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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추적60분' 선감도의 묻혀진 진실, '선감학원'서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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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 '추적60분' 선감도의 묻혀진 진실, '선감학원'서 무슨 일이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6.07.27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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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오소영 기자] 일제강점기에 시작된 '선감학원'. '부랑자 수용시설'이었다는 그곳에 얽힌 진실은 뭘까.

27일 오후 11시 방송되는 KBS 2TV '추적60분'에서는 '유골은 말한다 - 선감도의 묻혀진 진실'이란 제목으로 과거 아동학대, 인권유린에 대해 다룬다.

허일용씨는 자신이 선감학원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그에 말에 따르면 1963년, 8살 쌍둥이 형제는 시장에서 할머니의 손을 놓쳤다. 형제는 경찰에 의해 아동보호시설로 옮겨졌고, 경기도의 한 섬으로 끌려가 부랑아 수용시설에 수용됐다. 그곳은 쌍둥이 형제 또래의 소년들로 가득했다. 그곳의 아이들은 쥐나 뱀까지 잡아먹으며 배고픔을 견뎌야 했고 무자비한 폭력과 강제노역을 당했다. 결국 쌍둥이 형은 수용시설에서 1년이 채 못 돼 사망했다.

동생 허일용 씨는 “사람들하고 섞여서 공포스러운 기억으로 들어왔죠. 완전 수용소 같은 데였어. 걸핏하면 군대식으로 하고 어린 애들을 그런 식으로 다 관리 했으니까“라고 회상한다.

▲ '추적 60분' 선감도의 진실 [사진=KBS 제공]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동에 일본이 세운 건물이다. 태평양전쟁의 전사 확보를 명분으로 아동, 청소년을 강제 입소시켜 노역·폭력·학대·고문했던 곳이다. 광복 이후, 선감학원에 대한 관리가 경기도로 이관됐고 ‘부랑아 수용시설’로 문을 다시 열었다.

또다른 피해자라는 이씨는 8살 무렵, 수원역 앞 친구들과 놀고 있던 중 경찰에 붙잡혀 섬으로 끌려갔다고 주장한다. 섬에서는 구타와 굶주림이 계속됐고, 일부 원생들 사이에는 성폭행까지 일어났다고 말한다.

당시 7세였던 김모씨는 “내가 왜 부랑아야, 부랑아 행동을 한 게 없는데(...) 헤엄쳐서 도망가다 잡히면 반 죽는 거죠. 도망갈까봐 알몸으로 재워요. 맞기 전에 곡괭이 끌고 오는 소리의 공포감이란 말도 못하죠"라고 그때의 기억을 떠올린다.

허일용씨는 당시 사망한 형이 어디에 묻혔는지 알 수 없었다고 한다. 수소문 끝에 만난 선감학원 원생 출신이라는 한 제보자가 나타났다.

선감학원 출신 생존자들과 마을 주민들의 증언에 따르면 선감학원에서 500미터 떨어진 야산에 불법 암매장된 원생들의 시신이 수백 구에 달할 것이라고 한다. 실제로 일부 지역을 GPR(지반탐사기)로 조사한 결과, 최소 120여구가 매장 돼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원생 출신 김 씨의 증언을 토대로 취재진은 쌍둥이 형의 유해 발굴 작업에 나섰다. 안중근 의사와 6.25전사 유해발굴에 참여했던 고고학자 박선주 교수, 국과수 출신 법의학자 등 전문가들이 현장에 함께했다. 현장에서는 나무뿌리에 엉킨 유골의 잔해와 어린아이의 고무신 한 켤레를 찾을 수 있었다.

선감학원의 비극적인 실상을 처음 세상에 알린 사람은 일본인 이하라 히로미츠다. 그는 일제시대 선감학원 부원장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선감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며 원생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목격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제 강점기의 잔재가 해방 후 30년간 더욱 끔찍한 방식으로 남아 있었다는 말에 놀란다.

아이들은 섬에 끌려와 인권을 유린당하고 사망했지만, 현재까지도 피해 조사나 대책, 지원은 없다. 진상규명에 대한 움직임이 부진한 이유에 대해 공무원들은 “선감학원에 대한 기록이 없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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