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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결과 아닌 과정, 코리아 스쿼시 '도전은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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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결과 아닌 과정, 코리아 스쿼시 '도전은 멈출 수 없다'
  • 이세영 기자
  • 승인 2014.09.24 21: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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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스쿼시, 역대 아시안게임 메달 입상 '0'…4년 뒤 겨냥한 무한 도전

[인천=스포츠Q 글 이세영‧사진 최대성 기자] 우리나라 스포츠를 보면 모순된 점을 하나 발견한다. 동호인들은 무척 많은데 정작 그 스포츠를 좋아하는 팬들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이다. 스포츠를 즐기는 사람이 많으면 경기를 보러가는 사람들도 많을 듯 한데 의외로 그렇지 않은 종목들이 꽤 된다.

이런 장면은 주로 라켓을 쓰는 종목에서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리나라 웬만한 공터나 약수터를 가면 꼭 배드민턴을 치기 마련이다. 그러나 배드민턴을 좋아해 경기를 보러가는 관중들은 그리 많지 않다. 탁구나 테니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스쿼시 역시 마찬가지다. 스쿼시라고 하면 건강 목적으로 실내 피트니스 센터에서 치는 것쯤으로 생각한다. 한국스쿼시볼협회가 1989년 5월에 세워진 것이 한국 스쿼시 역사의 처음이니 올해로 한국 스쿼시 25년을 맞았다.

하지만 1992년 이름이 대한스쿼시연맹으로 변경된 이후 연맹의 본질적인 역할을 한 것은 10년 정도에 불과하다. 이 때문인지 한국 스쿼시는 아직 엘리트 스포츠보다는 생활체육 쪽에 더 가깝다. 엘리트 스포츠의 기틀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다보니 한국 스쿼시의 기반은 약하기만 하다.

▲ 남자 스쿼시 대표팀이 23일 파키스탄과 예선전을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이승준, 황중원, 이세현, 강호석 코치, 유재진, 구륜회 감독.

스쿼시는 올림픽 정식종목은 아니지만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부터 정식종목으로 채택돼 한국은 꾸준히 출전해왔다. 한국은 여자 대표팀이 2002년 부산 대회와 2010년 광저우 대회에서 동메달 1개씩을 따낸 것이 최고 성적이었다.

한국은 24일 열우물스쿼시경기장에서 열린 남자 단체전 A조 예선 2차전에서 파키스탄에 실력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0-3으로 완패했다. 말레이시아와 파키스탄, 홍콩은 아시아에서 상위권 팀으로 분류되고 있는 팀들이다.

한국 남자 스쿼시는 이번 대회에서 23일 쿠웨이트전 1-2 패배에 이어 2연패를 당하며 아직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아시아 강호들을 따라잡기 위해 막 걸음마를 뗀 한국 스쿼시를 개척하는 사람들이 있다. 구륜회(41) 남자 스쿼시 대표팀 감독과 강호석(39) 대표팀 코치는 10년 넘게 자라지 못한 한국 스쿼시의 싹을 틔우기 위해 불철주야, 동분서주 노력하고 있다.

◆ 귀족운동? 스쿼시는 수컷냄새 나는 운동

스쿼시는 19세기 초 영국의 교도소에서 몇몇의 모범수들이 운동 삼아 벽에 공과 유사한 것을 치던 것에서 유래됐다. 테니스를 치는 사람들이 상대가 없을 때 담벼락을 향해 공을 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처음에는 '라켓'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스쿼시는 여가를 즐기는 학생들에 의해 다양한 샷들이 경기에 응용되면서 점차 지금의 스쿼시로 발전됐다.

스쿼시는 가로 6.40m, 세로 9.75m, 높이 5.64m의 밀폐된 공간에서 이뤄진다. 라켓으로 공을 때리는 방식으로 경기가 진행된다는 점에서 테니스와 비슷하지만 사방에 위치한 벽을 통해 반동을 활용한 공격이 가능한 점은 다르다. 스쿼시를 할 때 사용되는 공의 무게는 24g이며 라켓의 최대 허용길이는 68.6cm다. 좁은 코트에서 선수 두 명이 벽을 이용해 경기하는 구기종목인 스쿼시는 체력과 순발력을 동시에 요구한다.

▲ 황중원(왼쪽)이 24일 인천 열우물스쿼시경기장에서 파키스탄의 칸 대니시 아트라스와 맞붙고 있다.

그러나 체력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 있다. 바로 두뇌 회전이다. 바닥 면의 쇼트 라인과 하프 코트 라인이 만나는 'T존'을 차지하기 위해 공을 보내는 방향과 거리를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T존은 상대가 친 공을 가장 쉽게 처리하고 득점할 수 있는 위치로 체력 소모를 줄이면서도 공격 주도권을 잡을 수 있다. 이 구역을 점하기 위해 선수들은 벽을 두 차례 이상 맞혀 공의 방향을 바꾸거나 회전을 거는 등 수싸움을 한다.

텔레비전 등 대중매체로 접했을 때 스쿼시는 그저 돈 많은 집안의 자제들이 즐기는 귀족 스포츠의 인상을 줬지만 실제는 달랐다. 선수들은 단 1점을 위해 코트에 몸을 던졌고 무릎이 까지는 등 부상에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부잣집 도련님의 점잖은 여가활동이 아닌 수컷냄새 나는 남자들의 운동이었다.

대표팀 황중원(26·대구시체육회)은 "한정된 공간에서 두 선수가 경기를 하다 보니 중요한 순간에서는 몸싸움이 심심찮게 일어난다"며 "경기에 몰입하다 보면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기 때문에 격렬한 몸싸움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황중원은 이날 파키스탄의 칸 대니시 아트라스를 맞아 격렬한 몸싸움 펼치며 자리 사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

▲ 구륜회 감독은 "국가대표 선수들이 스쿼시를 훈련할 장소가 없어 민간 클럽을 전전하고 있다"며 안타까워 했다.

