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1 16:44 (수)
[리우, 희망을 뛴다] (2) 안창림의 극일, 한국유도에 되새길 '재일동포 헌신'
상태바
[리우, 희망을 뛴다] (2) 안창림의 극일, 한국유도에 되새길 '재일동포 헌신'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6.07.16 16:4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올림픽 유도> 자이니치 차별 딛고 태극도복 품다...4년전 올림픽 훈련 파트너들의 도약은?

[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지난 7일 미국 스포츠데이터 분석업체 그레이스노트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참가국의 종합 순위와 종목별 메달 전망을 내놓았다. 한국이 금메달 10개로 종합 9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했고 안창림(22·수원시청)을 남자 유도 73㎏ 챔피언에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재일동포 3세 안창림은 자이니치(在日)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이겨냈다. 일본 와세다대로 유학을 갔던 외할아버지가 교토에 정착했고 가라데 도장을 운영하는 부모와 살았다.

유도 명문 쓰쿠바대 2년에 재학 중이던 2013년 10월 전일본학생선수권대회를 제패해 일본의 귀화 요청을 받았다.

▲ 재일교포 3세인 안창림은 차별과 편견을 딛고 2014년 한국 국적을 선택해 생애 첫 올림픽 매트를 나선다. [사진=스포츠Q DB]

거절했다. 외조부의 나라를 택했다. 국가대표로 뛰기 위해 2014년 2월 대한해협을 건너와 용인대에 편입했다. 한 뒤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3위, 3차 선발전에서 정상에 올라 국가대표 훈련 파트너로 태릉선수촌에 입성했다.

이제 국제무대에서 그를 모르는 이가 없다. 국제유도연맹(IJF) 73㎏급 세계랭킹 1위가 안창림이다. 

◆ 일본 유혹 뿌리친 안창림, 오노를 넘어라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원희의 정상 포효 이후 남자 73㎏급에서 금메달 소식이 끊겼다. 안창림이 12년 만에 노골드 사슬을 끊으려 한다.

2014년 제주 그랑프리 우승을 시작으로 도쿄 그랜드슬램 3위, 2015년 아시아선수권, 세계선수권 3위, 아부다비 그랜드슬램 우승, 파리 그랜드슬램 우승 등 출전하는 대회마다 상위권에 입상했다. 지난 2월 이후부터는 세계랭킹 1위 고수다.

남녀 통틀어 이번 리우 올림픽에 나서는 유도 대표 12명 중에서 국제무대 데뷔가 가장 늦었음에도 14차례 국제대회에서 금 6, 은 2, 동메달 4개를 따내 메달 획득률에서 85.7%로 가장 높다.

일본의 유혹을 뿌리친 그가 애국가를 울린다면 국민들의 기쁨은 배가될 것이다. 안창림은 “할아버지 세대부터 3대째 내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 국적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국에서 유도를 하고 국가대표가 되는 게 멋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귀화는 절대 하지 않는다. 한국인이기 때문에 태어났을 때부터 귀화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 안창림은 리우 유도 전사들 중에서 국제무대 데뷔가 가장 늦었지만 국제대회 메달획득률이 가장 높다. [사진=스포츠Q DB]

반드시 넘어야 할 상대는 오노 쇼헤이(일본)다. 상대전적 4전 4패. 가장 최근 대결인 지난해 세계선수권 준결승에서도 한판패로 무너졌다.

안창림은 “아직 한 번도 이겨본 적이 없지만 무엇보다 일본에는 절대로 지고 싶지 않다”고 각오를 다진다.

서정복 유도대표팀 감독도 “까다로운 일본 선수들 연구를 많이 하고 있다”며 “이상은 없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 효자종목 명맥 이어라, 김원진-안바울-곽동한-김잔디 주목 

한국 유도는 금메달 11개, 은메달 14개, 동메달 15개 등 역대 올림픽에서 총 40개의 메달을 안겼다. 역대 종목별 메달 순위에서 쇼트트랙(42개)에 이어 2위에 오른 한국 스포츠의 자존심이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금메달 2개(송대남, 김재범), 동메달 1개(조준호)를 획득해 순도를 유지했다.

세계 톱랭커 안창림 말고도 여럿이 리우 매트에서 ‘골든 드림’을 그린다.

남자 60kg급 김원진(양주시청)과 66kg급 안바울(남양주시청)도 세계랭킹 1위다. 90kg급 곽동한(하이원)과 여자 57kg급 김잔디(양주시청)는 세계 2위. 정보경(안산시청), 김성연(이상 25·광주도시철도공사)도 이변을 노린다. 정보경은 48㎏급 10위, 김성연은 70㎏급 6위다.

▲ 안바울은 남자 66kg급 세계랭킹 1위에 디펜딩 세계챔피언으로 리우에서 수성에 나선다. [사진=스포츠Q DB]

서정복 감독은 “특히 남자의 경우 런던 때도 좋았지만 지금은 훨씬 강해졌다. 7체급 모두 출전하는데 100kg급 조구함(24·수원시청)과 무제한급 김성민(29·양주시청)도 비어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며 “상위 랭킹 선수들이 곳곳에 포진해 있다. 모두 기대하셔도 좋다”고 강한 자신감을 나타내고 있다. 조구함과 김성민은 각각 세계랭킹 각각 11위, 12위다.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출전 성적으로 볼 때 안바울과 곽동한이 세계챔피언으로 리우에서 수성을 노린다. 김원진과 안창림, 정보경은 당시 따낸 동메달을 금빛으로 바꾸는 도전에 나선다.

