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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쿼시의 AG 대이변, 미끌한 벽면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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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쿼시의 AG 대이변, 미끌한 벽면에 달렸다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5.28 09: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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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코트 이점 교묘히 활용, 동메달 2개 노리는 스쿼시대표팀

[300자 Tip!] 스쿼시는 생활체육 종목으로 확실하게 자리를 잡은 종목이다. 다이어트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특히 여성들에게 각광을 받는 종목이다. 하지만 엘리트 종목 스쿼시는 대중들에게 많이 낯설다. 스쿼시가 아시안게임 정식 종목이라는 것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한국 스쿼시대표팀은 안방에서 열리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이변의 주인공이 되기 위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강훈련을 소화하고 있다.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인천 부평구의 열우물 경기장을 찾았다. 이곳에서는 오는 9월 인천 아시아게임 테니스와 스쿼시가 열릴 예정이다.

▲ 스쿼시는 순발력과 두뇌회전을 요구하는 스포츠다. 남자대표팀의 이년호(앞)와 황중원이 훈련에 땀 흘리고 있다.

‘생활체육 스쿼시’가 대중화에 성공한 것과는 달리 ‘엘리트 스쿼시’는 아직 스포츠팬들에게 생소하다. 스쿼시는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때부터 정식 종목이었다. 남녀에 걸쳐 단식, 복식 등 총 4개의 메달이 걸려 있다.

현재 대표팀은 인천과 산본으로 나뉘어 있다. 인천에서는 구륜회(41) 감독이 6명을, 산본에서는 강호석(39) 코치가 4명을 지도한다. 1주일에 2번씩 모두 모여 경기를 갖는다. 새로 생긴 경기장, 아시안게임이 열릴 홈구장을 놔두고 왜 따로 훈련을 할까.

비인기 종목이 그렇듯 비용의 문제가 있다. 선수들 모두가 합숙하기에는 무리가 있어 선수들의 거주지를 고려해 훈련 장소를 둘로 나눴다. 다음달 열리는 아시아선수권대회를 마치고 나면 모두 모여 본격적인 담금질에 들어갈 예정이다.

어려운 환경이지만 구륜회 감독은 홈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는 전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치밀한 전략을 세웠다.

◆ ‘홈 이점 극대화', 구륜회 감독의 치밀한 구상

이번 아시안게임을 준비하는 스쿼시대표팀의 현실적인 목표는 동메달이다. 구륜회 감독은 “남자부는 메달권은 힘들다. 여자부에서 동메달 2개를 바라보고 있다”고 밝혔다.

아시아권에서 말레이시아와 홍콩을 이기기는 힘들다. 한국은 동메달을 두고 인도, 중국, 일본과 치열하게 다툴 것으로 보인다.

▲ 구륜회 감독은 "우리가 경기를 치를 곳은 잘 하는 선수들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코트"라며 홈의 이점을 최대한 활용할 뜻을 밝혔다.

스쿼시가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에서 정식 종목이 된 뒤 한국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여자 단식에서 이해경이 동메달을,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여자 복식에서 동메달을 땄다. 구 감독은 “일단 4강만 올라가면 동메달이 확보되는 종목이다. 여자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메달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하는데는 ‘홈 어드밴티지’가 크게 작용한다. 구 감독은 열우물 스쿼시 코트에 딱 맞는 전략 전술을 세우고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 구 감독이 밝히는 대비책이다.

“외국 선수들은 기술이 좋아서 5~7번 안에 랠리를 끝내곤 합니다. 비용을 대폭 절감해 만든 우리 코트는 벽면이 많이 미끄럽습니다. 스핀이 많이 먹히지 않고 공이 밀립니다.”

경기장의 바닥과 벽면을 만져봤다. 정말로 미끌미끌하다. 구 감독은 “기술이 잘 먹히지 않는 코트 특성상 15~20번에 걸쳐 랠리가 이어질 것이다. 심리적으로 쫓기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며 “실력이 좋은 사람이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 감독은 랠리가 길어질 것에 대비해 지구력 향상에 중점을 두고 있다. 웨이트트레이닝과 산악 훈련을 실시하며 체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 한국 대표팀이 아시안게임 경기를 치를 코트는 바닥과 벽면이 미끄러워 기술이 잘 먹히지 않는다.

