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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 이광국 감독의 '꿈' 그리고 '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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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 이광국 감독의 '꿈' 그리고 '해몽'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2.13 11: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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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최대성기자] ‘꿈보다 해몽’이 이달 초 폐막한 제44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빅스크린어워즈에서 호평 받은데 이어 10일 개막한 제21회 브졸 국제아시안영화제 장편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2015년 벽두부터 한국 독립영화의 힘을 연이어 유럽영화제에 과시해 관심을 사고 있다.

지난 11일 개봉한 영화는 관객이 한 명도 들지 않아 공연장을 뛰쳐나온 연극배우 연신(신동미)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난 미스터리한 형사(유준상)에게 어젯밤 꿈을 이야기하면서 시작된다. 열심히 살고 있음에도 꿈에서 멀어지는 것만 같아 조바심이 나는 무명 여배우, 해몽에는 일가견이 있지만 검거율은 바닥인 형사, 오랫동안 꿈을 나눠온 연신에게 이별통보를 받은 뒤 꿈보다 생활을 선택하는 우연(김강현)이 직조하는 꿈과 현실의 이야기다.

 

베테랑 배우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자연스러운 연기와 정교한 연출력이 어우러져 극장가에 잔잔한 파장을 그리고 있다. 브졸로 출국하기 위해 부산한 이광국(39) 감독을 9일 홍대 KT&G 상상마당에서 만났다.

- '꿈보다 해몽’을 만들게 된 이유를 들려달라.

▲ ‘로맨스 조’ 이후 아버지를 간병하던 중 아버지께서 꿈과 현실을 헤매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꿈을 본격적으로 다뤄보면 어떨까 싶었다. 여기에 평소 만나오던 좋은 연극배우들이 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걸 보며, 잘 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응원을 하고 싶어 여배우의 꿈과 현실을 영화로 만들게 됐다. 꿈이 우리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과 현실이 꿈에 작용할 수 있는 영향을 한 무명 여배우의 일상을 통해 표현하게 됐다.

- 꿈과 꿈의 연결고리로 낡은 차와 들판을 사용한 이유가 있나?

▲ ‘로맨스 조’ 이후 차기작을 고민하다가 넓은 들판에 덩그라니 놓인 낡은 차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 차는 왜 저기에 있을까?’ ‘누가 타고 있을까?’ 등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꿈을 이야기로 다뤄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자연스레 그 이미지가 다시 떠올랐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 꿈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는 영화들은 초현실주의 분위기나 스토리의 중첩으로 인해 난해하기 십상인데 이 영화는 그런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

▲ 꿈과 현실이 서로 영향을 주는 걸 보여주되 경계를 명확하게 하자는 게 포인트였다. 밸런스를 유지한 채 꿈과 현실을 오가야겠단 생각을 했다.

 

- 여주인공 신동미 배우는 대중에게는 아주 낯익은 인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정감 있게 영화를 이끌고 간다. 색다른 매력이 인상적이었다.

▲ 전작 ‘로맨스 조’에서 같이 했는데 잘 맞았다. 한 작품 더 하고 싶던 차에 이번에 아예 시나리오를 동미씨한테 맞춰 썼다. 롱 테이크 기법의 영화인데 리듬을 만들어내며 호흡을 잘 살리는 능력이 있다. 호탕한 성격임에도 디테일도 놓치지 않는 배우다.

- 신동미와 호흡을 주고받는 김강현, 유준상 캐스팅도 흥미로웠다.

▲ 연신의 남자친구 캐스팅을 위해 여러 배우들을 찾아봤는데 잘 맞질 않았다. 고민하던 차에 (김)강현씨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소년 같은 느낌이 좋았다. (유)준상 형은 시나리오를 쓰자마자 형사 역으로 떠올라 시나리오를 보냈다. 흔쾌히 출연하겠다는 신호를 보내왔다.

- '꿈보다 해몽’에서 주로 롱 테이크를 사용한다. 안정적이면서도 객관적 통찰이 가능한 장점이 있으나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위험성이 큰 촬영기법이다.

▲ 배우와 카메라가 효과적으로 어우러지는 움직임을 좋아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롱 테이크가 되곤 한다. 배우들의 연기를 최고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이자 살아 있는 느낌을 만들어내는 방법이기도 하다. 리듬에 있어서 짧게 끊어가는 것보다 재밌다. 많은 리허설과 테이크를 가며 빈틈을 채워나가는 과정에서 배우와 뭔가를 만드는 성취감이 크다. 잘 못하면 굉장히 지루해지고, 어려운 방식이나 배우들이 잘 해줘서 다행히 관객이 지루해하지 않는 것 같더라.