여자 2체급만 빼고 남녀 7, 5체급에 나서는 12명의 리우 전사들 중에서 4년 전 런던에 다녀오지 않은 선수는 4명뿐이다. 김성민이 공동 5위, 김잔디는 공동 9위를 차지한 정식 런던 대표였다. 김원진, 곽동한, 이승수, 조구함, 정보경, 김성연은 훈련 파트너로서 런던에 입성했다. 대표선수들의 도전을 지켜본 뒤 절실한 리우의 꿈을 키운 끝에 당당한 올림피언으로서 첫 올림픽 메달 도전에 나서는 결의가 결연하기만 하다.

 *세계랭킹은 7월 11일 발표 기준. <자료=국제유도연맹>
▲ 서정복 감독은 "모두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역대 올림픽에서 40개의 메달을 수확한 효자종목의 총사령관다운 자신감이다. [사진=스포츠Q DB]

■ [Q] 아시나요? 한국 유도 올림픽 첫 메달이 ‘태극도복’ 입은 재일동포 손으로 얻어진 것을

유도가 한국 올림픽의 효자종목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재일동포 개척자들의 힘이 실로 컸다. 1958년 재일대한유도회를 결성한 뒤 이듬해부터 국내대회에 참가하면서부터 유도종가 출신 선수들이 국제대회는 물론 올림픽 선발전에 참가했다.

유도가 올림픽 첫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23세 재일동포 청년 김의태가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획득, 한국 유도의 올림피아드 첫 메달 이정표를 세웠다. 1958년 제2회 도쿄 세계선수권대회로 첫 국제무대에 데뷔했던 한국 유도가 1961년 파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첫 메달을 신고한 것도 김의태의 동메달이었다.

한국 올림픽 유도 사상 최연소 출전 기록도 재일동포 소년이 세웠다. 히로시마 고교생 박청삼이 도쿄 올림픽 라이트급에서 17세 346일로 출전했다. 아깝게 마지막 메달 관문을 못넘고 공동 5위를 차지했다.

김의태는 일본의 귀화 제의를 뿌리치고 태극기를 품은 영광을 다시 고대하며 정식종목에서 탈락한 1968년 올림픽을 건너뛰고 31세 나이로 하프헤비급으로 체급을 올리면서까지 1972년 뮌헨 올림픽 매트에 나섰지만 2회전서 탈락해 공동 13위를 기록했다.

하지만 오사카 재일동포 사업가의 아들 오승립이 미들급에서 당당히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뮌헨 대회에서 노메달 위기에 몰렸던 한국 선수단에 유일한 메달을 25세 재일동포 2세가 선사한 것이다.

김의태가 감독으로 한국 유도대표팀을 이끌고 참가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는 22세 재일동포 박영철이 미들급에서 동메달을 수확했다. 당시 장은경(1979년 작고)이 라이트급에서 따낸 은메달이 ‘2전 3기’ 국내파 첫 유도 올림픽 메달이었다.

유도가 도입된 첫 3개 올림피아드에서 매 대회 메달을 따내며 한국 유도의 초창기를 이끌었던 재일동포 유도인들의 헌신과 도전이 재일동포 3세 안창림의 리우 올림픽 도전으로 새삼 의미있게 다가온다.

□ 역대 올림픽 유도 한국선수 출전 성적

△ 남자 (1964년 채택/ 1968년 종목 제외)

- 1964 도쿄 (4명) = 동메달 김의태(80kg)

- 1972 뮌헨 (4명) = 은메달 오승립(80kg)

- 1976 몬트리올 (5명) = 은메달 장은경(63kg)
                                   동메달 박영철(80kg), 조재기(무제한급)

- 1984 LA (8명) = 금메달 안병근(71kg), 하형주(95kg)
                           은메달 김재엽(60kg), 황정오(65kg)
                           동메달 조용철(95kg+)

- 1988 서울 (7명) = 금메달 김재엽(60kg), 이경근(65kg)
                             동메달 조용철(95kg+)

- 1992 바르셀로나 (7명) = 은메달 윤현(60kg)
                                     동메달 정훈(71kg), 김병주(78kg)

- 1996 애틀랜타 (6명) = 금메달 전기영(90kg)
                                   은메달 곽대성(73kg), 김민수(100kg)
                                   동메달 조인철(81kg)

- 2000 시드니 (7명) = 은메달 정부경(60kg), 조인철(81kg)

- 2004 아테네 (7명) = 금메달 이원희(73kg)
                                은메달 장성호(100kg)
                                동메달 최민호(60kg)

- 2008 베이징 (7명) = 금메달 최민호(60kg)
                               은메달 왕기춘(73kg), 김재범(81kg)

- 2012 런던 (7명) = 금메달 김재범(81kg), 송대남(90kg)
                             동메달 조준호(66kg)

△ 여자 (1992년 채택)

- 1992 바르셀로나 (7명) = 금메달 김미정(72kg)

- 1996 애틀랜타 (5명) = 금메달 조민선(66kg)
                                   은메달 현숙희(52kg), 정성용(56kg)
                                   동메달 정성숙(61kg)

- 2000 시드니 (6명) = 동메달 정성숙(63kg), 조민선(70kg), 김선영(78kg+)

- 2004 아테네 (6명)

- 2008 베이징 (7명) = 동메달 정경미(78kg)

- 2012 런던 (7명)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