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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사관학교' 송도고 출신은 왜 유달리 창의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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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드사관학교' 송도고 출신은 왜 유달리 창의적일까?
  • 민기홍 기자
  • 승인 2014.05.23 10: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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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구팀 탐방] 고 전규삼 할아버지 지도철학 계승하는 지도자 덕

[300자 Tip!] 스타플레이어가 끊임없이 배출되는 농구명문이 있다. 그런데 이 학교는 유달리 가드 포지션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래서 이 학교는 ‘가드사관학교’로 불린다. 농구를 조금만 알아도 한 번쯤은 이름을 들어본 ‘여우 가드’들이 즐비한 그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지난해 가을부터 전국대회를 제패하고 있는 송도고를 찾았다. 훈련 분위기만 봐도 답을 알 수 있었다.

[인천=스포츠Q 글 민기홍·사진 이상민 기자] 송도고는 ‘가드사관학교’로 불린다. 이충희(전 동부 감독), 강동희(전 동부 감독), 신기성(하나외환 코치), 김승현(은퇴)에 이어 현재 프로농구 최고 스타 김선형(SK)에 이르기까지.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최고의 선수들이 끊임없이 배출됐다.

▲ 송도고 훈련은 개인기량을 갈고 닦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나 송도고는 화려한 명성과는 다르게 우승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름값 있는 스타들은 많이 나왔지만 최근 성적은 늘 4강권에 머물렀다. 지난해 추계대회에서 수원 삼일상고를 꺾고 우승한 것이 신기성 코치가 뛰던 1994년 이후 20년만의 우승이었다.

우승 맛을 본 그들은 올 첫 대회에서 우승컵을 들며 기세를 이어갔다. 송도고는 지난 2월 상주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4 한국농구연맹(KBL)총재배 춘계대회 결승에서 용산고를 85-84로 꺾고 우승했다. 1964년 이 대회 출범 이후 처음으로 들어올린 트로피였다.

◆ 우승비결? “슛이 잘 들어갔어" 

“슛이 잘 들어가더라고요. 하하하.”

우승 비결을 물었더니 껄껄 웃으며 이렇게 답한다. 박재수(55) 감독은 송도중-송도고를 나왔다. 고교 2학년 때 1년 후배 이충희와 함께 운동을 했다. 상무-건국대를 나온 뒤 과감히 농구를 접고 체육교사의 길을 택했다. 농구를 담당할 부장 자리가 공석이었고 아직까지 체육 수업을 하면서 감독직을 병행하고 있다. 선수 생활 미련은 전혀 없었단다.

“스코어 벌어놓은거 다 까먹었는걸요. 뭐.”

한 점차로 이긴 것과는 달리 송도고의 일방적인 경기였다. 송도고는 경기 한 때 20점 넘게 용산고를 몰아붙였다. 하지만 4쿼터 들어 용산고 센터 이윤수(205cm)에게 연속 득점을 허용하며 신승을 거뒀다.

▲ 박재수 감독은 "가드들이 알아서 하게 맡긴다"라며 자신의 지도 스타일을 설명했다.

지난달 3일 막을 내린 협회장기 결승에서 두 팀은 또 만났다. 이번에는 용산고가 승리했다. 송도고는 이윤수(38점 20리바운드)를 막지 못했다. 골밑을 완벽하게 장악한 용산고는 송도고를 84-69로 완파하고 대회 3연패에 성공했다.

“근데 다음 대회는 또 해볼만해요.”

박재수 감독은 자신감을 보였다. 다시 용산고와 붙으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 협회장기 결승 전 패배에 대해서는 “3학년 심민철이 발목을 다치고 센터 겸 포워드 박준영이 5반칙 퇴장을 당한 것이 컸다”고 설명했다.

박 감독에게 자신만의 지도 철학과 중점을 두는 방침을 듣고 싶었다. 그는 “기초, 기술, 개인기에 중점두고. 음... 나는 가드들 자유롭게 하게 맡긴다. 속공에 중점을 둔다"며 "요새는 하는 것도 없다. 우리 최호 코치가 다 하고 나는 학생들 수업도 나가야 된다"고 말했다.

