흘러내린 백발에 해외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마 소재 숄을 두르고, 허름한 검정 고무신 차림이었지만 그 어느 여배우보다 우아하고 빛났다.

 

“그때그때의 삶이 특별한 선물이라 특별히 나쁘지 않으면 긍적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예요. 주연할 나이도 아니고, 예쁘게 보이거나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었기에 부담 없이 영화에 참여했어요. 두 아이를 길러봤으니 특별한 아들을 둔 우진 엄마의 내면이 절로 이해됐고 좋았어요. 역할도 작아서 정말 부담이 느껴지질 않았어요.”

회현시장에서 뜨개질 가게를 운영하는 초로의 여인, 남녀노소로 바뀌어 잊을만 하면 찾아오는 아들을 맞이하는 엄마를 가슴으로는 충분히 받아들였으나, 연기하기엔 녹록치 않았다. 어느 날은 40대 남자배우 배성우, 또 다른 날은 20대 여배우 고아성 등과 모자 호흡을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이 다르니 헷갈리더라고요. 질질 울면서 등장하는 배성우씨를 처음 끌어안는데 감독님이 ‘연인 사이가 아니에요’라고 NG 사인을 내기도 했고요.(웃음) 성우씨한테 귓속말로 ‘당신 누구신데 연기를 이리 잘 하세요? 어디서 배웠어요?’라고 물었어요. 고아성씨는 똘망똘망하고. 다들 연기를 너무 잘 하더라고요.”

오랜만의 복귀, 시시각각 변하는 아들을 상대해야 하는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감독과 남편 역으로 짧게 출연한 배우 이경영의 힘이 컸다.

“단역 배우들보다 기량이 부실했으니 무조건 믿고 들어갔어요. 감독님이 많은 조언을 해줬고, 거기에 철저히 맞췄죠. 시키는 건 잘 해요. 공부도 잘 하고. 하하. 이경영씨에겐 감동을 받았어요. 연기 잘 하는 배우가 있으면 존재감으로 인해 화면이 확 변하는 순간이 있어요. 말론 브란도가 그렇거든요. 그런데 이경영씨 역시 그러더라고요. 정말 저의 연기를 잘 받쳐줬고, 존경할 만한 연기력이었어요. 너무 고마웠고, 공연을 했다는 게 영광이었어요.”

 

40여 년 만에 접한 촬영 현장은 너무나 변해 있었다. 가장 큰 변화를 ‘시스템’이라고 꼽았다. 과거엔 아날로그였으나, 현재는 디지털이다. 그에 따라 연기술도 달라졌다.

“과거엔 신파 연기를 할 수밖에 없었어요. 후시 녹음이 이뤄지던 시기라 배우들은 대사를 대강만 알고 현장에 가면, 감독은 바로 앞에서 대사, 시선, 표정, 액션 등을 일일이 지시했거든요. 우린 모든 걸 듣고 연기했고요. 그런데 지금은 배우들이 사전에 캐릭터와 상황을 철저하게 분석해서 감독과 의견을 나누며 창조적으로 연기를 해내잖아요. 그러니 이리 잘 하는구나...후배들에게 큰 감동을 얻고 있어요.”

22명의 배우가 우진 역을 연기한 ‘뷰티 인사이드’에 대한 문숙의 해석은 무척 흥미롭다. 그는 이 영화가 판타지가 아니라고 잘라 말했다.

“18세에 사랑했던 사람을 노년에 만났을 때 외양이나 내면이 전혀 다른 사람이 돼있어도 우린 사랑의 감정이 기억되기에 과거의 그 사람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잖아요. 과거의 꽃미남 얼굴이 보이는 거죠. ‘뷰티 인사이드’는 인간의 내면, 잠재의식 속에서 변하는 대상을 ‘매일 변하는 남자’라는 상징으로 끄집어낸 작품이에요. 그래서 깊은 공감과 감동이 이뤄질 거라 여기고요.”

◆ 70년대 은막의 스타로 각광...이만희 감독 사별 후 美 이민, 화가·자연치유가 활동

여배우 안인숙 염복순 문숙 이영옥 윤여정 임예진 양정화 서미경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등은 1970년대 스크린에 강렬한 인장을 찍었다.

 

이 가운데 74년 영화 ‘태양 닮은 소녀’로 데뷔한 문숙은 오드리 헵번을 연상케 하는 큼직한 이목구비의 서구적 외모와 개성 강한 연기로 주목 받았다.

