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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② 김성근 감독 격정토로 "리더는 변명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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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② 김성근 감독 격정토로 "리더는 변명하지 않는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4.09.17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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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전격해체발표 그날 이후...0.1% 가능성 있는 선수들도 구제, 지옥훈련 통해 잠재력 이끌어내

[고양=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최대성 기자] 김성근(72) 감독처럼 평가가 크게 엇갈리는 야구 지도자도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팀을 우승으로 이끌고 선수 하나만큼은 제대로 키워낸다는 호평이 있는 반면에 '독재자'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면서 언제나 구단과 좋지 않게 끝났다는 점을 들어 악평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김성근 감독의 열정만큼은 인정한다는 점이다. 야구에 대한 열정은 국내 최고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그 열정과 열정이 만나 고양 원더스가 됐다. 야구에 대한 열정과 선수들의 프로에 가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하나로 뭉쳐 3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 열정은 외부의 찬물에 의해 급속하게 냉각되어 버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고양 원더스 사이 의견이 계속 충돌하면서 끝내 팀이 해체되는 불운을 맞았다. 어떻게 보면 김성근 감독의 고양 원더스 지도자 생활 역시 '해피엔딩'은 아니게 됐다.

하지만 그는 결코 다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는다. 고양 원더스가 사라지는 것은 안타깝지만 계속 '내탓이오'만 얘기한다.

▲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홈구장인 고양 국가대표팀 야구장 감독실에서 자신의 포스터의 모습과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다.

◆ 목적의식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선수들에게 미안하다

고양 원더스 선수들에게 물어보면 김성근 감독은 단순한 야구 감독이 아니었다. '스승'이었다. '죽은 시인이 사회'의 존 키팅 선생과도 흡사 닮았다. 선수들에게 다른 얘기는 하지 않는단다. 그저 열정에 대한 얘기만 했다고 한다.

김성근 감독의 얘기도 다르지 않았다.

"선수들에게 언제나 얘기하는 것은 인생을 어떻게 승부하느냐 그리고 어려운 순간을 어떻게 대처하느냐다. 고양 원더스는 버림받은 선수, 상처받은 선수들이 있다. 이들에게는 절실함이 있고 프로에 가겠다는 목적의식이 확실하다. 목적의식만큼은 프로팀에 있는 선수들보다 월등하다고 자신한다."

그렇다면 지난 3년 동안 김성근 감독이 했던 일은 무엇이었을까.

바로 누구도 찾아내지 못했던 선수들의 잠재력을 이끌어내고 이를 키워내는 것이었다.

"우리가 지옥훈련을 한다고 하는데 훈련을 많이 하는 것은 벼랑 끝에 서 있는 선수들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것이다. 결코 여유있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를 발전시키려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런 훈련을 해야 한다. 누구나 잠재력을 갖고 있고 이를 본인 스스로 찾아서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훈련을 통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이런 지옥훈련도 이제 더이상 할 수 없게 됐다. 고양 원더스의 해체와 함께 김성근 감독도 더이상 선수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지 않는다. 고양 원더스가 해체됐기 때문에 김성근 감독의 지금 신분은 전(前) 감독이다.

선수들에게 팀이 없어진다는 얘기를 한동안 할 수 없었다고 한다. 허민 구단주로부터 팀이 없어진다는 얘기를 들었고 이후 2주를 고민했다. 훈련도 2주 동안 쉬었다. 선수들은 3년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훈련 중단에 어리둥절했다. 이미 눈치빠른 선수들은 무슨 일이 있구나 직감했다.

"훈련을 2주 쉬었으니 몇몇 선수들은 무슨 변화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하더라. 그런데 때마침 내가 계속 프로팀 감독 후보로 오르니까 선수들이 그런 쪽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팀 해체 얘기를 했을 때 선수들이 어리둥절해했다. 얘기를 하면서 '내가 못가르쳐서 이렇게 됐다. 미안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김 감독은 끝까지 가르침을 잃지 않았다.

"해체 얘기를 하면서 모든 운명은 마음가짐에 달려있다고 했다. 순간순간마다 모든 것을 바쳐서 후회스러운 삶을 살지 말라고 얘기했다."

▲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고양 야구 국가대표팀 훈련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선수들에게 열정과 의지를 강조하며 목표의식을 잃지 말라는 얘기를 항상 강조해왔다고 말했다.

◆ 고양 원더스의 해체, 야구계의 큰 손실

고양 원더스는 분명 한국 야구계에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단순히 한국 최초, 유일의 독립야구단이라는 평가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럼에도 고양 원더스는 평가절하됐다.

"오너가 1년에 40억원, 45억원을 털어서 구단을 유지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질시를 받았다. 더 안좋은 것은 KBO가 고양 원더스를 도외시했다는 것이다. 퓨처스리그에 들어간 첫 시즌에 우리에게 지면 모든 팀이 난리가 났었다고 하더라. 정말 우스운 일이다. 야구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인데 우리에게 졌다고 난리가 나는게 말이 되나. 게다가 우리는 외국인 선수를 갖고 하니까 외국인 선수 실력으로 이긴다는 얘기도 있었다. 어쨌든 프로팀들이 우리를 거북스러워했던 것은 분명하다."

