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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 배수빈, 정체성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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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프라이드' 배수빈, 정체성 찾아가는 아름다운 여정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9.04 2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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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용원중기자] 배우 배수빈(39)이 연극열정을 무대에 뿌리고 있다.

지난 2013년 ‘광해, 왕이 된 남자’ 이후 다시 출연한 연극 ‘프라이드’(11월1일까지·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1958년과 현재를 오가는 시간여행에 푹 빠져 있다.

지난해 연극열전을 통해 선보인 ‘프라이드’는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가운데 각 인물들이 자신의 사랑과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려낸다. 1958년의 필립은 사회적 관습과 체면을 중시하는 유부남이다.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동화작가 올리버와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혼란에 빠진다. 2015년, 필립과 올리버는 공식적인 연인이지만 너무나 다른 가치관 때문에 힘들어 한다.

 

퀴어 코드의 ‘프라이드’에서 배수빈은 강필석과 함께 필립을, 대학로의 ‘핫’한 스타 정동화 박성훈이 올리버 역을 맡고 있다.

“2~3년에 한 번씩은 연극을 하자고 다짐했어요. 신인 때는 질책을 많이 받는데 경력이 쌓이면 혹독하게 비판해주는 사람들이 없어지잖아요. 배우로서 딜레마나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 관객과 직접 만나 날것의 느낌에 빠져드는 게 해결책이 되더라고요. 부서지면서 발전할 수 있으니까. 무대가 주는 에너지로 저 자신을 채울 수가 있고요.”

서로 다른 시대, 이름만 같을 뿐 다른 두 캐릭터를 연기하는 게 쉽지만은 않을 터다. 개막 후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배수빈은 베테랑 배우답게 진지하면서 유머러스한 필립을 그려내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필립 캐릭터와의 밀착성과 디테일이 살아 있는 연기에 관객 만족도가 크다는 게 제작진의 귀띔이다.

“뭔가를 놓치고 가는 게 싫어서 좀 더 디테일을 파고들고 있어요. 50년대 후반의 필립을 연기할 땐 중후함 안에서의 자유로움을 묻혀내려 하고, 2015년으로 전환됐을 땐 현시대에 맞게 대사톤도 자연스럽게 잡아나가려고 해요. 연극이다 보니 그날그날 정서에 따라 대사의 뉘앙스가 달라지곤 해요. 극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는 생각은 늘 머리를 떠나지 않죠. 작품을 좋아하는 열성 관객들이 많아 부담스럽긴 하나 감사한 일로 여기며 임하고 있어요.”

▲ 연극 '프라이드'에서 필립(배수빈)과 올리버(박성훈)

‘프라이드’는 영국 작가 알렉시 캠벨의 2008년 데뷔작이다. 알렉시 캠벨은 이 작품으로 비평가협회 각본상,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드 작품상을 받았다. ‘프라이드’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은 단지 동성애자에게 국한되는 게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폭력의 폐해, 자아 성찰의 화두를 던져준다.

“출연을 결정한 뒤 역사서적을 찾아보니까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동성애에 대해 개방적이었다가 종교전쟁 이후 핍박이 심해졌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더욱 심해졌더라고요. ‘프라이드’는 억눌렸던 시대에 대한 표현이라고 여겨요. 50년대의 필립이 정체성과 진정한 자유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고 살았던 측은한 인물이라면 현재의 필립은 확대된 자유를 어떻게 누리며 살아야할지 명확히 알고 있는 인물이고요. 두 시대의 필립이 차이는 있더라도 영혼은 같다고 봐요.”

극중엔 필립과 올리버 사이에 이뤄지는 밀도 높은 감정 신뿐만 아니라 포옹과 입맞춤 등 동성애 연기도 자리한다. 어색함은 없었을까.

“연기에 베테랑은 없는 것 같아요. 처음엔 어색했죠. 그래서 일단 연습과정에서 미뤄놨어요. 다른 부분들부터 채워 넣고 공연 1주일 전에 시도했어요. 다른 장면들에서 쌓은 감정이 있어서인지 자연스레 몰입이 됐고, 생각보다 쉽게 풀렸어요.”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도중 “영혼이 길을 잃은 느낌을 많이 받았다”는 표현을 했다. 작품 속 필립과 올리버처럼 자신을 비롯한 많은 이들이 자신을 숨기고 살거나, 소수자란 이유만으로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말이 이어졌다.

“과거와 달리 전반적인 생활은 윤택해졌으나 사는 건 팍팍해진 것 같아요. 더욱이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권력의 갭이 커지다보니 차별받는 사람들이 많아졌고요. 일례로 수입으로 인해 불안감을 느끼는 비정규직이나 영세상인, 자영업자들도 소수자잖아요. 그러다보니 조그만 일에도 화를 내는 등 여유가 없어지는 듯싶어요. 이런 현상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가 해결해야 할 숙제이지 싶어요. 관객들이 ‘프라이드’를 통해 위로를 얻었으면 해요. 우리 사회의 소수자들을 편견 없이 받아들인다면 세상은 진화하지 않을까요.”

최근 배수빈은 무협사극 블록버스터 ‘협녀: 칼의 기억’(감독 박흥식)에 비중 있는 특별 출연을 했다. 혼돈의 시대 고려 말, 부당한 권력에 맞서 대의를 위해 뭉친 세 검객 중 리더인 풍천 역을 맡았다. 영화 전반부에 잠깐 등장하지만 유백(이병헌)과 월소(전도연)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는 의협심 강한 검객으로 강렬한 인장을 남겼다.

그의 필모그래피를 보면 드라마 ‘동이’ ‘바람의 화원’ ‘주몽’ ‘해신’, 연극 ‘광해, 왕이 된 남자’ 등 인상적인 사극이 즐비하다.

 

“사람 이야기를 좋아하다보니 역사를 좋아하는 거죠.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그 사람을 온전히 알게 되잖아요. 당시에 비춰서 현재를 어떻게 살아야할지 해답을 얻을 수도 있고요. 당시엔 차별과 핍박 탓에 억울했던 사람들이 대거 생겨났고, 그로인해 탐욕과 신분상승의 드라마가 만들어졌지 싶어요. 현재도 비슷하죠. 부와 권력이 없으면 노비와 같고, 있으면 휘둘러야 하고 악순환의 연속이에요. 제가 선택했던 사극들은 많은 이들이 어우러지면서 어떻게 서로 다독이며 살아갈지 모색하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저도 연기하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고요.”

배수빈은 2013년 결혼, 지난해 득남했다. 책임감 막중한 가장이다. 남편이자 아버지가 됐기 때문인지 한층 품이 넓어진 느낌이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해 제가 그동안 갖고 있었던 전반적인 생각을 뒤흔들진 않았어요. 특히 작품관이나 연기관은요. 가끔은 너무 안정돼 있어서 편하게 연기하는 건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데뷔 이후 극한까지 나를 몰아붙이며 치열하게 살았기에 더욱 그런 감정을 느끼지 싶어요. 앞으로는 그런 치열함이나 열정보다는 많은 걸 담아가면서 정확히 표현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어요.”

2004년 처음 만났던 풋풋한 신인 배수빈과 2015년 해후한 마흔의 중견 배수빈은 물리적인 숫자, 정서의 양감에서 확연히 달라졌다. 그가 받아들이는 배우라는 직업의 의미도 달라져 있을 테다. “지금 시대를 잘 반영하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꼰대처럼 고집부리고 머물러 있지 않고, 잘 투영시켜 편안하게 연기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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