◆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스쿼시는 아직까지 길고도 캄캄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중이다.

축구나 농구, 야구 등 인기 종목들은 유소년 시스템이 탄탄해 어렸을 때부터 운동을 접할 수 있지만 스쿼시에는 유소년 팀이 없다. 소년체전 종목에 스쿼시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스쿼시 선수들은 초등학교부터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기보다 생활체육을 즐기는 부모님을 따라 재미로 시작했다가 흥미를 느껴 스쿼시에 올인한 경우가 많다.

구륜회 감독은 "소년체전에서 스쿼시가 정식종목이 된다면 초등학교, 중학교 선수들을 집중적으로 육성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스쿼시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아닌데다 시설이 부족해 소년체전 정식 종목에 들어갈 수 없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현재 한국에는 시도 평균 스쿼시 전용 체육관이 한 곳도 되지 않는다. 훈련시설이 열악하기 때문에 심지어 국가대표 선수조차도 사설클럽에 가서 훈련을 해야 한다. 그러나 동호인들이 운동을 하는 시간대를 피해서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하루에 5~6시간씩 꾸준히 감각을 익혀야 하는 선수들에게는 악조건일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말레이시아와 홍콩 등 스쿼시 강국들은 거리마다 스쿼시장이 하나씩 있을 정도로 인프라가 발달돼 있다. 스쿼시 프로리그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어 외국선수들이 아시아로 넘어와 직접 배울 정도다. 제반시설이 잘 갖춰지니 실력이 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구 감독은 스쿼시 경기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것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구 감독은 "인천 열우물스쿼시경기장도 아시안게임 때문에 생긴 시설인데 대회가 끝나면 다 허물고 골프장으로 활용한다고 한다. 그만큼 스쿼시 경기장에 대한 의식이 없다"고 아쉬워했다.

구륜회 감독과 강호석 코치는 스쿼시가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된다면 기업에서 지원이 자연스럽게 늘어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보다 더 선행돼야할 것이 있다고 봤다.

▲ 파키스탄과 단체전 A조 2차전이 열린 인천 열우물스쿼시경기장에는 평일 오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동호인들과 팬들이 자리잡고 선수들을 응원했다.

강호석 코치는 "우리나라는 아기가 태어나면 바로 뛰길 원하는 것 같다"며 "운동을 시작하는 선수에게 금메달을 따라는 등의 무리한 결과를 요구한다. 나는 선수들에게 '우리는 과정에 충실해야 하는 팀', '만들어 가는 팀'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강 코치는 "스쿼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수준이 올라가지 않은 종목들에 대해 묵묵히 격려하며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성적 지상주의가 선수와 스포츠 모두 망친다는 것이다.

◆ 아무리 열악해도 열정 하나만으로 뛴다

전용경기장도 없고 경비가 부족해 전지훈련을 갈 수도 없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열정 하나만으로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비록 현실은 녹록지 않지만 대표팀 선수들에게 스쿼시는 단순한 운동이 아니다. 그들의 삶이다.

이승준(28·인천시체육회)은 "어머니가 생활체육으로 스쿼시를 하셨는데 나도 운동하는 것을 좋아해서 계속 따라다녔다"며 "스쿼시 센터를 다니는 어머니에게 한 번만 쳐보겠다고 부탁했던 것이 시작이었다. 직접 해보니까 중독성이 매우 심했다. 정말 재미있고 승부욕도 생겼다"고 웃어보였다.

이세현(24·경상북도체육회)은 "중3 겨울에 스쿼시를 시작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해 스쿼시를 했는데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며 "인문계 고등학교를 가면 야간 자율학습 때문에 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수생활을 위해 일부러 실업계 고등학교로 진학하겠다고 부모님께 말씀 드렸었다. 그정도로 스쿼시가 하고 싶었다. 다행히 기존 인문계 고등학교에 스쿼시팀이 생겨 그 학교로 진학하게 됐다"고 말했다.

이어 이세현은 "스쿼시를 하면서 가장 희열을 느낄 때는 내 공격에 상대방이 내 공격을 받지 못하고 속을 때"라며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샷이나 정확하게 들어간 것을 상대방이 받지 못했을 때 기분이 좋다"고 덧붙였다.

▲ 강호석 코치는 선수들에 대한 때이른 평가가 선수의 삶을 망칠 수도 있는 길임을 강조했다.

황중원이 처음으로 스쿼시를 하게 된 계기는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서였다. 일본 스쿼시연맹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스쿼시의 분당 칼로리 소모량은 15㎉로 수영(13㎉)과 축구(10㎉), 테니스(8㎉) 등 웬만한 스포츠 종목을 앞선다. 피트니스 센터에서 살을 빼려는 사람들이 땀을 흘려가며 스쿼시를 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황중원은 "살을 빼려 시작한 스쿼시가 직업이 될 줄 몰랐다"며 "스쿼시의 매력은 내가 공격하는 쪽으로 상대방이 움직이는 게 신기하다는 것"이라고 고백했다.

변변찮은 스쿼시 경기장 하나 없고 협회 외에 들어오는 후원은 전무하지만 한국 남자 스쿼시 대표팀은 큰 꿈을 꾸고 있다.

구륜회 감독은 "스쿼시가 2020년 도쿄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들어가게 된다면 충분히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남자부에서 아직 아시안게임 메달이 없는데 4년 뒤에는 꼭 메달을 딸 수 있도록 지금부터 열심히 달리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syl015@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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