열우물 경기장에 좋은 코트가 없는 것은 아니다. 구 감독이 언급한 코트 8개의 비용을 합한 것만큼의 단독 코트도 있다. 그러나 대표팀은 이곳에서 경기를 하지 않을 방침이다. 모든 훈련은 질이 다소 떨어지는 코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홈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 스쿼시의 미래 ‘청신호’, 아시안게임이 신호탄

한국 스쿼시가 갈 길은 아직 멀다. 남자의 경우 세계랭킹 27~28위권이고 여자의 경우 23~24위권에 머물러 있다. 예산 문제로 국제 대회에도 많이 나가지 못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나간 세계선수권대회가 2012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 감독은 “스쿼시의 미래는 괜찮다”고 말한다. 이유가 무엇일까.

구 감독은 자신을 ‘스쿼시 1.5세대’라고 칭했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스쿼시는 테니스나 배드민턴 등 라켓운동을 하던 선수들이 전향해서 뛰어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구 감독 역시 테니스 코치를 했던 경력이 있다.

그러나 최근 선수들의 스쿼시 입문 과정은 다르다. 그들은 첫 시작부터 스쿼시 라켓을 쥔다. 고생하며 오늘날의 한국 스쿼시를 만든 주인공들의 체계적인 지도를 받으며 성장하고 있다. 구 감독이 한국 스쿼시의 밝은 미래를 자신하는 이유다.

탄탄한 생활체육 기반도 도움이 된다. 스쿼시는 다이어트를 하는데 있어 최적의 종목이다. 스쿼시를 40분만 쳐도 2시간 동안 빠르게 걷기를 한 정도의 칼로리(600kcal)가 소모된다. 선수들이 은퇴 이후 강사, 지도자 등으로 자리잡을 수 있는 확률이 높다.

미디어 노출 환경 개선 또한 스쿼시의 앞날에 큰 도움이 될 전망이다.

▲ 열우물 스쿼시장의 단독 코트. 국내에서 처음으로 TV 중계가 가능한 스쿼시 코트다.

구 감독은 “그동안 스쿼시는 미디어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TV 중계가 가능한 코트가 없는데다 사진 기자들이 선수들의 정면을 찍을 수 있는 공간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지어진 열우물 스쿼시장은 사방이 뚫린 코트가 있다. TV 중계는 물론이고 사진 기자들의 취재 편의도 고려해 만들어졌다. 스포츠방송사들을 통해 자연스레 노출도 늘어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게 됐다.

◆ 스쿼시만의 짜릿함, 두뇌싸움과 스트레스 해소

감독과 선수들은 종목 자랑에 열변을 쏟아냈다.

구 감독은 “포브스가 발표한 가장 건강한 종목이 스쿼시”라며 “단위시간당 운동량이 많으면서도 부상 위험도 적은 운동”이라며 스쿼시가 가진 장점을 역설했다.

또한 “네트를 두고 마주보고 하는 것이 아니다. 두 눈으로 상대 움직임을 보는게 아니라 인지 능력으로 상대방을 느껴야한다”고 다른 라켓 종목과의 차이점을 언급하며 “볼이 지나가도 살려낼 여지가 있는 점도 매력이다. 끊임없는 두뇌 싸움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 여자대표팀의 이지현(오른쪽)과 양연수는 아시안게임 동메달을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대표팀 막내 이지현(21)은 “상대방을 뛰게 하면서 내가 포인트를 얻었을 때 짜릿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스쿼시라는 단어에는 ‘구석에 밀어넣는다’는 뜻이 있다. 이지현은 재치있는 플레이로 상대를 따돌렸을 때 느끼는 쾌감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황중원(27)은 “혼자 연습이 가능하다. 코치님이 없어도 얼마든지 실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상대방이 없으면 연습할 수 없는 다른 운동과 달리 벽을 활용해 본인이 원할 때 운동할 수 있다는 장점을 들었다.

