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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희망을 뛴다] (20) 다시 잡는 올림픽 바벨, '엄마 역사' 윤진희가 자랑스럽게 들어올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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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우, 희망을 뛴다] (20) 다시 잡는 올림픽 바벨, '엄마 역사' 윤진희가 자랑스럽게 들어올릴 것은?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6.08.03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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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역도> 은메달 따냈던 베이징 영광 이후 8년만에 복귀…세대교체의 마지막 가교

[스포츠Q(큐) 박상현 기자] 한국 올림픽 도전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종목이 바로 역도다. 태극기를 앞세우고 출전한 첫 하계올림픽인 1948년 런던 대회에서 김성집이 첫 메달(동)을 따낸 종목이다.

하지만 2012년 런던 대회에서 한국 역도는 급추락했다. 베이징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냈던 장미란이 4위에 그치면서 '노메달'에 그쳤던 것이다. 2008년 베이징 대회 당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수확하며 정점을 찍었던 한국 역도의 위상은 급추락했다.

월드스타 장미란이 은퇴했고 베이징 올림픽에서 '오뚝이 역사'로 거듭났던 사재혁은 불미스러운 일로 사실상 현역을 떠났다. 이후 완전히 세대교체했다. 그리고 2008년 여자 53kg급에서 은메달을 따냈던 윤진희(30·경북개발공사)가 결혼과 출산이라는 오랜 공백을 딛고 8년 만에 올림피아드에 돌아왔다.

▲ 베이징 올림픽 당시 파릇파릇했던 22세 역사였던 윤진희는 어느새 두 아이의 엄마가 돼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한다. 올 시즌 기록만 놓고 보면 메달권과 멀어보이지만 자랑스러운 엄마가 되겠다고 벼르고 있다. [사진=스포츠Q(큐) DB]

◆ '엄마 역사'의 새로운 도전, 메달 기대보다는 자랑스런 엄마로

윤진희가 오랜 공백을 깨고 재기하며 올림픽에 8년 만에 나서는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올림픽 바벨을 치켜들기 위해서는 국내에서 경쟁자를 제치기도 제쳐야 하지만 일정 기준 기록을 충족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윤진희가 출전한다는 것은 바꿔 말하면 그동안 후배들이 윤진희의 공백을 메우지 못할 정도로 환경이 척박하고 선수층이 두껍지 못한 사실을 보여주기도 한다.

윤진희는 자신이 후배들의 자리를 빼앗았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재기 이후 많은 구슬땀을 흘렸다. 4년 연하의 남편 원정식(고양시청)과 함께 태릉선수촌에서 바벨을 들어올리며 올림픽을 준비했다.

물론 윤진희의 몸 상태가 예전과 같을 수는 없다. 베이징 대회에 나갔던 8년 전, 22세의 파릇파릇했던 파워를 생각할 수는 없다. 근육량도 크게 줄어든 것이 사실이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부상을 당한 남편 원정식과 함께 재활과 재기에 땀을 쏟아왔던 윤진희는 2년 가까이 고된 훈련을 해왔던만큼 리우 올림픽에서 그냥 물러서지 않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 네살 라임, 두살 라율 두 딸을 위해서라도 '엄마의 힘'을 보여주고 싶어한다.

하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간만큼 윤진희의 기록도 전성기의 그것을 기대하긴 힘들다. 베이징 대회 당시 인상 94kg, 용상 119kg을 들어 합계 213kg로 은메달을 따냈다. 지난 4월 아시아선수권 당시 기록은 인상 86kg, 용상 107kg로 합계 193kg에 그쳤다. 베이징 대회 때보다 무려 20kg나 빠졌다.

올해 기록 순위만 보더라도 윤진희의 기록은 메달권과 거리가 있다. 세계 1위 천샤오팅(중국)이 들어올린 기록이 합계 221kg로 윤진희보다 30kg나 더 무겁다. 메달권에 도전하려면 200kg는 무조건 넘겨야 한다.

지금의 기록으로는 메달에 도전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지만 지난 4개월의 땀이 헛되지 않았다면 윤진희의 두 번째 올림픽 도전은 메달 이상의 큰 의미가 될 것이다.

◆ 세대교체 꾀하는 한국 역도, 리우보다 도쿄를 겨냥한다

이번 리우 올림픽에서 남자 69kg급과 여자 53kg급에 나서는 원정식-윤진희 부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첫 번째 올림픽 출전이다. 2004년 아테네 대회부터 2012년 런던 대회까지 3회 연속 올림픽에 출전했던 장미란이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없다.

반대로 말하면 한국 역도가 세대교체를 한 뒤 처음으로 맞는 올림픽이다. 남자 62kg급 한명목(25·경상남도청)과 85kg급 유동주(23·진안군청), 94kg급 박한웅(21·한국체대), 여자 75kg이상급의 이희솔(27·울산광역시청)과 손영희(22·부산역도연맹) 모두 첫 올림픽 출전의 기쁨을 맛봤다.

이들 5명은 리우 올림픽에서 대기록을 작성하겠다는 것보다는 2018년 자카르타 아시안게임, 2020년 도쿄 올림픽까지 멀리 보고 육성돼 왔다. 리우에서 쌓은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다시 한번 한국 역도의 중흥을 이끌어내겠다는 큰 그림 아래 성장해온 미래다.

<성적 출처=국제역도연맹>

그렇다고 해서 한국 역도가 아예 메달 목표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가장 메달권에 근접해있는 선수가 바로 원정식이다.

