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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다른 첫 금메달' 설움과 추락 이겨낸 금빛 찌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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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지만 다른 첫 금메달' 설움과 추락 이겨낸 금빛 찌르기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09.21 0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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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 태극 검객 정진선-이라진, 개인전 징크스-2인자 설움 씻은 'AG 첫 개인 금메달'

[고양=스포츠Q 이세영 기자]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땄지만 감회는 사뭇 달랐다. 집안싸움이 된 결승전에서 승리한 태극검객들이 모처럼 활짝 웃어보였다.

세계랭킹 12위 이라진(24·인천중구청)과 세계랭킹 5위 정진선(30·화성시청)이 불운과 부진을 딛고 마침내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이라진, 정진선은 20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와 남자 에페 결승에서 각각 김지연(26·익산시청·세계랭킹 6위), 박경두(30·해남군청·세계랭킹 10위)를 꺾고 생애 첫 아시아드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 [고양=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이라진이 생애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진은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에서 김지연을 꺾고 정상에 오른 뒤 시상대에 선 이라진.

같지만 다른 아시안게임 첫 금메달이었다.

‘2인자’ 이라진은 자신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던 김지연의 굴레에서 벗어나 마침내 첫 메이저대회 금메달을 손에 넣었다. 그는 절친한 선배인 김지연을 15-1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태극마크를 단 후 5년 만에 맛보는 첫 메이저대회 금메달이었다.

이미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 경험이 있는 정진선은 아시안게임 개인전에서는 첫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6 도하 대회와 4년 전 광저우 대회 남자 에페 단체전에서 2연패를 달성했던 그는 그동안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과는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정진선은 이번 대회에서 마침내 개인전 정상에 오르며 4년 전 개인전에 나서지 못했던 아쉬움을 말끔히 날려버렸다. 세계 정상급 위치에서 추락한 뒤 다시 맛본 금메달의 감격이었다.

◆ 만년 2인자에서 1인자로…낯선 금빛에 울다

“지금 흘리는 눈물은 기쁨의 눈물이에요.”

우승을 차지한 순간에도 덤덤한 표정을 지었던 이라진이 경기 후 믹스트존에서 눈물을 쏟았다. 메이저대회 첫 우승의 감격이 뒤늦게 벅차올랐다.

그간 이라진은 김지연의 그늘에 가려 2인자의 설움에 겪었다. 2010년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단 이라진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과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단체전에서만 은메달을 땄을 뿐, 큰 대회 개인전에서 김지연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먼발치에서 김지연의 금메달 획득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이라진은 지난해 아시아선수권에서도 김지연에게 패해 은메달에 머물렀다.

김지연에게 밀린 것 외에도 이라진은 굵직굵직한 국제대회에서 좀처럼 우승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2011년과 2012년 아시아선수권에서 각각 은메달, 동메달에 그쳤던 이라진은 올해 아시아선수권에서도 3위에 만족해야 했다. 이에 이라진에게는 ‘2인자’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다녔다.

▲ [고양=스포츠Q 이상민 기자] 이라진(사진)이 2014 인천 아시안게임 펜싱 여자 사브르에서 김지연을 꺾고 생애 첫 아시안게임 정상에 올랐다.

안방에서 열린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도 모든 관심은 김지연에게 집중됐다. 런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고 이번 대회를 우승하면 그랜드슬램(아시아선수권·아시안게임·올림픽·세계선수권 석권)에도 한발 더 가까워지기 때문에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에서 묵묵히 아시안게임에 대비한 이라진은 예상을 뒤엎고 금메달을 수확, 여자 펜싱의 신데렐라로 우뚝 섰다.

시상식을 마치고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라진은 “결승에서 지연 언니를 만나 많이 불안했는데 금메달을 따 기분 좋다”며 웃어보였다.

김지연과는 연습게임을 하면서 워낙 자주 만났기 때문에 별다른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지는 않았다. 단지 메이저대회 결승에서 또 한 번 마주쳤기에 긴장이 됐을 뿐이었다.

이라진은 “언니와 국내대회에서 자주 만나 서로 너무 잘 안다”며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바로바로 난다”고 웃어 보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훈련을 이겨낸 뒤 얻은 금메달이기에 이라진의 감격은 더했다. 그는 “훈련량이 정말 많았다”며 “특히 사이클 훈련과 음악에 맞춰 스텝 훈련을 하는 것이 있는데 이 훈련들이 힘들었다. 발이 빠른 대신에 손이 느려 밸런스를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라진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는 23일 김지연과 함께 출전하는 단체전에서 또 하나의 금메달을 노린다. 이라진은 “남은 단체전도 잘 치러 꼭 금메달을 따겠다”며 결의를 다졌다.

▲ [고양=스포츠Q 이상민 기자] 정진선(사진)은 인천 아시안게임 에페 개인전 금메달로 생애 첫 아시안게임 개인전 금메달을 획득했다.

◆ 추락 있었기에 값졌던 AG 첫 개인전 금메달

정진선은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국 남자 에페의 대들보로 자리매김해왔다. 그는 2004년 태극마크를 처음 단 이후 국가대표 자리를 지켜왔다.

대표팀 데뷔 1년 뒤 스톡홀름 국제그랑프리대회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정진선은 이후 수많은 국제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며 한국 에페의 역사를 다시 썼다.

특히 그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세계랭킹을 2위까지 올라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남자 에페 세계랭킹 5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선수로 이름을 남기기도 했다.

하지만 정진선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시련을 겪었다. 그는 당시 남자 에페 8강에서 패해 일찌감치 고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했다.

베이징에서 끝날 줄 알았던 부진은 계속됐다. 2009년에는 세계랭킹이 96위까지 떨어졌다. 국내 남자 에페의 최강자 이름도 동료인 박경두에게 넘겨줘야 했다.

▲ [고양=스포츠Q 이상민 기자] 정진선(왼쪽)이 인천 아시안게임 펜싱 남자 에페 개인전 우승을 확정지은 뒤 태극기를 든 채 박경두와 포옹하고 있다.

그러나 4년 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단체전 금메달 획득을 차지하며 부활을 알린 정진선은 점차 제 기량을 되찾았다. 그는 2011년 자신의 세계랭킹을 16위까지 끌어올렸다.

2011년 아시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한 정진선은 2012년 이 대회 2연패를 달성하며 순항을 이어갔고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며 4년 전의 아쉬움을 털어냈다.

부진을 딛고 일어선 정진선은 다시 높게 날아올랐다. 올해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의 단체전 은메달을 이끈 정진선은 아시안게임 개인전마저 제패하며 아시아 최강자로 자리매김했다.

시상식이 끝난 뒤 정진선은 “부담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인데 펜싱에서 첫 스타트를 잘 끊어 기분이 좋다”며 “이런 기세로 간다면 한국이 목표로 했던 7개가 아니라 10개도 딸 것 같다. 지금처럼만 차분하게 하면 금메달을 더 따는 것은 문제없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경두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준비를 많이 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며 “그래도 한국 선수들끼리 결승을 치러 기쁘게 생각한다”고 웃어보였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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