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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희망을 뛴다] (19) 기적과 손잡은 함상명, 가슴에 새긴 '분골쇄신'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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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희망을 뛴다] (19) 기적과 손잡은 함상명, 가슴에 새긴 '분골쇄신' 그대로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6.08.02 18: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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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복싱> 극적으로 리우행 막차 탄 함상명, 사각의 링에서 자신의 장점 십분 살린다

[스포츠Q(큐) 이세영 기자] 지난 7월 9일까지만 해도 한국복싱의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출전 선수는 제로였다. 마지막 보루였던 신종훈(인천시청)이 리우행 티켓을 놓고 벌인 마지막 일전에서 패하며 탈락했기 때문. ‘더이상 헝그리 정신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복싱계에 쏟아졌다.

그런데 9일 뒤, 태극복서 한 명에게 극적으로 올림픽 출전권이 배달됐다. 56㎏급 함상명(21‧용인대)였다.

그는 7월 6일 베네수엘라 바르가스에서 열린 국제복싱협회(AIBA) 주관 2016 APB(AIBA 프로 복싱)/WSB(월드시리즈복싱) 올림픽 선발대회 8강전에서 판정패를 당해 올림픽 진출이 좌절됐다. 하지만 이 체급에서 올림픽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 중 한 명이 출전을 포기함에 따라 APB 세계랭킹 3위인 함상명이 와일드카드를 거머쥐게 됐다.

▲ 함상명은 이미 올림픽 선발전을 통과한 선수 중 한 명이 출전을 포기함에 따라 와일드카드로 리우행을 확정짓게 됐다. [사진=스포츠Q DB]

1948년 첫 올림픽 참가 이후 68년 만에 올림피아드 '개근' 명맥이 끊길 위기에 놓였던 한국복싱은 그야말로 기사회생했다.

뜻밖의 행운을 안게 된 함상명은 “평생 얻을 운을 다 받은 것 같다. 여기저기서 축하 연락을 받고 있는데,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싶다”고 웃어보인 뒤 리우에 입성, 마지막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다.

◆ 위기의 한국복싱 한줄기 희망, '뼈가 부러져도 링에서 스러지리'

함상명의 강점은 저돌적인 공격 스타일과 남다른 승부근성이다.

파괴력이 강한 펀치를 구사하는 인파이터인 함상명은 한 번 물면 놓지 않는 끈질긴 공격으로 상대를 질리게 만들기로도 유명하다. 그에게 매우 낯선 무대였던 APB 데뷔전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었던 것도 빼어난 근성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함상명을 지도하는 1988년 서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시헌 복싱대표팀 감독은 “밖에서는 모르겠지만 링에만 올라가면 근성을 발휘한다. 승부근성이 있다”며 “링에서는 무조건 공격이다. 얻어맞아도 기죽지 않는다. 이런 걸 보면 상명이는 복서로서 타고난 것 같다”고 엄지를 치켜들었다.

최근 행보도 나쁘지 않다. 가장 최근의 실전 경기였던 APB 랭킹 7위 이브라힘 괵첵과 일전에서는 3-0 판정패를 당했지만 이에 앞서 랭킹 8위 마티 쿤타(핀란드)와 베네수엘라의 블랑코 파체코, 랭킹 5위 하칸 에르세케르(카타르)를 차례로 꺾으며 기세를 올렸다.

함상명의 왼쪽 가슴에는 자신의 좌우명인 분골쇄신(粉骨碎身·뼈가 가루가 되고 몸이 부서지도록 노력한다는 뜻)이라는 문신이 새겨져 있다. 경기 도중 뼈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링에서 쓰러지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 박시헌 한국 복싱대표팀 감독은 "함상명(사진)은 링에서 한 대 얻어맞아도 기죽지 않는다. 복서 체질을 타고났다"고 칭찬했다. [사진=스포츠Q DB]

◆ 극한훈련과 강인한 정신력 없이는 제2의 전성기도 없다

함상명이 극적으로 리우행 티켓을 거머쥐면서 올림픽 진출 명맥을 이어가게 됐지만 찬란했던 1980년대의 영광을 이으려면 대수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한수안이 플라이급 동메달을 획득한 이후로 올림피아드에서 순항을 이어간 한국복싱은 1984년 LA 올림픽에서 신준섭(미들급)이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며 중흥기를 맞았다. 그 기세는 김광선(플라이급)과 박시헌(라이트미들급)이 금빛 펀치를 날린 1988년 서울 올림픽까지 이어졌다.

하지만 그 이후로는 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과 인연을 맺지 못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동메달 2개,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선 은메달 1개로 체면을 지켰지만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선 노메달의 수모를 겪었다. 2004년 아테네에서 동메달 2개, 2008년 베이징에서 동메달 1개, 2012년 런던에서 은메달 1개를 따내는 데 그쳤다.