그는 공을 때릴 때마다 나는 파열음에도 큰 매력을 느꼈다. 황중원은 “공을 때릴 때마다 크게 나는 소리를 들으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면서 “벽면을 활용해 머리를 써가며 하는 운동이라는 점도 큰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 안방인데 한 건 해야죠!

안방에서 열리는 큰 대회를 앞둔 선수들은 저마다 각오가 대단했다. 남자부 선수들은 대이변을 꿈꾸고 있었고 여자부 선수들은 감독의 바람에 부응하기 위한 출사표를 던졌다.

▲ 남자대표팀 맏형 이승준은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16강 탈락한 뒤 절치부심,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8강을 목표로 한다.

△ 이승준(28) – “개인적으로 두 번째 아시안게임이다. 2010년 광저우 대회때 16강에서 쿠웨이트 선수에게 패한 아쉬운 기억이 있다. 일단 그 때보다 높은 성적인 8강을 노린다. 내 고향에서 하는 경기라 기대가 크다. 적지 않은 나이라 몸관리도 특별히 신경쓰고 있다.”

△ 황중원 – “힘들지만 가슴에 달린 태극기를 보면 힘이 난다. 감독님이 지시하는 것에 따라서 독기 품고 열심히 하고 있다. 꼭 이번 대회가 아니더라도 2019 하노이 아시안게임을 바라봐서라도 땀을 흘리겠다.”

△ 황연수(23) – “인천에서 아시안게임을 한다는 것이 부담이 되는건 사실이다. 홈에서 열리니만큼 기대에 부응해야한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다.”

△ 이지현 – “막내라 그런지 빨리 아시안게임을 했으면 좋겠다. 언니들을 잘 따라가겠다. 스쿼시대표팀은 다른 종목 어느 팀보다도 분위기가 좋다고 자부한다.”

■ 스쿼시 대표팀은

▲ 한국 스쿼시대표팀 선수단. 왼쪽부터 구륜회 감독, 이승준, 이지현, 양연수, 이년호, 황중원. 나머지 대표선수들은 산본에서 따로 훈련하고 있다.

현재 인천과 군포 산본으로 나뉘어 훈련하고 있다. 구륜회 감독, 강호석 코치를 비롯해 남자 이년호 이승준 황중원 유재진 이세현, 여자 박은옥 김아현 양연수 송선미 이지현 등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 스쿼시는

19세기 초 영국의 교도소에서 모범수들이 운동 삼아 벽에 공과 유사한 것을 치던 것에서 유래됐다.스쿼시는 '라켓으로 볼을 치다, 라켓으로 공을 구석에 몰아넣다'라는 뜻으로 여가를 즐기는 학생들에 의해 다양한 샷들이 경기에 응용되며 오늘날의 방식으로 발전됐다. 이집트와 영국, 스페인 등이 세계 스쿼시를 주름잡고 있으며 아시아에서는 말레이시아, 홍콩, 인도 등이 강국이다.

사방이 벽으로 되어 있는 코트에서 서로 공을 벽에 쳐서 주고받는다. 국제대회 기준으로 단식 경기는 11점 5게임 3선승제, 복식은 11점 3게임 2선승제다. 단식 경기장의 규격은 9.75x6.4m, 복식 경기장은 9.75x7.62m이다. 라켓은 배드민턴 라켓과 거의 같은 크기다. 공의 지름은 4.45cm, 무게 28.35g이다.

[취재 후기] 스포츠를 보는 재미 중 하나는 홈팀이 어떻게 이점을 활용해 대비하느냐는 것이다. 세계축구의 명장 주제 무리뉴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 감독 시절 바르셀로나를 꺾기 위해 잔디를 방치하는 전략으로 재미를 봤다. 구륜회 감독의 맞춤형 전략이 대이변을 연출해 낼 수 있을지 지켜보면 흥미로울 것이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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