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2 17:12 (목)
[인터뷰] 세상 만물이 괴이하다, 개인전 ‘괴작’ 연 작가 박미례
상태바
[인터뷰] 세상 만물이 괴이하다, 개인전 ‘괴작’ 연 작가 박미례
  • 오소영 기자
  • 승인 2014.10.11 1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300자 Tip!] 흐드러지게 핀 붉은 접시꽃, 인도·아프리카·한국의 소들, 마주본 고양이들. 박미례 작가(35)의 다섯번째 개인전은 동물과 식물 그림으로 가득하다. 펜으로 빠르게 스케치해 즉흥성이 강한 동물의 머리 그림들과, 화려한 색채로 동물과 식물이 함께한 유화까지. 동식물을 그려낸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괴작(怪作)’이다. ‘세상 만물이 모두 괴이하다’라는 생각에서다.

[스포츠Q 오소영 기자] 지난 8일 시작한 박미례 작가의 개인전 ‘괴작’은 11월 2일까지 서울시 성북구 성북동 177-17번지 ‘17717’에서 열린다. 개인전을 하루 앞둔 7일, 박미례 작가를 ‘17717’에서 만났다.

▲ 작품 '천국과 지옥 사이' 앞에 선 박미례 작가. [사진=박미례]

◆ ‘세상 만물이 괴작’ … 생물에서 느끼는 그로테스크

박미례 작가가 최근 이사한 동네에는 길고양이들이 많다. 가벼운 마음으로 밥을 주기 시작했는데, 이제는 굶게 될까봐 책임감마저 느끼고 있다.

“도시에 사는 야생 동물은 몇 없어요. 길고양이, 비둘기, 까치 정도죠. 새끼를 얼마나 낳고, 기르고 하는 살아가는 법칙들을 보게 됐어요. 도시에 살면서 다른 생명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는 일이 잘 없는데, 그게 생긴 거죠.”

이때의 경험은 이번 개인전 도록의 작가 노트에 짤막히 쓰였다. 작업실 창 멀리에 굶어죽은 새끼고양이 시체를 보며 박미례 작가는 “다들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모습들이 대단하기도, 이상하기도 해 개인전의 제목으로 ‘괴작(怪作)’을 붙였다.

“지구상에 인간 말고도 너무나 많은 개체들이 있다는 게 참 놀라워요. 인간이기 때문에 권력자의 시선에서 동식물을 바라볼 수밖에 없지만. 반드시 ‘채식을 해야 한다’는 식의 강경함은 아니지만 어렸을 때부터 연민은 분명히 가지고 있었어요.”

동물들의 생활양식에 관심을 갖고 사는 것만으로도 인간과 공존한다는 의식은 분명하다. 동네의 고양이들에게 밥을 주면서도, 외국을 여행하며 마주쳤던 들짐승들과는 다른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외국 들짐승들은 사람을 피하지 않아요. 우리나라 고양이들은 사람을 피해다니고 숨잖아요. 인간을 적으로 생각하는 거예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니까 한국 도시에 적응한 거죠.”

▲ 접시꽃은 다음 생명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한 가장 화려한 꽃을 피운다. 붉은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사진=박미례]

◆ 진화, 동물과 식물이 전하는 치열한 생존의 기록

이렇게 생존을 위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진화'는 이번 개인전의 테마가 됐다. 각 나라마다 다른 소의 모습을 그린 ‘박제동물’과 유인원으로부터 지금의 인간으로 진화해온 두개골을 그린 ‘기일’, 고양이 두 마리가 마주 서 있는 ‘똑같은 건 없다’ 등 작품은 생존을 위해 혹독한 세월을 견디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 생물들의 모습이다.

“같은 류 동물이면 겉모습이 다 똑같을 것 같지만 달라요. 인도의 소는 털이 거의 없고 윗 지방의 소는 큰 뿔과 가죽을 가지고 있고 먹이를 덜 먹는 편인 것처럼요. 맹수든 어떤 생물이든 아파도 병원에 갈 수 없고, 온몸으로 적과 맞서고 생존을 위해 살아가잖아요. 진화는 이들이 생존하기 위해 무기를 갖추게 된 최종의 모습이죠. ”

인간은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결핍을 무기나 기계를 만드는 것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동물과 식물은 스스로 변화해 자란다. 이들의 삶을 보면 자연스럽게 인간에 대한 반성으로도 이어진다.

“모든 생명의 가장 큰 존재 이유는 다음 생을 잉태하기 위해서죠. 연어도 수천 킬로미터를 헤엄쳐 갔다가 알을 낳는 것처럼요. 인간은 출산과 임신을 하고도 살지만 대부분의 생명은 임신과 잉태를 하고 나면 존재 이유가 없어져요. 참혹하게 사냥해 육식을 하지만 동물들은 인간보다 순수할 수 있어요. 생존을 위해 먹을 만큼만 사냥하지 인간처럼 잉여를 위해 다른 것들을 해치지 않죠. 그런 삶과 죽음의 시스템이 제게는 그로테스크하게 다가올 때가 많아요.”

▲ 박미례 작가의 개인전 '괴작'. 서울 성북구 성북동 '17717'에서 열린다.

생물에 대한 호기심과 괴이하다는 감상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사람들은 대상의 크기에 따라 연민의 정도가 달라요. 고양이가 차에 치이면 안타까워하지만 모기를 죽이거나 꽃을 꺾는 것엔 무감한 편이죠. 고통은 같은데. 이런 점도 참 이상하죠?”

앞으로는 동물과 식물이 자신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체내에 무기를 만든 것처럼 인간의 무기의 역사에 대해서도 그려보고 싶은 마음이다.

▲ '박제동물 시리즈'는 외국의 자연사박물관에 갔다가 힌트를 얻어 그린 시리즈다. "박제동물을 보면서 분명 죽어있는데 가장 살아있는 것처럼 만들어야 한다는 점이 그로테스크해요. 거대한 무덤같기도 하고." [사진=박미례]

[취재후기] 박미례 작가는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데 조심스러워했다. “일부러 설명하기보다 예술은 ‘시’적인 작업이라 보는 사람이 자유롭게 느꼈으면 한다”는 뜻에서였다. 그가 이번 도록에 넣으려 했다는 한 글귀로 개인전 '괴작'을 소개해본다.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 과정이 한마디로 얼마나 기막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그 과정 속에는 번득이는 철편이 있고 눈 뜰 수 없는 현기증이 있고 끈덕진 살의가 있고 그리고 마음을 쥐어짜는 회오와 사랑도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봄바람처럼 모호한 표현이 아니냐고 할 것이나 나로서는 그 이상 자세히는 모르겠다.

-김승옥, <생명연습> 중에서

<박미례 작가는?>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조형예술과 전문사(M.F.A) 졸업. ‘괴작’, ‘Painted in Beijing’ 등으로 한국과 중국에서 개인전 개최. 스페이스K, 갤러리 팔레 드 서울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동물과 식물에 대한 연민과 호기심으로 그림을 그린다. “가장 예술적인 건 딱 떨어지는 설명보단 ‘시적’인 것.”

ohsoy@sportsq.co.kr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