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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레리노 이동훈, 부상 딛고 '지젤'로 도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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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발레리노 이동훈, 부상 딛고 '지젤'로 도약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3.24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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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노민규기자]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이동훈(29)이 다시금 도약을 시도한다. 지난해 무릎부상으로 9개월 동안 무대를 떠났던 그는 국립발레단의 2015 시즌 첫 공연인 ‘지젤’(3월25~29일·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남자주인공 알브레히트로 위풍당당한 복귀를 알린다. 봄의 틈새를 파고든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2일 낮,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연습에 한창인 발레리노를 만났다.

 

◆ 무릎부상으로 9개월 재활훈련...낭만발레 ‘지젤’ 알브레히트로 복귀

“지난해 4월 ‘백조의 호수’ 공연을 마친 뒤 ‘봄의 제전’ 연습 중 통증이 심해서 병원에 갔다가 전방 십자인대 파열 진단을 받았어요. 다행히 주위 근육에 염증이 생긴 부분 파열이라 수술은 하지 않고 휴식과 재활치료에 전념했죠. 지난해 10월 발레단에 복귀해서 서서히 트레이닝을 시작했고요.”

혹독한 연습과 공연을 하지 않자 체중이 무려 20kg이나 늘었다. 그러다보니 점프와 착지동작을 할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이 찾아오고 근력이 떨어졌다. 무용수에게 절대적인 신체의 셰이프도 망가졌다. 올해 초부터 무용과 계단 오르내리기 등으로 감량에 돌입, 13kg을 뺐다. 체질이 변해버려 쉽진 않았으나 지금은 몸의 선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낭만발레 대표작 ‘지젤’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공연된 발레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고티에가 극작가 생조르주와 함께 대본을 집필, 아돌프 아당이 곡을 붙이고 장 코라이와 쥘 페로가 안무를 맡아 1841년 파리오페라발레단에 의해 초연됐다.

우연히 마을에 들른 귀족청년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진 시골처녀 지젤이 뒤늦게 알브레히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충격으로 죽지만, 처녀귀신이 돼서도 지고지순한 사랑으로 알브레히트를 지켜주는 이야기다. 1막이 밝고 즐거운 분위기라 춤 역시 경쾌하다면, 애절한 사랑이 관통하는 2막에선 내면의 우울함과 고통을 한껏 드러낸다. 이렇듯 1막과 2막의 분위기가 대조적인 분위기라 무용수에게 있어서 ‘지젤’은 테크닉 뿐만 아니라 진폭 넓은 감정표현이 요구되는 작품이다.

▲ 2막 알브레히트(이동훈)의 엔딩 장면

◆ 네 번째 ‘지젤’ 공연서 신예 이은원과 싱그러운 파트너십

국립발레단은 1999년부터 역동적이고 강렬한 볼쇼이발레단 버전 ‘지젤’을 올리다가 2011년 이후 19세기 낭만주의 서정을 강조한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으로 ‘지젤 열풍’을 일으켜오고 있다. 이동훈은 볼쇼이발레단 버전 ‘지젤’에선 페전트 파드되를 한 차례 했고, 파리오페라발레단 버전 ‘지젤’의 알브레히트 연기는 이번이 네 번째다.

“‘지젤’은 드라마틱한 낭만발레라 캐릭터가 잘 부각돼 관객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장점이 있어요. 파리발레단 버전은 발동작이 훨씬 빠르고 섬세해서 스텝이 아름답죠. 전 큰 점프를 선호하는데 볼쇼이 버전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은 점은 아쉽고요. 처음 ‘지젤’을 했을 때부터 1막에서 달콤한 느낌을 듬뿍 줘야 2막의 슬픔이 더욱 잘 살아나기에 무용수가 아닌 연극배우처럼 보이도록 마임 신을 많이 연습했어요. 특히 파리오페라발레단 무용수 니콜라 르 리쉬의 섬세한 눈빛과 연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죠.”

그동안 수석무용수 김지영과 계속 지젤- 알브레히트 파트너십을 이뤄 1, 2막의 느낌 다른 파드되(2인무)를 췄다면, 이번에는 신예 이은원과 호흡을 맞춘다.

