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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음유시인' 데미안 라이스 "예전 버전의 나를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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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음유시인' 데미안 라이스 "예전 버전의 나를 버렸다"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1.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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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아일랜드 싱어송라이터 데미안 라이스(41)가 8년만에 정규 3집 '마이 페이버릿 페이디드 판타지(My Favorite Faded Fantasy)'를 발매했다.

2002년 발표한 데뷔 앨범 'O'을 97주 동안 영국 차트에 올려 놓으며, 포크 록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는 평을 얻었다. 'Cannonball' 'Vocalno' 그리고 주드 로와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영화 '클로저'에 삽입돼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얻은 'The Blower's Daughter'를 연달아 히트시켰다. 두 번째 앨범 '9'는 2006년에 발매됐다. "희망이 없이도 아름다운 앨범" "강하고 조용한 싱어송라이터" "치명적으로 정직한 뮤지션" 평가를 받아온 그는 2012년 1월 첫 내한공연을 진행하기도 했다.

▲ 데미안 라이스[사진=워너뮤직코리아 제공]

부와 인기, 명예를 손에 쥐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그는 마지막 투어가 끝난 뒤 정처 없이 여행을 떠나 아이슬란드에서 몇 년을 살면서 안정을 찾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친 뒤 탄생한 앨범에는 드라마틱한 오케스트라 사운드가 인상적인 싱글 'My Favorate Faded Fantasy', 섬세한 노랫말과 사운드가 어우러진 공식 첫 싱글 '아이 돈트 원트 투 체인지 유, 9분이 넘는 대곡 'It Takes a Lot To Know a Man', 올해 서울 재즈페스티벌에서 먼저 공개한 'The Greatest Bastard', 데뷔 앨범 'O'를 연상시키는 '컬러 미 인' 등 총 8곡이 실렸다.

신보는 라이스가 겪었던 8년의 공백과 그에 대한 궁금증을 대답해준다. 라이스 스스로는 “일종의 거울이 돼준 곡들을 담았다"고 말한다. 음반사 워너뮤직코리아와 진행한 e-메일 인터뷰를 게재한다.

- 첫 앨범 ‘O’의 성공, ‘9’ 투어 그리고 힘들었던 앨범 작업까지의 시간들을 돌아본다면.

▲ 그때 난 내가 했던 모든 공연을 통틀어 가장 큰 공연장에서 공연하기도 했고,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마주했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고 좋았다. 바로 그 순간부터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조금씩 바스러지고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순식간에 매우 불행해졌고 끝없이 밑바닥으로 추락하고 가라앉았다. 내가 갖고 싶다고 여겼던 것들을 모두 손에 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난 여전히 행복하지 않았다. 그건 정말 슬픔 그 이상의 감정이었다. 거의 심적으로 무너져있던 상태였다.

 

- 갑자기 유명해진 것이 당신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나?

▲ 만약 당신이 목표로 하는 무언가가 있거나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차라리 쉬운 얘기다. ‘일단 이걸 해내면, 이걸 하고 나면, 더 만족스러울 테고 그럼 더 행복해질 거야’ 하겠지만, 그건 허상일 뿐이다. 꿈을 좇는다는 건 당신이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되어줄 수는 있지만, 만약 당신이 영원한 행복을 원한다면 결국 실망하고 돌아서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땐 나도 알지 못했다. 나로 말하자면, 남들이 보기에 돈도 많고, 성공했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난 그때도 여전히 텅 비어버린 공허함을 느꼈었다.

- ‘9’투어가 끝난 뒤 2개의 여행가방만 둘러맨 채 여행을 다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중에서 특별히 당신을 사로잡은 곳은 어디인가.