-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 신동미와 함께 참석했다. 현지 반응은 어땠나?

▲ 국내 관객들보다 더 유쾌하게 관람하더라. 편안하게 수용한다는 인상을 받았다. 영화평론가 토니 레인즈는 “만남과 헤어짐, 꿈과 현실을 맛깔나게 버무린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라는 평가를 해준 게 기억에 남는다.

 

- 이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메시지가 명확하게 있다기보다 묵묵히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 대한 영화다. 한편으론 나에 대한 응원의 영화이기도 하다. 항상 내 영화를 누군가 봐주지 않아도 작업을 계속 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그럼에도 계속 만들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 단편 ‘말로는 힘들어’, 장편 ‘로맨스 조’와 ‘꿈보다 해몽’을 보노라면 꿈과 환상을 즐겨 사용한다. 이유가 있나?

▲ 그 전엔 몰랐는데 꿈에 관심이 많음을 깨달았다. 꿈과 관련한 소재는 무궁무진하니까 영화적으로 계속 다루고 싶다. 레퍼런스로 다른 영화를 참조하진 않지만 평소 고전소설을 많이 찾아본다.

- 최근 이런 류의 국내외 작품들이 많다.

▲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들을 많이 꾸지만 한치 앞을 몰라 머릿 속이 복잡한 것 같다. 항상 정리를 하려고 하는데도. 그러다보니 잘 가고 있는 건지, 잘 사는 지, 자신의 정체성 관련 이야기를 통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것 같다.

- 극중 형사(유준상)가 회중시계를 자주 꺼내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앨리스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토끼가 연상된다. 꿈과 현실의 가교 역할을 하는.

▲ 이 영화가 꿈과 현실이 섞여있다보니 헷갈리는 지점이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디테일을 묻혀 놓으면 관객이 이야기를 대할 때 앨리스를 연상하면서 좀 더 편하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이 이야기가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한 힌트이기도 했다.

- '꿈보다 해몽’은 영화임에도 주요 배경이나 구성, 인물들이 매우 연극적이다.

▲ 아는 연극배우가 연극으로 만들면 어떨까 하고 제안하더라.(웃음) 연극무대에서 시작하지만 정작 극중 연극 ‘Influence Dream’은 단 한 장면도 보여주지 않는다. 오히려 극장 밖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연극과 같다는 느낌을 드러내고 싶어서였다.

 

- 홍상수 감독의 조연출로 ‘하하하’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해변의 여인’ ‘극장전’을 함께했다. 혹자는 ‘꿈보다 해몽’을 두고 특유의 분위기로 인해 홍상수 감독 신작인줄 착각했다고도 한다. 물론 당신의 영화엔 홍 감독 영화들과 달리 지식인에 대한 스노비즘은 보이질 않는다.

▲ 서울예대 영화과 졸업 후 현장에 있다가 홍 감독님을 만나게 돼서 영화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감독님께 극작법, 배우를 만나는 법, 감독의 태도 등 많은 걸 배웠고 좋은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사람이 다르니 영화는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영화를 계속 만들면서 나만의 색깔이 좀더 명확해지지 않을까 싶다. 워낙 훌륭한 분이라 비교되는 것만으로도 민망하고 감사하다.

- 앞으로 영화작업에 대한 계획을 들려달라.

▲ 사소한 걸 구체적으로 접근하면 좋은 이야기가 나온다. 역사적이거나 센 소재보다 일상 속 아무 것도 아닌 소재에서 이야기를 가져오는 게 흥미롭다. 소제와 주제는 그때그때 달라지겠지만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사심 없이, 진정성 넘치게 만들어내면 유행을 타지 않고 영화 스스로 살아남지 않을까 싶다. 기술적 부분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어떤 이야기인가, 이야기의 완성도가 있는가의 문제다. 테크닉, 화질이 떨어지는 고전영화들이나 우디 알렌·홍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 봐도 재밌고 감동을 주지 않나. 이야기가 훌륭해서다. 나 역시 그런 작품을 만들어나가고 싶다.

[취재후기] 야구모자에 검은색 뿔테안경, 감독의 전형적 차림새로 등장한 뒤 나직한 말투로 강단 있게 자신의 영화세계를 설명해 갔다. 지난해 2월7일부터 27일까지 3주 동안 13회 차에 걸쳐 찍은 ‘꿈보다 해몽’은 부산국제영화제 CGV무비꼴라쥬상, 서울독립영화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다. 그의 꿈이 현실 세계에서 맹렬한 속도로 힘줄과 근육을 붙여가고 있단 느낌이 들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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