원정식은 지난 4월 아시아역도선수권에서 인상 139kg, 용상 177kg로 합계 316kg를 들어올려 올해 기록 랭킹 11위에 올라 있다. 메달권과 20kg 정도 뒤지지만 당일 컨디션에 따라 메달권에 가깝게 다가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역도는 런던 올림픽에서 실패를 기점으로 선수들의 훈련과 경기 동작을 역학적으로 분석하는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선수들의 동작을 하나하나 분석해 힘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특별 훈련 프로그램을 이배영 대표팀 코치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한국 역도가 메달의 맥을 잇지 못하더라도 부흥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Q] 아시나요? 역대 올림픽 역도에서 한국이 따낸 메달보다 4위가 더 많다는 것을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러시아 도핑 파문’의 후폭풍으로 일부 올림픽 입상자들의 금지약물 복용 사실이 뒤늦게 적발되면서 한국 역도가 수혜를 얻고 있다. 임정화와 장미란이 나란히 4위에서 동메달로 승격될 행운을 잡은 것이다.

임정화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여자 역도 48kg급에서 대만 천웨리링과 같은 196kg을 들고도 몸무게가 500g이 무거워 체중차로 동메달을 내줘야 했다. 하지만 당시 은메달을 따낸 시벨 오즈칸(터키)이 최근 조사에서 근육 증강제 복용 사실이 드러나 메달 박탈 결정이 내려졌다. 장미란도 2012년 런던 올림픽 여자 역도 75㎏ 이상급 동메달리스트인 흐리프시메 쿠르슈다(아르메니아)의 금지약물 복용 적발로 동메달을 승계받을 자격을 얻었다.

한국 역도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4위의 반등’이다. 그동안 메달 문턱에서 2% 부족해 돌아서야 했던 많은 미완성 도전들에 대한 행운의 보상이랄까.

메달의 환희보다 4위의 탄식이 더 많았던 한국 역도다. 금 3, 은 4, 동메달 4개로 메달 11개를 수확했지만 4위는 무려 16번이나 나왔다. 15차례 올림픽에서 74명이 모두 110회 메달 도전에 나선 가운데 메달 획득률(11%)보다 4위로 아쉽게 메달을 놓친 비율(14.5%)이 더 높았다. 매 대회 한명꼴로 4위에 그쳐 포디엄에 오르지 못한 불운의 태극역사들이 나온 것이다.

1948년 첫 올림픽부터 3회 연속 동메달을 따내며 초창기 효자종목으로 한국 스포츠를 선도했던 역도는 1964년까지 5회 연속 4위 역사를 배출했다. 7명이나 쏟아졌다. 1952년 4위에 그쳤던 김창희는 4년 뒤 기어코 동메달을 따냈지만, 최다 4회 출장자인 김해남은 1952년, 1960년 두 번씩이나 4위에 머물러 비운의 리프터로 남아 있다.

1992년 고광구는 남자 52kg 플라이급에서 252.5kg로 트라애 시하레안(루마니아)와 동률을 이뤘으나 아깝게 체중차로 동메달을 내줬다.

지난해 생활고와 하반신 마비 장애로 투병하다 45세로 고단한 삶을 쓸쓸히 마감한 김병찬. 어려운 환경의 체육연금수급자에게 돌아가는 특별지원방안 ‘김병찬법’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던 그의 고독사도 슬프지만 올림픽 메달 도전도 아쉬웠다. 1988년 은메달, 1992년 금메달을 따낸 ‘작은 거인’ 전병관과 또래 기대주로 서울 올림픽에서 한국 역도 최연소 출전기록(17세 270일)을 세운 김병찬은 16위에 그친 뒤 바르셀로나에서 90kg급으로 체급을 올려 재도전했지만 아깝게 4위에 그쳤다.

2000년 도입된 여자 역도에서도 75kg급 김순희가 시드니에서 4위에 머물더니 임정화, 장미란으로 불운이 이어졌다.

■ 역대 올림픽 역도, 한국 출전선수 최고 성적

- 1948 런던 (8명) = 동메달 75kg 김성집 *4위(56kg 이규혁, 60kg 남수일)

- 1952 헬싱키 (4명) = 동메달 75kg 김성집 *4위(56kg 김해남, 67.5kg 김창희)

- 1956 멜버른 (6명) = 동메달 67.5kg 김창희 *4위(56kg 유인호)

- 1960 로마 (7명) = *4위(67kg 김해남)

- 1964 도쿄 (7명) = *4위(75kg 이종섭)

- 1968 멕시코시티 (6명) = 5위(67.5kg, 75kg)

- 1972 뮌헨 (1명) = 7위(67.5kg)

- 1984 LA (9명) = 5위(56kg, 90kg)

- 1988 서울 (10명) = 은메달 52kg 전병관
                           / 동메달 82.5kg 이형근 *4위(60kg 민준기)

- 1992 바르셀로나 (10명) = 금메달 56kg 전병관 *4위(52kg 고광구, 90kg 김병찬)

- 1996 애틀랜타 (8명) = *4위(+108kg 김태현)

- 2000 시드니 (남 6명+여 2명) = 남 5위(+105kg), 여 *4위(75kg 김순희)

- 2004 아테네 (남 4명+여 4명) = 은메달 남 69kg 이배영, 여 +75kg 장미란

- 2008 베이징 (남 5명+여 4명) = 금메달 남 77kg 사재혁, 여 +75kg 장미란
                                         / 은메달 여 53 윤진희 *4위(남 77kg 김광훈, 여 48kg 임정화)

- 2012 런던 (남 6명+여 4명) = 남 *4위(+105kg 전상균), 여 *4위(+75kg 장미란)

총 74명 도전, 금 3 - 은 4 - 동 4 (*4위 16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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