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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이슈] 인종차별 향한 '빅엿', 마레가 용기와 '안정환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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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이슈] 인종차별 향한 '빅엿', 마레가 용기와 '안정환 데자뷔'
  • 안호근 기자
  • 승인 2020.02.18 0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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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가만히 있으면 가마니가 된다’는 우스갯 소리가 있다. 인내가 절대 미덕이었던 시대는 갔다. 옳고 그름에 대해 당당히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도 알아야 한다. 팬들이 존재 이유인 프로스포츠의 세계에서도 예외일 수 없다.

17일(한국시간) 포르투갈 기마랑이스에서 열린 FC포르투와 비토리아 기마랑이스의 2019~2020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 경기. 결승골을 터뜨린 말리 출신 공격수 무사 마레가(29·포르투)는 돌연 벤치로 향했다.

경기 시간이 한참 남아 있었지만 더 이상 피치에 머물려 하지 않았다. 그는 왜 본연의 임무를 저버렸을까.

 

FC포르투 무사 마레가(가운데)가 17일 비토리아 기마랑이스의 2019~2020 포르투갈 프리메이라리가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피치를 빠져나오며 상대 팬들을 향해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세우고 있다. [사진=무사 마레가 인스타그램 캡처]

 

1-1로 팽팽하던 후반 15분 마레가는 감각적인 칩슛으로 승부의 균형을 깨뜨렸다. 그 뒤엔 기쁨을 즐길 시간. 그러나 마레가의 흥분은 기쁨보다는 분노에 가까웠다.

마레가는 상대 관중석을 향해 자신의 왼쪽 팔뚝을 치며 불만을 터뜨렸는데, 경기 전부터 이어진 인종차별적 행위에 대한 항의의 뜻이었다. 기마랑이스 팬들은 마레가를 향해 원숭이 소리를 내는 등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강력히 규제하는 인종차별적 행위로 그의 심기를 건드렸다. 마레가는 자신의 검은 피부색을 가리키며 따져 묻듯 상대 관중들을 향해 도전적으로 나섰다.

위험천만한 상황의 연속이었다. 홈팬들은 흥분한 마레가를 향해서는 의자를 집어 던지기까지 했다. 마레가는 이를 머리 위에 얹은 포즈를 취하다 집어던지기도 했다.

심판의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마레가를 향해 경고를 안겼는데, 이후 마레가는 벤치에 교체 사인을 낸 뒤 스스로 피치에서 빠져나왔다. 동료들과 그를 말리며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지만 마레가의 뜻은 완고했다.

그라운드를 완전히 빠져나가기 직전엔 관중들을 향해 양손 중지를 들어올렸다. 팀 관계자들 여럿이 달라붙어 그를 라커룸으로 끌고 가야만 했다. 지연됐던 경기는 10분 가량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속개됐다.

 

골을 넣은 뒤 자신의 팔을 가리키며 피부색을 어필하고 있는 마레가. [사진=무사 마레가 인스타그램 캡처]

 

마레가는 물러섬이 없었다. 경기 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관중석을 향해 ‘쌍 중지’를 치켜든 사진을 첨부하며 “인종차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경기장에 온 바보들에게 말하고 싶었다”며 “피부색을 지키려고 했던 나를 옹호하지 않고 경고를 준 주심에게 고맙다. 당신은 수치다. 다시는 축구장에서 보지 않길 바란다”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세르지우 콘세이상 포르투 감독은 마레가의 뜻을 지지했다. 미국 AP 통신에 따르면 그는 “우리는 오늘 일에 분개한다. 마레가는 경기 전 몸을 풀 때부터 인종차별을 당했다”며 “국적, 피부색 등과 관계없이 우리는 가족이고 인간이다. 존중받아야만 한다. 오늘 일은 비열했다”고 기마랑이스 팬들을 향해 비판을 가했다.

포르투도 구단 공식 사이트를 통해 “포르투갈 축구 역사에 안 좋은 순간 중 하나다. 강력히 규탄한다”고 거들었다.

마레가의 행위로 떠오르는 축구 스타 둘이 있다. 다니엘 알베스(상파울루)와 안정환이다. 알베스는 2014년 바르셀로나 시절 경기 도중 관중들이 던진 바나나와 직면했다. 기마랑이스 팬들과 마찬가지로 알베스를 원숭이에 빗댄 대표적 인종차별 행위였다. 이 뜻을 모를 리 없었지만 알베스는 태연히 바나나를 집어 먹었다.

알베스는 “누가 던졌는지 모르겠지만 고맙다. 크로스를 더 많이 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줬다”고 재치 있게 받아쳤다. 비야레알 측에선 바나나를 던진 팬에게 홈구장 평생 출입금지 제재를 가했고 루이스 수아레스와 필리페 쿠티뉴는 SNS 바나나를 먹는 사진을 올리며 알베스에게 응원의 뜻을 전했다.

 

골을 넣고 피치를 빠져나가려고 하는 마레가(왼쪽에서 3번째)를 동료들이 말리고 있다. [사진=EPA/연합뉴스]

 

마레가에 비하면 재치와 품격이 있는 대응이지만 모두가 이렇게 대응하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안정환은 유럽리그를 떠돌다 2007년 수원 삼성의 유니폼을 입은 뒤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FC서울 2군과 R리그에 나섰는데, 이 경기에서 사건이 터졌다. 상대팀 응원석에서 야유가 나왔고 안정환은 경기 도중 관중석에 난입하며 관중과 설전을 벌인 끝에 벌금 1000만 원의 중징계를 받았다.

프로선수로서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지만 뒷이야기가 공개되자 여론은 급속히 뒤바뀌었다. 한 여성 관중은 안정환을 향해 아내 이혜원 씨를 모욕하는 음담패설과 욕설을 쏟아냈다. 예능인이 된 안정환은 이후에도 방송을 통해 “가족을 지키기 위해 참을 수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정당히 입장료를 지불하고 경기장에 들어온 팬이라고 모든 게 용서되는 건 아니다. 물론 선수이기에 관중에 맞서 싸우는 것을 정당화할 수는 없고 이러한 행위에 대한 제재도 필요한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선수들이 감정노동자인 것도 아니다. 팬들의 근거 없는 비방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야 할 이유도 없다.

안정환과 마찬가지로 마레가의 행위가 공감을 사는 이유다. 다소 과격했지만 마레가의 행동은 인종차별 타파를 위한 용기 있는 한걸음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을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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