 

“지영이 누나와는 워낙 많은 공연을 해와서 말을 하지 않아도 호흡이 척척 맞을 정도예요. 힘이 좋고 테크닉이 완벽한 은원이와는 음악에 대한 해석, 감정선, 연기를 맞추기 위해 대화를 많이 해나가고 있어요. 저도 복귀무대라 욕심이 나고, 그동안 은원이도 많이 성숙해져서 파트너십에 대한 기대가 날로 커지고 있죠.”

◆ 비보이 출신 ‘발레돌’의 콤플렉스 No.1은 ‘몸매’

어린 시절 비보이로 춤과 인연을 맺은 이동훈은 뒤늦게 발레로 전향, 재능을 꽃피웠다. 달콤한 마스크에 힘이 넘치는 도약과 회전을 앞세워 우아하면서도 남성적 힘이 넘치는 발레를 구사한다. 2008년 9월 특채로 국립발레단에 입단, LTE급 속도로 ‘호두까기 인형’ ‘신데렐라’ ‘백조의 호수’ ‘지젤’ ‘스파르타쿠스’ ‘라 바야데르’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7번’ 등의 주역을 꿰차며 국립발레단 간판스타로 군림했다.

여성 팬들을 대거 몰고 다닐 만큼 ‘발레계의 아이돌’로 통했던 그에게도 콤플렉스가 있다. ‘우월한 기럭지’의 대명사인 이동훈의 약점은 다름 아닌 몸매다. “몸매 예쁘다”는 얘기를 제일 들어보고 싶단다.

“그동안 슬럼프에 빠지거나 콤플렉스로 힘들었던 게 몸매 때문이에요. 발레리노에게 긴 다리와 유연한 신체는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인데 전 체격조건이 좋질 않아요. 처음부터 발레를 하면서 유연성을 극대화한 것도 아니고요. 몸매가 훤하게 드러나도록 흰 타이즈를 착용하는 ‘백조의 호수’를 할 때가 제일 부담이 되죠. 반면 바지를 입는 역할을 하면 편하고요.(웃음) 연기와 감정 면에선 ‘로미오와 줄리엣’ ‘말괄량이 길들이기’가 맞는 것 같고요.”

 

◆ 희극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호탕한 페트루키오 맡아

그런 그가 안성맞춤인 작품을 만났다. 오는 4월 말 개막 예정인 국립발레단 초연작인 희극발레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페트루키오를 맡게 됐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의 희극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안무가 존 크랑코가 각색한 작품으로 호탕하고 쾌활한 신사 페트루키오가 소문난 말괄량이 캐서리나를 온순한 아내로 길들여가는 과정의 해프닝을 익살스럽게 그렸다.

“남자주인공을 누가 맡을지, 관심이 집중됐던 캐릭터거든요. 장난꾸러기 면모와 더불어 남성적이고, 진지한 것 같으면서 또 아니고...숱한 발레작품들이 있지만 이런 캐릭터가 없었어요. 해외 안무가가 제 일상을 보더니만 ‘연기가 아니라 본인의 걸 한다’며 칭찬해줘서 어안이 벙벙했죠.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워낙 유쾌하고 코믹해서 하는 사람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쳐요. 반면 보통은 공중 2바퀴를 돌면 되는데 이 작품은 3회전을 하는 등 테크닉 면에선 매우 어려워요. 자극과 좌절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죠.”

올해 상반기는 발레리노 이동훈에게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다. 복귀작 ‘지젤’에 이어 초미의 관심사인 초연작 ‘말괄량이 길들이기’, 모던발레 ‘교향곡 7번’ ‘봄의 제전’이 줄지어 기다리고 있어서다. 그럼에도 물 만난 고기처럼 신명나 보였다.

[취재후기] 올해 우리 나이로 서른이 됐다. 20대를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드라마틱하게 보냈던 발레리노다. 꼭 1년 만에 만난 그에게서 성숙함이 묻어난다. 예전엔 힘들면 스스로에게 칭얼대거나 어리광을 부렸는데 이젠 후배들이 많아졌기에 모범이 돼야한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된다. “맡았으면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해내야 한다”는 책임이 가슴을 꽉꽉 채우는 체험을 하고 있다고 진지한 눈빛으로 전했다.

▲ 2013년 '지젤' 공연에서 2막 지젤(김지영)과 알브레히트(이동훈)의 파드되[사진=국립발레단 제공]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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