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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먹고 몸집 키우는 '국제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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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먹고 몸집 키우는 '국제시장'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4.12.31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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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2014년 마지막 날(31일) ‘국제시장’이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정치권의 아전인수 격 해석과 이념 논쟁으로 시장의 판이 커져버린 영향이 크다.

‘해운대’ 이후 5년 만에 야심차게 돌아온 윤제균 감독과 배급을 맡은 CJ E&M은 ‘국제시장’ 개봉을 앞두고 ‘명량’에 이은 1000만 영화를 내심 욕망했을 것이다. 개봉 24일 전 일찌감치 언론시사를 개최한 뒤 전국 시사를 추진하며 입소문을 일으켜나간 것도 이런 전략의 일환이었다.

 

100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하기 위해 갖춰야할 2가지는 ‘폭넓은 관객층’과 ‘사회적 이슈화’다. 올해 ‘변호인’ ‘겨울왕국’ ‘명량’ ‘인터스텔라’ 모두 그랬다.

‘국제시장’은 한국전쟁, 파독 광부·간호사,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상봉 등 격변기를 살아 온 한 가장의 이야기이자 격동의 현대사를 담은 영화다. 노년층에게는 자신의 역사이며 중장년층에게는 절로 공감 가는 아버지의 이야기이기에 이들 관객은 집토끼와 다름없다. 제작사와 배급사는 젊은 관객 공략에 공을 들였다.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 ‘세대 공감의 장’과 같은 수사는 젊은 산토끼를 포획하기 위한 장치였다.

언론시사 직후 일부 평론가들을 위주로 ‘역사의식 부재’ ‘올드보이 세대에 대한 미화’ 비판이 나왔다. 주인공 덕수(황정민)가 겪는 고통이 전쟁과 가난 탓으로 치환될 뿐 국가의 잘못된 정책은 철저히 배제되는가 하면 베트남 전쟁에서 베트남 공산군이 살육을 일삼는 가해자로 묘사되고, 3포세대인 젊은층을 아버지 세대의 희생 덕에 안온한 삶을 사는 세대로 그린 점을 거론했다.

▲ 극중 베트남 전쟁 장면

충분히 이뤄질 수 있는 지적이다. 특히 평가가 엇갈리는 현대사를 소재로 했기에 더욱 그렇다. 하지만 기획력 좋은 상업영화 감독을 향한 적절한 문제제기였는지에 대해선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윤감독은 “나의 아버지를 생각하며 만든 영화다. 영화를 통해 우리 시대 아버지들에게 위로를 전하려 했다. 정치·사회성을 염두에 뒀다면 그런 식으로 만들진 않았을 거다”라며 영화를 향한 비판에 반론을 제시했다.

앞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돌풍과 같은 날 개봉한 판타지 대작 ‘호빗: 다섯 군대 전투’로 인해 흥행 전선에 차질이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었음에도 ‘국제시장’은 파워를 과시했다. “왕년엔 이랬어!”에 질색하는 젊은 관객은 ‘님아’ ‘호빗’ ‘기술자들’, 이질감 없이 감정 몰입하는 중장년층 관객은 ‘국제시장’으로 향하는 황금분할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국제시장’을 관람하는 젊은층도 많아 기대가 끓어오르던 상황이었다.

평론가 집단, 일부 보수 언론매체 사이의 공방 수준이었던 영화에 정치권이 가세하면서 ‘국제시장’은 일약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다. 29일 박근혜 대통령이 “최근에 돌풍을 일으키는 영화에 보니 부부싸움을 하다가도 애국가가 퍼지니까 경례를 하더라”고 애국심을 강조하는 발언 이후 SNS 상에 무성한 뒷말이 이어지며 ‘국제시장’을 둘러싼 정치적 해석 논쟁으로 확산했다.

▲ 부부싸움 도중 애국가가 울려 퍼지자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는 덕수와 영자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의원은 31일 동시에 영화를 관람했다. 김대표는 “기성세대가 험난한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정과 나라를 지켜 오늘 날이 있다는 것을 젊은 사람들이 알아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원은 “중간에 애국주의를 강조하는 것 같은 장면이 있었지만 그것도 우리 시대의 사회상이다. 보수적인 영화라는 해석은 당치 않다”며 ”요즘 세대 간극이 심각한데 젊은 사람들이 부모 세대를 조금 더 이해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보수진영은 ‘국제시장’에 점포를 열고 산업화 시대의 성과와 애국심을 선전하느라 열을 올린다. 개봉 전 인터뷰에서 윤제균 감독은 “자식과 부모 세대가 서로를 이해하는 가교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했으나 바람이 무색하게 세대 갈등과 진영 대결 조짐이 보인다. ‘국제시장’은 논란과 갈등을 먹으며 맹렬히 몸집을 키우고 있다. 영화를 대결 구조의 역사 교과서로, 정치의 광장으로 변질시킨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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