▲ 아이슬란드야말로 이번 앨범에 가장 많은 영감을 준 곳이다. 난 정말 그곳과 사랑에 빠졌다. 아이슬란드에서 보낸 몇 년 동안 내게 가장 큰 기쁨을 준 건 다름아닌 ‘배운다’는 사실이었다. 지금까지 내가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걸 배운 거다.  그건 마치 이제 음악이 내 인생에서 2순위가 되어버린 것과 비슷하다. 내게 음악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음악은 오히려 내 인생에 더 깊숙이 자리잡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웃기지만 약간 말이 안 되는 얘기다. 내가 무엇인가를 더 원하지 않을 수록, 음악은 내게 더 많은 걸 줬다.

▲ 신보 'My Favourite Faded Fantasy' 재킷

- 8년의 공백기 동안 특별히 구하고자 했던 것이 있나?

▲ 어느 날 보니 내가 더 이상 앨범을 만드는 것을 걱정하지 않고 있더라. 지난 몇 년을 그냥 흘려 보냈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순간 그 자리에 몇 분을 우두커니 서서 서서, 내 임종을 상상해봤다. 그리곤 ‘그래, 지금부터 내게 남은 시간이, 이 지구에서 내게 허락된 시간이 단 1시간이라면? 그럼 내가 원하는 게 뭐지?’ 그 순간 난 내게  있어서 음반을 조금 더 많이 팔고 적게 팔고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말로 중요한 건, 예전의 내가 생각하기에 꽤나 괜찮았다고 생각했던 버전의 나를 벗어버리고, 적어도 죽기 전에는 세상에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이겠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 그렇다면 곡을 쓰는 접근 방법도 달라졌는지.

▲ 곡을 쓰는 것이 어떤 특정한 상황에 대한 반응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내가 불러야 할 가사들을 가만히 보다가 그것들이 꼭 진실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그저 내가 나를 어떻게 표현하고, 그런 생각들과 이야기들이 어떻게 떠올랐는지에 집중하면 되는 거다. 예전에는 누군가를 탓하거나 비난하기 위해 곡을 썼을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곡을 통해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욕하고 싶지 않다. 그런 것 보다, 지금은 어떤 결과로 이끄는 수많은 시나리오들이 보인다. 그건 끊임없이 변화하고 흘러가는 것이기에 어디로 향할 지 알 수 없다. 이런 흐름 속에서 내가 나쁘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좋은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고 결국 웃게 되더라.

- 이번 앨범은 릭 루빈과 함께 작업해 눈길을 끈다.

▲ 릭에게 정말 고맙다. 그는 내가 ‘엔진’에 다시 시동을 걸 수 있게 도와준 사람이다. 사실 새 앨범을 내는 것에 이토록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은 혼자 작업을 시작하고 곧 그만두고, 다시 시작하고 곧 그만두고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그리곤 난 길을 잃고 말았다. 갈 곳이 없었다. 난 내가 한 모든 것을 비판하고 믿지 못했다. 하지만 릭과 함께 하고 나서는 모든 것이 단순해졌다, 내 마음도 진정됐음은 물론이다.

 

-  자신감을 회복한 뒤 곧바로 앨범작업을 끝내는 것에 매달렸나?

▲ 일단 내 자신에 대한 것들이 정리가 되고 나니, 불현듯 ‘어떻게 열심히 작업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들었다. 당시에 난 이 짓거리를 1분도 더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어떡해야 이 고비를 넘겨내고 해낼 수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난 할 수 있었고, 해냈다. 끊임없이 나에 대해 도전했던 거다. 나는 릭과 함께하면서 이런 고비를 뛰어넘는 수많은 방법들을 배운 것이다.

- ‘MFFF’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운 게 많을 듯하다.

▲ 이 세상에 나보다 나를 믿어주는 사람은 없고, 나보다 나를 더 괴롭힐 수 있는 사람 또한 없다고 믿었던 때가 있었다.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사람은 있을 수가 없고, 나만큼 나를 사랑하고 미워할 수 있는 사람도 없다고 믿었었다. 그것은 진정한 자유로움을 의미했다. 난 변하고 싶었고, 그 변화는 몇 년에 걸쳐 나를 미워하는 것을 그만두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됐다. 내가 나를 미워하는 것을 끝냈을 때, 비로소 난 세상을 미워하지 않을 수 있었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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