고양 원더스가 야구계에 던져준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첫번째가 선수들의 직업 선택에 대한 것이었다.

우리나라 야구 시스템에서는 고등학교 또는 대학교를 졸업하면 프로선수가 되어야 한다. 프로선수말고는 야구를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기가 어렵다. 지도자로 나서려고 해도 어느정도 프로선수 경험이 있어야 인정해준다. 하지만 프로야구 드래프트에서는 소수의 인원만 선택된다. 1년에 '야구 실업자'가 무더기로 양산된다.

하지만 고양 원더스는 1년에 50명씩 선수들을 받아들였다. 50명의 선수를 매년 구제했다는 얘기가 된다. 적지 않은 금액이 팀에 지원되면서 선수들의 생활이 보장됐다. 그러나 팀 해체로 이제 야구 실업자들을 구제할 방법이 사라졌다.

두번째는 버림받은 선수들을 다시 살려내는 것이다. 열정과 간절함이 있는 선수들을 키워내 프로로 진출시키고 설령 야구인으로 살아가지 않더라도 사회에서 살아갈 방법을 가르쳐줬다.

"우리 선수들은 사회에 가도 충분히 자신의 몫을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열정이 있기 때문이다. 언제나 선수들에게 '절실한 것은 너희들이다. 목표의식을 잃어버리면 모든 것을 잃은 것과 같다. 그리고 남에게 기대지 마라'고 말한다.

▲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이 인터뷰 도중 선수들이 훈련하고 있는 그라운드를 보기 위해 잠시 창밖을 내다보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더이상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지 않지만 선수들에 대한 걱정으로 가득하다.

◆ 인간 김성근은 없다, 리더 김성근만 있을 뿐

김성근 감독은 야구인으로 살아오면서 '인간 김성근'으로 살았던 적이 별로 없다고 말한다. 오직 '리더 김성근'만 있었을 뿐이다.

그가 말한 리더 김성근 감독은 무엇일까. 조직의 발전을 위해서는 자신이 희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책임을 지고 희생할 줄 알아야 진정한 리더라는 것이다.

"내가 구단 내부로부터 욕을 먹은 것 중 하나가 선수들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다른 팀들은 0.1%의 가능성을 보지 않는다. 0.1%는 커녕 1%도 상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0.1%의 가능성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능성이 적다고 선수들을 쫓아내는 것은 지도자로서 능력이 없다는 것을 자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선수들을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나 하나만 욕을 먹으면 선수 10명이 살지만 내가 욕먹지 않으려면 선수 10명이 기회를 잃게 된다."

또 하나는 김성근 감독의 야구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기기 위해서는 투수 물량작전을 쓴다. 선수 혹사 논란까지 있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은 그동안 이에 대해 단 한마디도 대꾸하지 않았다.

"이기기 위해 지저분하게 경기를 운영한다는 비판을 많이 받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때는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건 핑계일 뿐이다. 지금 와서는 얘기하자면 약한 팀을 이끄는 리더 입장으로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를 들어 10원을 쓰는 팀이 1000원을 쓰는 팀과 경쟁을 하는데 1000원 쓰는 팀을 흉내내서야 되겠나. 내가 선택한 것은 10원 쓰는 팀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비판은 리더인 내가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리더로서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가슴이 아팠던 적도 많았다. 리더 김성근으로 최선을 다하다보니 정작 인간 김성근은 챙기지 못했던 것이다.

"하루는 아내가 스포츠신문을 보는데 나에 대한 비판 기사가 가득한 것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가장인 내가 밖에서 욕을 먹으니 집에서도 많이 슬퍼했다. 이를 보는 나는 마음이 어땠겠나. 하지만 나는 리더이기 때문에 인간의 본능으로 살아갈 수 없었다."

이처럼 과묵한 그이기 때문에 '엄한 지도자'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엄해서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많은 말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동안 감독 생활을 하면서 선수들에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것이 엄격한 것으로 비쳐진 것일 수 있다. 나는 딱 해야 할 말만 한다. 남들은 대화의 리더십이라고 말하지만 정작 말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선수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해명도 필요없고 선수 공격도 한 적이 없다. 나를 두고 독재자라고 말하지만 나는 그것조차도 변명이나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감독이 아니니 편하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로 선수들을 대하고 있다."

그의 좌우명은 잘 알려져있듯 '일구이무(一球二無)'다. 한번 던진 공은 다시 불러들일 수 없다는 뜻이다. 한번 일어난 일은 번복할 수 없기 때문에 하나하나에 최선을 다하라는 의미다.

그가 걸어왔던 길이 그랬다. 고양 원더스는 없어졌지만 70대 노감독은 지금 이 상황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지금도 찾고 있다.

▲ 김성근 고양 원더스 감독은 리더십으로 똘똘 뭉친 지도자다. 리더는 조직을 위해 모든 것을 책임질 줄 알아야 한다고 밝혔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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