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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 이상욱, 선수생명 시련 딛고 도약 '생애 최고의 날' 완벽착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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맏형 이상욱, 선수생명 시련 딛고 도약 '생애 최고의 날' 완벽착지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9.23 23: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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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만에 개인종합 메달 획득, 무릎 부상 딛고 일어나

[인천=스포츠Q 민기홍 기자] “인사를 하도 많이 해서 허리가 아플 정도예요. 하하하.”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던 메달을 따낸 이상욱(29·전북도청)은 세상 누구보다 행복해 보였다. 그는 ‘관중님’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오늘 하루 허리를 많이 굽혔다”고 호탕하게 웃었다.

이상욱(29·전북도청)은 23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벌어진 제17회 인천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에서 6종목 합계 87.200점을 획득,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남녀를 통틀어 한국 기계체조가 아시안게임 개인종합에서 메달을 획득한 것은 역대 3번째다. 1974년 테헤란 대회에서 이영택이 동메달을 따낸 이후 2002년 부산 대회에서 김동화가 은메달을 따기까지 28년이 걸렸다. 이상욱이 홈에서 열린 대회에서 12년만에 쾌거를 달성한 것이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상욱이 23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에서 동메달을 확정지은 뒤 코칭스태프와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고 있다.

그는 “솔직히 크게 기대 안하고 했다. 워낙 뛰어난 선수들이 있는데다 나이가 많다 보니 실수 없이 내가 할 것만 하고 부끄럽지 않게 경기에 임하자는 생각으로 나왔다”며 “전 종목에서 150~200% 실력을 발휘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오른쪽 허벅지 상태가 좋지 않은 양학선은 주종목인 도마에 집중하기 위해 지난 21일 단체전에서 안마, 철봉을 포기해 개인종합에 나서지 못했다.

이에 미디어가 주목한 쪽은 예선을 전체 4위로 통과한 ‘차세대 선두주자’ 막내 박민수(20·한양대)였다. 이날 오전까지도 이상욱은 기사의 마지막 한 줄 대상이었다.

뚜껑을 열어보니 달랐다.

경험이 많은 '맏형' 이상욱은 6종목 모두에서 큰 기복 없이 무난한 경기를 펼친 반면 박민수는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잃었고 부상까지 겹쳐버렸다.

취재진의 시선이 이상욱에게 쏠렸다. 그는 마루 14.850점 안마 14.150점, 링 14.200점, 도마 14.400점, 평행봉 14.850점, 철봉 14.750점 등 고른 점수를 획득하며 값진 메달을 목에 걸었다.

이상욱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기자회견장에 들어섰다. 그럴만도 했다. 나이는 많지만 그에게 이렇게 큰 대회는 처음이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상욱이 23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에서 마루 연기를 펼치고 있다.

사실 그는 앞길이 창창한 유망주였다. 대한체조협회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09년 제41회 세계기계체조선수권대회를 통틀어 은메달 1개(유원철 평행봉)를 따는데 그치자 전폭적인 물갈이에 나섰다.

이상욱이 그 세대교체의 중심이었다.

한양대 재학시절부터 간간이 대표팀을 드나들었던 그는 2008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아시아 기계체조 선수권에서 김수면 등과 함께 팀을 이뤄 일본에 이어 단체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2009년 세르비아 베오그라드 하계 유니버이사드 단체전 5위의 기록을 남겼다.

이상욱은 2009년 10월 개최된 대표 선발전에서 1위를 차지해 당당히 태릉선수촌에 입성했다. 단체전 메달을 노리는 한국 체조는 6종목 모두를 곧잘 소화하는 이상욱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그러나 곧 시련이 찾아왔다. 광저우 아시안게임만 바라보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던 이상욱은 훈련 도중 무릎 십자인대가 파열되며 선수 생활을 접을 위기에 놓였다. 피나는 노력 끝에 3년만에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는 “부상 이후 다시는 못 돌아올 줄 알았다. 다른 선수들의 기량이 뛰어났다”면서 “도전을 거듭했다. 꾸준히 준비하다보니 기회가 오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도약하는 종목(도마, 마루)은 연마가 아니라 유지하는 수준에 불과하다”며 무릎 상태가 좋지 않음을 전했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상욱이 23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에서 도마 연기를 펼치기 위해 힘차게 도약하고 있다.

이날 남동체육관에는 여고생들의 함성이 하늘을 찔렀다. 한국 선수들이 연기를 펼칠 때마다 박수와 찬사가 쏟아졌다.

이상욱은 “서른살인데 체조하면서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다. 연기 후 착지까지 완벽히 해낸 것에 전율을 느꼈는데 거기다 환호까지 받으니 정말 좋았다”고 감격을 표현했다.

그는 여러 차례 “운이 좋았다”고 강조했다. 이상욱은 “일본과 중국 선수들이 뛰어나고 박민수도 잘한다. 무난하게 내 것만 하자고 시작했다”며 “민수가 1등, 내가 3등하자는 각오로 임했다. 민수가 아프지 않고 잘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고 겸손해하며 후배를 챙겼다.

그는 메달의 기쁨을 아내에게 돌렸다. 서울 출신인 아내는 남편을 따라 혈혈단신 전주로 내려갔다. 현재는 두 아들의 엄마다.

이상욱은 “항상 미안하다. 연애할 때도 결혼해서도 늘 떨어져 있었다. 출산 직후에도 대회를 나가야만 했다”며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애들 잘 키워줘서 고맙다. 내 모든 것 다 줘도 부족한데 내려가면 사랑 듬뿍 주겠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이제 그는 세계선수권과 전국체전을 위해 다시 뛴다. 대회를 마치면 가족과 함께 오붓한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물론 소속팀 감독이 휴가를 줬을 때 이야기다. 그는 “감독님이 휴가를 주시겠죠?”라고 되물으며 활짝 웃었다.

그는 오는 25일 기계체조 남자 철봉 결승에서 또 하나의 파란을 노린다.

▲ [인천=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상욱(오른쪽)이 23일 인천 남동체육관에서 열린 인천 아시안게임 기계체조 남자 개인종합 결승에서 동메달을 확정짓고 시상식에서 환호하고 있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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