지도 철학을 몇 마디 밝히는 것 같더니 말을 돌려 최호(42) 코치가 고생이 많다며 모조리 공을 돌린다. 그러면서 “우승 좀 못 하면 어때. 꼭 우승만 해야 하나”하며 또 웃는다. 성적과 관련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느냐는 질문에 “물론 스트레스 받지만 뭐라 한 적 없다”는 쿨한 답변이 돌아온다.

◆ 왜 송도고 출신들은 창의적일까

송도고 출신 가드들의 플레이는 어찌나 여우같고 화려한지 모른다. 대표적인 세 포인트가드 강동희, 신기성, 김승현만 떠올려봐도 그들이 얼마나 창의적인 패스들로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었는지 알 수 있다.

박재수 감독과 이야기를 끝낸 후 훈련을 지켜봤다. 박 감독의 말처럼 가드들은 마음껏 레그스루와 크로스오버를 하고 있었다. 고등학생 치고는 다소 건방져(?) 보일 수 있는 플로터도 맘껏 시도했다.

▲ 최호 코치는 "송도고 특유의 부드러움이 프로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이유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 코치는 원주 나래와 SK 빅스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최 코치 역시 송도중-송도고 출신이다.

그는 “송도고는 예로부터 기계적인 훈련이 없었다”며 ‘방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이어 “전술이나 경기를 위한 운동보다는 개인 기량에 중점을 두고 지도한다”며 “분위기가 억압되지 않고 디펜스 시에도 지역방어에 신경을 덜 쓰는 것이 우리의 컬러”라고 특징을 꼽았다.

최 코치는 “우리 학교는 이상하리만치 전통적으로 신장이 작았다”며 “빠른 농구, 한 발 더 뛰는 농구를 추구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송도고의 최장신은 3학년 박준영(195cm). 용산고 간판 이윤수보다 10cm가 작으니 협력 수비와 속공에 중점을 둘 수밖에 없다.

모교에서 애정을 갖고 성심성의껏 지도하고 있는 그는 “어떻게 보면 군기 빠진 애들 같기도 할 것”이라고 웃으며 “송도고 특유의 부드러움이 창의로운 플레이를 양산하고 프로선수를 많이 배출하는 것 아니겠나”라고 비결을 밝혔다.

◆ 지금의 송도고가 있기까지, 고 전규삼 '할아버지'

송도고의 이런 팀컬러는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할아버지’ 한 분을 빼고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전규삼. 그는 1961년부터 1997년까지 송도중·고에서 제자들을 가르쳤다. 2003년 5월 8일, 그가 미수(米壽)에 세상을 떠났을 때 한국 농구의 수많은 별들이 일제히 조의를 표했다.

▲ 고 전규삼 할아버지의 영향을 이어받은 송도고는 현재까지도 꾸준히 창의적인 플레이를 하는 스타들을 배출하고 있다.

송도고의 자유분방한 훈련 환경은 모두 고인의 지도 철학에서 나왔다. 기본기를 유달리 강조했다. 이기는 것은 다음 문제였다. 체벌 구타도 전혀 없었다. 송도고 출신들은 기초가 탄탄했고 기가 죽지 않았다. ‘감독님’이 아닌 ‘할아버지’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성향을 파악하기 위해 앉혀놓고 고스톱을 쳤다.

박 감독은 “그 시대에 운동했는데 욕 한 번 들은 적이 없다. 최 코치도 할아버지한테 배웠다. 우린 그렇게 배웠으니 그렇게 가르친다”고 말했다. 최 코치 역시 “지도자란 생각이 안 드는 분이었다. 여러 동작들을 손수 시범으로 보여주셨다. 그 분은 승부에 연연하지 않았다”며 스승을 추억했다.

송도고 농구는 항상 오후 2시 이후에 시작한다. 학교 수업을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할아버지의 가르침 때문이었다. 그는 농구를 못해도 매를 들지 않았지만 학생으로서 최소한의 성적도 나오지 않을 때는 엄격했다.

2005년 프로농구 최우수선수(MVP) 신기성은 수상 후 소감에서 “고 전규삼 할아버지께 감사드린다”며 “농구뿐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알려주신 분이다. 즐기는 농구를 가르쳐 주셨다”고 밝혔다. 얼마 전 은퇴를 선언한 김승현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은퇴 후 고 전규삼 할아버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고 말했다.