이듬해 ‘삼포 가는 길’(감독 이만희)에서의 술집 작부 백화 역으로 대종상을 비롯해 각종 영화제 신인상을 휩쓸었다. 거장 이만희 감독과의 결혼과 사별을 겪은 뒤 77년 ‘저 높은 곳을 향하여’를 끝으로 미국으로 이주하며 팬들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 감독의 죽음이 너무 충격이었어요. 죽음이 내 옆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저희 둘의 관계가 타이트했기에 더욱 감당이 안 되더라고요. 너무 어린 나이이기도 했고요. 삶 자체에 의문이 들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어요. 부화가 되기도 전에 누군가 알을 확 깨버린 상황이었어요. 결국 살아남기 위해서 미국으로 간 거죠.”

고교시절부터 그림반 활동을 했을 만큼 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문숙은 플로리다 린에린 예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 총장대상을 받으며 졸업했다. 이후 산타페에 거주하며 작품 활동을 해나갔다. 다수의 개인전을 개최하며 작품이 잘 팔리는 인기 작가로 이름을 떨쳤다.

“동양적 화풍의 추상화를 주로 그려요. 나를 찾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동양사상에 젖어들게 됐기 때문이죠. 수 백점은 그렸는데 동양적 내용의 서양화라 컬렉터들이 좋아하더라고요. 본능적으로 연기를 하고 싶었던 욕망을 그림을 그리면서 풀었던 것 같아요. 어차피 삶이 예술이니까 그림과 삶 속에서 나를 주인공으로 잡아나가고, 나를 예술가로 매니지먼트하면서.”

 

주로 작업실에 틀어박혀 혼자 그림 작업을 하느라 몸이 아프고, 심경이 복잡했다. 사람들과 만나면서 환기를 할 필요성을 느껴 요가와 자연치유식을 배우게 됐다. 타고난 역마살과 학습욕구로 인해 산타바바라에서 요가 강의를 하고, 뉴욕에서 자연치유식 조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코네티컷주 동양영양학 본원에서 치유식 과정을 수료했다. 이후 하와이 마우이 섬으로 건너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림과 저술활동, 요가·명상·자연치유식 강의는 늘 함께한다.

“홀로 미술작업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는 강의를 하면서 균형을 유지하는 거죠. 한국도 ‘힐링’ ‘친환경’ ‘자연식’이 유행하고 있는데 때가 무르익은 것 같아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쁘게만 살다보니 예전에 없던 병들이 많아졌잖아요. 이제야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된 거죠.”

문숙은 미술·연기 등 창작활동을 비롯해 명상, 요가, 자연식 모든 게 결국 나를 만나는 거라고 강조한다. 나를 들여다보며 자신을 끄집어내는 활동이라는 거다. 집착과 욕심을 내려놓은 상태에서 자연과 나의 기운이 같이 흐르면 창작열정이 절로 왕성해진다. 풍요로워지고 모든 게 예술의 경지가 된다.

최근 아이맥스 영화관의 대형 화면에 등장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글자글한 주름에 염색을 하지 않아 하얗게 센 머리가 스크린을 가득 메웠다.

 

“다른 배우나 관객들에게 뻔뻔하거나 무례한 거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전 노송(老松)이잖아요. 소나무는 늙은 걸 개의치 않잖아요. 물론 제가 배우를 계속 했다면 이렇게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싶어서 열심히 가꾸는 배우들 역시 100% 이해해요.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닌 거니까. 저를 보시곤 ‘여배우가 저래도 되나 싶었는데 소박하고 괜찮아 보인다’고 말씀해 주셔서 다행으로 여겨요.”

“오래 살고 볼 일”이란 격한(?) 표현이 이어졌다. 한국에 다시 오리라곤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영화를 다시 하리라곤 더더욱 그랬다.

“이제는 못할 일이 하나도 없어요. 사진작가인 아들, 화가인 딸 모두 컸고 부모님도 돌아가셨기에 이젠 나만 위해 살면 돼요. 불꽃을 태울 시기죠. 다음엔 너무 연기를 잘해서 주연상을 받을 지도 모르잖아요. 하하. 이제 내가 할 일만 남은 거죠. 차기작 계획? 미리 생각하질 않아요. 삶이 복잡해지니까 그때그때 닥치면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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