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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은 음악, '팬텀'은 스토리텔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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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유령'은 음악, '팬텀'은 스토리텔링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5.06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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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뮤지컬 ‘팬텀’이 지난달 28일 국내 초연 무대의 막을 올렸다.

‘팬텀’은 극중 주인공 팬텀(유령)처럼 탄생부터 불운했다. 극작가 아서 코핏과 작곡가 모리 예스톤은 1983년 연출가 겸 배우 조프리 홀더와 의기투합해 프랑스 작가 가스통 르루의 추리소설 ‘오페라의 유령’(1910)을 뮤지컬 ‘팬텀’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에 돌입했다. 대본에 음악이 입혀질 즈음이던 84년 앤드루 로이드 웨버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제작한다는 사실이 공표됐고, 제작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86년 웨버의 뮤지컬은 영국 웨스트엔드에서 대성공을 거두며 세계 4대 뮤지컬 반열에 올랐다. 제작이 무산된 ‘팬텀’은 때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91년 미국 휴스턴에서 초연하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이후 미국, 일본, 호주, 영국 투어를 하며 전 세계 관객과 만나오고 있다.

▲ 팬텀 역 류정한, 크리스틴 역 김순영, 가면을 쓴 팬텀, 벨라도바 역 발레리나 김주원(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 ‘오페라의 유령’ 이란성 쌍둥이 ‘팬텀’, 남녀·부모자식 사랑 이야기로 감동 증폭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 ‘팬텀’은 같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이란성 쌍둥이인 셈이다. 매우 닮았으면서도 다르다. 원작은 19세기 파리 오페라하우스에서 일어났던 유령 사건과 그에 얽힌 한 여가수의 실종사건을 추적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배경으로 수수께끼 같은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는 가운데 사랑, 증오, 희생 등 인간 본연의 감정을 깊이 있게 다뤄 오늘날까지 꾸준히 사랑받는 명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이 파리 오페라하우스 지하에 숨어사는 비운의 팬텀(유령)과 청초한 가수 크리스틴, 귀족청년 라울의 삼각관계에 집중했다면 ‘팬텀’은 팬텀과 크리스틴의 인간적 교감, 로맨스에 초점을 맞춘다. 여기에 원작에 충실하게 팬텀의 탄생 비화와 유년기를 그려내 그의 복잡한 내면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팬텀-크리스틴의 절절한 멜로와 더불어 팬텀의 부모-자식의 이야기가 덧대져 스토리텔링은 흡인력을 발휘한다. 적절한 신파 코드로 인해 국내 관객에게 있어서 ‘오페라의 유령’보다 친숙하고 어필하는 장점이 있다. 1막 1시간30분, 2막 1시간의 긴 러닝타임에도 지루할 틈 없이 극에 몰입하게 되는 이유다.

▲ 크리스틴이 1막에서 '더 비스트로'를 열창하는 장면. [사진=EMK뮤지컬컴퍼니 제공]

◆ 오페라·발레극 등 극중극 통한 밀도 높은 구성...완성도 높은 무대미술  

극 구성과 무대예술의 미학도 대단하다. ‘팬텀’에는 극중극이 빈번하게 사용됨으로써 다채로운 효과와 함께 밀도 높은 구성을 보여준다. 오페라 ‘리골레토’ ‘아리아’ ‘라 트라비아타’ ‘발퀴레’ ‘요정의 여왕’이 중간중간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올려지며 2막 회상장면에선 젊은 시절의 제라드 카리에르(윤전일·알렉스)와 벨라도바(김주원·황혜민)의 드라마틱한 발레극이 10여 분에 걸쳐 펼쳐진다.

또 파리 오페라하우스를 그대로 옮겨온 듯한 3층 구조의 극장 세트, 팬텀의 공간인 어두운 지하세계와 미로처럼 얽혀진 물길, 고풍스럽고 화려한 대형 샹들리에 등은 환상과 현실이 혼재하는 꿈결 같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세트와 미술, 의상 등에 있어서 완성도를 자랑했다.

방점은 남녀 주인공 팬텀과 크리스틴이 찍는다. 팬텀의 캐릭터가 풍성해졌다면, 크리스틴은 소위 ‘미친 가창력’으로 타이틀 롤 역할을 톡톡히 한다. 1막 후반부 고난도 콜로라투라 기량이 요구되는 ‘더 비스트로’를 비롯해 천장을 뚫을 듯한 고음역대 노래로 객석에 탄식을 자아내게 했다. 현역 소프라노 임선혜 김순영을 캐스팅할 수밖에 없었던 대목이다.

5일 공연에서 뮤지컬 스타 류정한은 절절한 연기와 풍부한 성량으로 탄탄한 팬텀 캐릭터를 무대에 구현했다. 뮤지컬에 첫 출연한 소프라노 김순영은 미모와 작은 체구에서 뿜어내는 절창으로 성공적인 크리스틴 데뷔를 알렸다.

▲ 화려한 의상과 세트가 돋보이는 뮤지컬 '팬텀'. 유럽 고음악계 디바 임선혜가 크리스틴 역을 맡아 열창하고 있다.

◆ 크리스틴 노래 고난도 기량 요구, 웅장한 음악에도 귀에 달라붙는 곡 없어 

이렇듯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팬텀’이 ‘오페라의 유령’ 그늘에 가린 이유는 무얼까. 1~2막에 걸쳐 30곡의 노래가 방출되고, 화성과 선율은 한결 같이 웅장하며 비장감이 감돌고 아름답다. 감상용으로는 매우 좋으나 ‘오페라의 유령’에 흐르는 ‘Phantom of The Opera’ ‘All I Ask of You’ ‘Think of Me’와 같이 애창곡이 될 만한 넘버가 별반 없다는 점이다. 치명적인 한계다.

오랜 기다림 끝에 국내 관객을 찾아온 ‘팬텀’은 흥미로운 스토리와 수준급 연출, 음악, 미술로 꽤 묵직한 감동을 안겨주고 있다. 7월26일까지 충무아트홀 대극장.

goolis@sp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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