▲ 가드 계보를 잇겠다는 4총사. 왼쪽부터 신민철, 장태빈, 편창범, 박세원(앞쪽).

송도고 출신 현역 선수인 김선형과 정재홍(전자랜드), 안재욱(동부)은 할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은 적은 없지만 누가 봐도 송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끔 플레이한다. 지금도 그의 철학은 고스란히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 우리가 스타 계보를 잇겠습니다!

가드사관학교에는 스타 도약을 노리는 다음 주자들이 어김없이 대기하고 있다. 신민철, 장태빈, 편창범, 정의엽이 그들이다. 가드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우리도 주목해달라고 외치는 포워드 겸 센터 박준영과 박세원도 있다.

■ 가드 4인방, "내가 다음 스타"

△ 신민철(18) :  “속공 전개 능력과 스피드가 내 장점이다. 송도 출신 가드 선배들 동영상을 보며 개인 연습도 많이 하고 있다. 약점인 슛을 보완해 남은 해 우승을 더 하고 싶다.”

△ 장태빈(18) :  “1·2학년 때 전국체전에 나가지 못했다. 지역에서 제물포고를 이기고 전국체전 가서 한을 풀어보고 싶다. 개인적으로는 18세 이하 청소년 대회에 뽑히고 싶다.”

△ 편창범(18) : “눈에 보이는 성적보다도 내 개인적으로 만족해본 적이 없다. 내 기량을 100% 발휘해보고 싶다. 우리 학교 출신 중에 우수한 가드 선배들이 많다는 점은 크게 동기부여가 된다.”

△ 정의엽(17) : “자유로운 분위기인 송도고는 나와 아주 적합하다. 스틸, 스피드, 패스가 내 장점이다. 올해 우승하고 내년에는 개인 타이틀도 입상하겠다.”

▲ 박세원(왼쪽)과 박준영은 "포워드인 우리도 스타가 되겠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 여기 포워드도 있어요!

△ 박준영(18) : “송도고에 포워드 스타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 다른 대회 우승도 좋지만 졸업반인 올해 전국체전에서 꼭 우승해보고 싶다.”

△ 박세원(17) : “가드 위주의 학교라 해도 포워드·센터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열심히 해서 송도고 포워드 스타로 거듭나겠다.”

■ 송도고 농구부는

1928년 교내농구대회를 계기로 1931년 창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유희형, 김동광, 이충희, 정덕화, 서동철, 강동희, 홍사붕, 신기성 김승현, 김현중, 안재욱, 김선형 등 숱한 스타플레이어들을 배출해 왔다.

▲ 송도고 선수단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들은 "전국체전에서 꼭 우승하고 싶다"고 한 목소리로 말했다.

박재수 감독, 최호 코치가 이끄는 송도고 농구부는 3학년 김호진 박준영 신민철 장태빈 편창범, 2학년 김무성 박세원 신형섭 원종원 정의엽, 1학년 김수빈 김준환 양재혁 정부영 최현곤 등 15명으로 이뤄져 있다.

■ 고교농구 대회는

2월 KBL 총재배 춘계대회, 3월 협회장기 전국대회, 4월 연맹회장기 전국대회, 6월 쌍용기 전국대회, 7월 전국남녀종별선수권대회, 8월 대통령기 전국대회, 9월 추계 전국연맹전, 10월 전국체전 고등부 등 8개 대회가 있다. 현재 남고부는 30개 팀이 등록돼 있다.

[취재 후기] ‘사람이 먼저 되라’. 송도고 정문을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큼지막한 비석에 쓰인 글귀다. 고 전규삼 옹은 이 교훈을 토대로 일찌감치 미래를 내다본 듯하다. 고인의 지도를 받은 송도인들은 뭐가 달라도 달랐다. 인성과 기본기를 끊임없이 강조한 지도 속에 선수들의 창의력이 십분 발휘되고 있었다. 앞으로 정반대의 색깔을 내는 송도고-용산고 간의 패권 대결을 지켜보는 재미가 배가될 것 같다.

sportsfactory@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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