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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 김주성 은퇴 선언, 프로농구 족적 서장훈 못지않았다 [SQ포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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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B 김주성 은퇴 선언, 프로농구 족적 서장훈 못지않았다 [SQ포커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7.12.1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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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민기홍 기자] 2017년 프로야구는 '국민 타자' 이승엽을 떠나보냈다. 프로농구도 슈퍼스타와 이별을 앞두고 있다. 한국 농구 영광의 순간마다 중심에 있던 ‘블록슛 황제’ 김주성(38)이 은퇴를 결심했다.

원주 DB 프로미 프로농구단은 18일 “김주성이 올 시즌을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감하기로 결정했다”며 “새해 2017~2018 정관장 프로농구 정규리그부터 은퇴 기념행사를 열겠다”고 밝혔다.

김주성은 구단을 통해 “미련과 아쉬움은 있다”면서도 “남은 시즌 동안 존경하는 부모님과 가족 그리고 팬 여러분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 하겠다”고 밝혔다.
 

김주성은 긴 설명이 필요 없는 ‘농구 아이콘’이다. 최근 예능인으로 활발하게 활동 중인 서장훈, 지난 시즌 은퇴한 주희정과 더불어 프로농구 역사를 3분하는 초대형 레전드 센터다.

득점(1만124점)과 리바운드(4366개)는 통산 2위. 프로농구 역사상 1만 득점을 넘긴 이는 서장훈, 김주성, 추승균 전주 KCC 감독까지 단 3명뿐이다.

경기당 평균 15점 넘는 토종선수 찾기가 힘든 프로농구다. 대학 4년을 마치고 프로에 입문, 1만점에 도달하려면 13시즌 이상 건강히 14점 이상을 넣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김주성의 위대함은 블록슛 1028개(경기당 1.4개)로도 잘 알 수 있다. 이는 서장훈의 득점·리바운드, 주희정의 어시스트·스틸과 함께 경신되기 어려울 불멸의 기록이라 평가받는다. 500호부터 1000호까지 김주성이 전부 최초로 도달했다.

김주성 농구인생의 하이라이트는 2002~2004년이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우승은 그야말로 드라마였다. ‘농구 대통령’인 허재 대표팀 감독과 함께 일군 두 차례 우승(2002~2003, 2003~2004)도 못지않은 감동. 2007~2008에도 정상에 올랐다.

신인상(2002~2003),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2회(2003~2004, 2007~2008), 챔피언결정전 MVP 2회(2004~2005, 2007~2008)까지. 김주성은 선수로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뤘다.

올 시즌에도 김주성은 여전한 경쟁력을 과시 중이다. 평균 12분 54초를 소화하며 5.22점 2.3리바운드 0.8어시스트, 0.4블록슛을 기록하고 있다. 운동능력은 많이 떨어졌으나 관록으로 버틴다. 지난 시즌부터는 슛 거리를 늘려 고비 때마다 3점슛을 작렬한다.

덕분에 DB는 약체라는 세간의 예상을 깨고 3위(15승 8패, 승률 0.652)로 순항하고 있다.
 

김주성의 가치는 ‘원팀 맨’이라는 데서 더 빛난다. 자유계약(FA) 시장 활성화로 이적이 잦아져 프랜차이즈 스타가 사라져 가는 프로스포츠다. 이런 와중에도 김주성은 2002년 TG삼보 입단 이후 동부-DB까지 오로지 원주에서만 16년을 보냈다.

초중고(해동초-영남중-동아고)를 부산에서 나왔지만 강원도민에게 각별한 존재인 이유다. 대학은 중앙대, 프로는 동부와 DB에서 보내 몸에 '초록 피'가 흐른다고 봐도 무방하다.

원주와 한국 농구를 위해 인생을 바친 김주성을 DB는 최고 수준으로 예우할 계획이다. 새해 첫 날 안방 KCC전부터 잔여 경기를 유니폼 왼쪽 위와 코트 3점 라인 안쪽에 김주성의 백넘버 32를 새긴 채로 진행한다.

김주성은 “한 팀에서 많은 걸 이뤘다. 즐거운 선수생활을 할 수 있어 만족한다”며 “마지막까지 후배들의 성장을 도우며 즐거운 시즌을 보내고 있다. 동료 특히, 어린 선수들이 대견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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