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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토리텔링의 힘, 혁신적 연극 '차이메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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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스토리텔링의 힘, 혁신적 연극 '차이메리카'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07 23: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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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30분 긴 러닝타임, 방대한 내러티브 압축한 이야기로 쏜살같이 흘려보내

[스포츠Q 용원중기자] 영국 극작가 루시 커크우드의 연극 ‘차이메리카(Chimerica)’는 2013년 영국 평론가협회 작품상·연출상·무대미술상과 이브닝 스탠더드 어워드 작품상, 지난해 영국 올리비에 어워드 작품상·무대미술상·조명상·음향상을 휩쓴 수작이다.

국내 초연 무대가 지난 4월14일부터 두산아트센터 스페이스111에서 ‘2015 두산인문극장 예외’로 관객을 만나고 있다.

세계 경제·정치를 주도하는 G2 중국과 미국에 대한 이야기인 작품은 중국 천안문 시위를 통해 만난 젊은 미국인 사진기자 조 스코필드와 중국 지식인 장린의 20여 년에 걸친 우정과 이들의 엇갈리는 삶을 통해 동서양, 중미 관계를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 천안문 광장에 진입하는 탱크, 중국 지식인 장린, 미국인 사진기자 조(사진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989년 중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 발발한 민주화시위 당시 진입하는 탱크를 검은 비닐봉지를 든 채 두 팔로 막아선 한 남자. 일명 ‘탱크맨’을 카메라에 포착한 미국인 사진기자 조 스코필드는 그 후 20여 년 동안 탱크맨에 대한 진실을 찾아내려 애를 쓴다. 그러던 중 베이징 일간지에 천안문 사건과 관련된 암호 같은 메시지가 실린다. 이를 간파한 조는 탱크맨이 누구이며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시금 추적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놀라운 진실을 목도하게 된다.

‘차이메리카’는 사진 한 장을 모티프 삼아 급변하는 세계정세를 촘촘히 극 안에 녹여낸 작가의 대단한 상상력과 취재 역량이 단연 돋보인다. 방대한 내러티브를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를 도입해 긴장감을 높이고, 속도감 넘치는 장면 전환을 통해 효과적으로 담아낸다.

최용훈(극단 작은신화 대표) 연출은 오리지널 공연의 틀에 갇히지 않은 채 창고 같은 극장 안에 3개의 무대를 만들어 분리된 객석에서 각각의 무대를 서로 다른 각도(시선)로 보게 한다.

▲ 창고 같은 공간에 3개로 분리된 무대[사진=두산아트센터 제공]

3개의 무대에선 시공간의 변화와 더불어 사실과 허구의 일들이 벌어진다. 천안문 민주화 시위로 시작한 이야기는 월스트리는 점령 시위로 마침표를 찍는다. 관객은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타락으로 인해 붕괴되는 가치와 몰락하는 개인의 민낯을 마주하게 된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건들을 향해 고개를 돌리지 않으면 놓쳐버릴 수밖에 없는 현실을, 무대와 객석 구조로 끌어들인 혁신적이면서도 영리한 연출법이다.

미국의 아이텐티티를 응축한 조는 자유분방하고 도전적이다. 처음엔 성공에 대한 집착으로 탱크맨을 찾기 시작하지만 이 과정에서 도덕적 딜레마에 빠진 정치인, 자본의 시녀가 된 미디어 종사자, 중국의 인권탄압으로 불법 체류자가 된 망명자들을 만나며 명분만 남은 미국적 가치와 마주하게 된다. 조를 연기하는 관록의 배우 서상원은 속사포 대사와 강약조절을 자유자재로 해낸다.

천안문 광장에서 푸르른 청춘의 이상과 사랑을 유린당한 채 낡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은둔자처럼 살아가는 장린은 공안의 검열과 감시 아래 질식 상태에 이른 중국 지식인을 대변한다. 23년 동안 가장 고통스러운 매일을 살아가는 남자, 유배자의 삶을 사는 장린을 연기한 최지훈은 캐릭터 내면 깊이 침잠해 매회 에너지를 극한까지 분출한다.

▲ 테사(전현아), 조(서상원), 멜(최용민)의 출연 장면(사진 왼쪽부터)

이외 전현아(테사), 최용민(멜), 임홍식(프랭크)를 비롯해 1인 다역을 소화한 남기애 홍성경 성노진 박삼녕 등 배우들은 자신에 차 있으면서 섬세한 연기로 무대를 장악한다.

올해 한국 연극계의 수확이라고 말할 수 있는 ‘차이메리카’ 초연은 이야기의 힘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웅변하는 작품이다. 무대에 몰입하느라 물리적으로 긴 러닝타임(2시간30분)이 순식간에 흘러버린 듯한 기이한 체험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성수정 번역. 5월16일까지.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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