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5-01 06:31 (수)
연극 '나는 형제다' 이승주, 연기 테러리스트의 고백 [인터뷰]
상태바
연극 '나는 형제다' 이승주, 연기 테러리스트의 고백 [인터뷰]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9.12 18: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연극배우 이승주(34). 거장 연출가들의 심장을 쏘는 테러리스트다. 그의 예민함, 집중력, 단정한 외모만큼이나 정갈한 연기는 김광보 한태숙 양정웅 연출가의 선택이 이어지도록 하는 요인이다. 이승주가 김광보(서울시극단장) 연출의 ‘나는 형제다’(4~20일·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테러리스트 형으로 무대를 뜨겁게 껴안고 있다.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에서 모티프를 얻은 ‘나는 형제다’는 가난하지만 착하게 살려고 노력해 온 두 형제의 성장과 실패를 통해 잠재적 테러리스트를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약자를 만들어내는 현재 우리의 모습을 그린 화제작이다.

 

사회성 짙은 주제의식 뿐만 아니라 고연옥 작가-김광보 연출 콤비가 다시금 합을 맞추고, ‘내 심장을 쏴라’ ‘전쟁터를 훔친 여인들’ ‘M.버터플라이’ 등 김광보 연출작에 연이어 이승주가 출연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에 관심이 많아요.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을 드러냄으로써 관객이 뭔가 느끼도록 해야하는 게 배우의 역할 중 하나라고 여기고요. 메시지가 각각의 장에 함축돼 있다보니 기승전결의 서사가 시간 흐름에 따라 이어지지 않아 관객이 어렵게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배우로서도 호흡을 잡고 주욱 가야하는 어려움이 있고요.”

◆ 보스턴 마라톤 테러사건 모티프 삼은 '나는 형제다' 테러리스트 형 연기 

이승주가 맡은 형은 운동선수 생활을 하다가 체력 문제로 그만둔 뒤 부모까지 잃게 된다. 의대를 중퇴한 동생과 함께 과거 아버지를 도와준 회장을 찾아갔다가 사회악을 근절해야 한다는 그의 논리를 맹신하게 된다. 성공을 위해 동생과 헤어진 형은 세상을 벌하고 선을 회복하기 위해 영화관에 폭탄을 설치하고, 동생을 합류시킨다.

“형은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고, 운동에만 집착해온 인물이에요. 정직하게 살려고 하는데 사람들은 부담스러워 해요. 심지어 가족구성원 사이에서조차 섞이질 못하죠. 점점 소외돼 가는 거죠. 세상에 대한 분노와 반감이 쌓이다 극단적 행동을 하게 돼요. 테러라고 하면 이슬람 무장단체나 과격단체를 떠올리고, 다른 세상 이야기로 여기잖아요. 그런데 이런 테러가 우리에게도 일어날 수 있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테러리스트가 양산되고 있는 건 아닌가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형과 동생은 비극의 주인공으로 극에 마침표를 찍는다. 이승주는 형의 순박함부터 출발해 성실함, 좌절과 분노, 누군가에게 이용당하는 어리석음, 광기를 변검을 착용하듯 따박따박 얼굴에 채워나간다.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에 사슴의 눈망울을 지닌 감성적인 외모가 형의 극단적 변화를 가슴 아프게 느끼도록 해준다.

“아직까진 캐릭터를 채우고 비워내는 게 잘 이뤄지질 않아요. 집에 가서도 인물에 대한 생각을 잔잔하게라도 해서 악몽을 자주 꾸는 편이죠. ‘나는 형제다’는 알 수 없는 분노가 많이 솟구치는 것 같아요. 누구보다 캐릭터 탓에 힘들어하는 편이라 감정적으로 덜 피로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작품 속 캐릭터처럼 실재 이승주는 남동생 하나를 둔 형이다. ‘나는 형제다’를 하면서 형제 관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세상에 태어난 뒤 가장 먼저 그리고 가까이서 보는 대상이면서도 질투 시기 부러움 비교 대상이 되는 존재가 형제다. 인류 최초의 살인도 카인과 아벨 형제 사이에서 이뤄졌다.