박시헌 감독은 세대교체를 이룬 한국복싱이 다시 세계를 호령하려면 극한까지 가는 훈련과 이를 버틸 수 있는 정신력이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럽 선수들에 비해 신체적으로 불리하기 때문에 훈련을 통해 힘과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 감독은 “지금 한국복싱은 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밀렸다. 앞으로 계속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려면 혹독한 훈련을 소화해야 한다”며 “링에 올라가기 전에 ‘내가 밀린다. 질 것 같다’는 마음을 먹으면 절대 이길 수 없다. 미친 척하고 상대와 부딪쳐야 승리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복싱의 명운을 건 함상명의 리우 도전이 더이상 기적이 아니라 땀의 대가로 열매 맺을 수 있을까. 분골쇄신의 각오가 더욱 주목을 끈다.

▲ 한국복싱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박시헌 한국 복싱대표팀 감독(사진)과 김광선 이후 올림피아드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지 못했다. [사진=스포츠Q DB]

■ 역대 올림픽 복싱, 한국 출전선수 최고 성적

- 1948 런던 (3명) = 동메달 51kg 한수안

- 1952 헬싱키 (4명) = 동메달 54kg 강준호

- 1956 멜버른 (5명) = 은메달 54kg 송순천

- 1960 로마 (6명) = 공동 5위(63.5kg)

- 1964 도쿄 (8명) = 은메달 54kg 정신조

- 1968 멕시코시티 (7명) = 은메달 48kg 지용주 / 동메달 54kg 장순길

- 1972 뮌헨 (6명) = 공동 5위(51kg, 60kg)

- 1976 몬트리올 (6명) = 공동 5위(48kg, 54kg, 57kg)

- 1984 LA (9명) = 금메달 75kg 신준섭

                       / 은메달 67kg 안영수 / 동메달 60kg 전칠성

- 1988 서울 (12명) = 금메달 51kg 김광선, 71kg 박시헌

                           / 은메달 91kg 백현만 / 동메달 57kg 이재혁

- 1992 바르셀로나 (11명) = 동메달 60kg 홍성식 / 75kg 이승배

- 1996 애틀랜타 (9명) = 은메달 81kg 이승배

- 2000 시드니 (9명) = 5위(48kg)

- 2004 아테네 (7명) = 동메달 57kg 조석환, 69kg 김정주

- 2008 베이징 (5명) = 동메달 69kg 김정주

- 2012 런던 (2명) = 은메달 60kg 한순철

☞ 총 109명 도전, 금 3 - 은 7 - 동 10

▲ 리우 올림픽에서 함상명이 홀로 고군부투해야 하는 밴텀금은 올림픽에서 4개의 태극 메달리스트들은 탄생시킨 체급이다. [사진=스포츠Q DB]

■ [Q] 아시나요? 함상명이 출전하는 체급대가 올림픽 한국복싱의 대세를 이뤘다는 것을

함상명이 리우의 링에 오르는 체급은 밴텀급이다. 한국이 첫 출전한 1948년 런던 올림픽 때부터 모든 체급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인 60년 동안 한도체중 54kg을 지켜오다 4년 전 런던 대회부터 56kg으로 조정됐다.

한국 복싱도 이 밴텀급에서 가장 많은 4개의 메달(은 2, 동 2)을 수확했다. 2012년 남자 10개 체급으로 조정됐지만 한국은 68년 동안 태극선수단이 구성된 대회에서는 개근하며 모두 12개 체급에 도전했다. 슈퍼헤비급만 빼고 나머지 체급에서 109차례 나서 금 3, 은 7, 동 10개를 수확했다.

워낙 한도체중이 오르락내리락한 체급이 많은 탓에 10kg대로 체급을 묶어 분류해보면 한국 복싱은 50~59kg 레벨에서 득세한 것을 알 수 있다. 플라이급(14명), 밴텀급(13명), 페더급(13명)을 합쳐 총 40차례 도전해 모두 금 1, 은 2, 동메달 5개를 휩쓸었다. 50kg대의 메달 획득률은 20%이며, 총 20개 태극 메달 중 40%를 이 체급대에서 도맡은 것이다.

60kg대에선 라이트급 14명과, 라이트웰터급, 웰터급 11명씩 총 36명이 나서 총 메달의 30%(은 2, 동 4)를 수확했다. 23명이 도전한 2000년대 이후엔 이 두 그룹의 체급대에서만 은 1, 동메달 3개를 건져올렸다.

가성비가 가장 높은 체급대는 70kg대로 라이트미들급과 미들급에서 7명씩 도전해 금 2, 동메달 1개를 획득했다.

△ 역대 체급대 한국 복싱 올림픽 메달수

- 49kg 이하(라이트플라이급 9명) = 은 1

- 50~59kg급 (플라이급 14명, 밴텀급 13명, 페더급 13명, ) = 금 1, 은 2, 동 5

- 60~69kg급 (라이트급 14명, 라이트웰터급 11명, 웰터급 11명) = 은 2, 동 4

- 70~79kg급 (라이트미들급 7명, 미들급 7명) = 금 2, 동 1

- 80~89kg급 (라이트헤비급 5명) = 은 1

- 90kg 이상 (헤비급 3명, 슈퍼헤비급 2명) = 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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