“현실에서도 성장한 이후에는 딱히 같이 하는 일이 없어요. 말도 살갑게 하는 편이 아니고. 우애와 미움이 공존하지 싶어요. 그럼에도 형제니까 마음의 끈을 놓치지는 않죠. 극중 형제도 각자 시련을 겪다가 가끔 한 번씩 만나는 정도예요. 형제의 정서를 어떻게 진하게 묻혀낼까를 많이 고민했어요. 공연을 거듭하다보니 처음보다 많이 짙어진 느낌이에요.”

◆ KBS 공채 탤런트 출신...연극 '내 심장을 쏴라' 이후 연극배우 전환

 

학창시절 국어책도 낭독하지 못할 정도록 내성적인 성격이었다. 대학 철학과에 진학하면 뭔가를 결정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심리학 서적과 소설을 탐독하며 은연중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고3 말에 잠깐 연기레슨을 받았는데 떡하니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하게 됐다. 1년에 3~4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경험치를 최대한 넓혔다.

졸업 후 연극 한 두편을 하다가 운 좋게 2008년 KBS 공채 탤런트 시험에 합격했다. 입사 동기는 최윤영. 방송사 분위기에 적응이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고자 하는 배우 방향과도 달랐다. 연극이 항상 그리웠다. 배우, 작가, 연출, 관객이 함께 만들어가는 연극의 매력이 잊히질 않았다. 새내기 이승주의 이런 고민을 좋게 봐준 유현기PD가 드라마 ‘브레인’에 캐스팅했고, ‘내 딸 서영이’에도 그를 발탁했다.

“제가 호흡이 느린 편인데 연극은 인물에 대해 심도 있게 연구할 수 있는 과정이 주어지잖아요. 그래서 2010년 연극 ‘내 심장을 쏴라’ 오디션에 도전했고, 고연옥 작가와 김광보 연출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상대역 김영민 선배가 준 자극은 지금도 여전하고요. 연극을 할 땐 내가 연기하고 있는 생각이 들질 않아서 집중이 흐트러지질 않죠. 하지만 드라마는 온전히 그래지질 않아서 극복할 문제예요.”

‘내 심장을 쏴라’와 ‘유리동물원’은 지금도 그의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잘 하고 싶은 욕심 내지 않은 채 즐겁고 치열하게 초심으로 임했던 작품이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해 8월 공연한 ‘유리동물원’은 배우로서 아픔을 겪던 시기에 만난 연극이라 더욱 특별하다.

◆ 연극계 거목 연출가 김광보 한태숙 양정웅 등으로부터 잇딴 러브콜 

연극계 거목들과의 작업은 젊은 배우 이승주에게 어떤 흔적을 남겼을까.

 

“존재만으로도 대단하신 한태숙 선생님과 ‘유리동물원’으로 인해 큰 위로를 얻었어요. 만나지 못했다면 긴 좌절의 시간을 겪었을 것 같아요. 김광보 연출님은 제가 어떻게 해야 변화할 수 있는지, 인물에 가까워질 수 있는 지를 꿰뚫고 계세요. 양정웅 연출님께선 믿고 맡겨주시고요. 공통점은 집요할 정도로 그 작품만 생각하세요. 연극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지를 크게 배웠죠. 제가 배우인데도 나서서 뭔가를 하는 걸 두려워하고, 예민함과 자책이 심해요. 유일한 장점이 스스로에게 치열한 거예요. 그분들이 저의 치열함을 좋게 봐주신 것 같아요.”

이승주는 테크닉이 뛰어난 배우보다 무대 위에서 그 인물로 살려고 최선을 다하며 모든 걸 쏟아 붓는 배우를 좋아한다. 그 역시 이를 지향한다. 그런 순간, 찾아드는 거대한 감동과 소름이 더할 나위 없이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30대 중반에 접어든 이승주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 고민은 ‘좋은 배우’다. “사람들 앞에서 표현하고, 느끼게 해주는 점에서 배우는 광대죠. 제가 과연 원한다고 해서 좋은 배우, 광대가 될 수 있을까요? 하지만 오기가 생겨요. 더 덤벼 보려고요”라고 말하는 그의 선한 눈에 날카로움이 일렁였다.

 

 

도전과 열정, 위로와 영감 그리고 스포츠큐(Q)


주요기사
포토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