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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리뷰] '아수라' 넘치는 수컷들의 피와 액션, 김성수 감독에게 기대한 것이 바로 이런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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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Q리뷰] '아수라' 넘치는 수컷들의 피와 액션, 김성수 감독에게 기대한 것이 바로 이런 영화였다
  • 원호성 기자
  • 승인 2016.09.28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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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원호성 기자] 강력계 형사 한도경(정우성 분)은 이권과 성공을 위해서라면 살인교사도 마다하지 않는 악덕시장 박성배(황정민 분)의 하수인 노릇을 하며 돈을 받으며 살아가다가, 아예 형사를 그만두고 박성배의 밑으로 옮겨가려고 한다. 그러나 박성배의 뒷조사를 하던 독종 검사 김차인(곽도원 분)과 검찰수사관 도창학(정만식 분)의 수사망에 한도경이 걸려들게 됐고, 한도경은 자신의 형사 후배인 문선모(주지훈 분)를 자기를 대신해 박성배 밑으로 보내지만, 이 선택은 한도경이 자신의 목을 죄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진다.

28일 개봉하는 영화 '아수라'를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1990년대 한국영화계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감독이었다. 충무로에서 조연출로 뛰어난 실력을 과시한 김성수 감독은 이후 이병헌 주연의 액션 스릴러 영화 '런어웨이'로 데뷔했고, 허영만 화백의 만화를 원작으로 정우성과 고소영이 출연한 '비트'를 연출하며 반항하는 청춘의 아이콘 '정우성'을 만들어냈다.

영화 '아수라'

'비트'와 '태양은 없다'에서 보여주듯 김성수 감독의 장기는 그간의 한국영화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던 감각적인 촬영과 편집, 그리고 액션연출이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김성수 감독의 행보는 분명 아쉬운 감이 있었다. '무사'는 김성수 감독 특유의 현란하면서도 스타일리쉬한 촬영과 편집이 없다는 것이 아쉬웠고, '감기'는 대작영화이긴 했지만 이야기의 개연성이나 캐릭터의 완성도에서 뚜렷한 약점을 드러냈다. 김성수 감독이 처음으로 액션을 배제하고 로맨틱코미디를 내세운 이나영과 장혁 주연의 '영어완전정복'도 어정쩡한 평가를 받았다.

그런 김성수 감독이 이번에는 '아수라'를 통해 본인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이야기와 형식의 영화로 돌아왔다. '아수라'는 정우성이 연기한 부패형사 '한도경'을 비롯해 황정민이 연기한 악덕시장 '박성배', 그리고 정의의 편이라기보다는 그저 박성배에 대한 증오와 출세에 대한 욕구로 강압적인 수사를 진행하는 검사 '김차인'(곽도원 분)과 수사관 도창학(정만식 분), 그나마 순수했지만 권력의 맛을 본 뒤 가장 극적으로 변화하는 문선모(주지훈 분)까지 다섯 명의 중심 등장인물이 모두 인간말종의 악당인 '피카레스크' 형식을 취하고 있다.

김성수 감독은 선한 주인공 없이 주인공 모두가 악당인 '피카레스크' 형식의 영화 '아수라'의 특징을 그의 장기를 이용해 훌륭하게 살려낸다. '아수라'는 132분이라는 상영시간 동안 쉬지 않고 악인과 악인이 충돌하며 강한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평소 김성수 감독은 이야기가 지나치게 강한 나머지 완급조절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아수라'는 박성배가 자신에게는 이복동생이 되는 한도경의 아내를 병문안오는 장면처럼 대결을 강한 구도로만 몰고가지 않고 강약의 리듬을 다르게 가며, 사이사이 캐릭터들의 성격이 만들어내는 의외의 웃음포인트로 훌륭히 완급조절을 해낸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아수라'를 돋보이게 하는 것은 역시 강렬하다못해 눈을 질끈 감게되는 거친 표현의 수위다. 한도경에게 박성배에게서 받은 돈을 내놓으라고 행패를 부리다 추락사하는 형사반장 황인기(윤제문 분)의 처참한 죽음부터 시작해 '아수라'는 그냥 총 한 발 맞고 깔끔하게 죽는 것이 오히려 축복처럼 느껴질 정도로 강렬한 하드고어(Hard Gore) 장면을 내내 보여준다. 

영화 '아수라'

특히 마지막에 박성배의 수하였던 은충호(김종수 분)의 장례식장 장면은 영화 제목이 왜 '아수라'인지를 여실히 통감할 수 있는 장면. 총칼은 물론이고, 동남아시아 출신의 외국인 킬러들이 마체테(Machete)를 들고 와 피아 구분없이 '썰어대는' 모습은 어지간히 비위가 강하지 않으면 제 정신으로 보기 힘든 잔인한 장면이다. 이에 비하면 '내부자들'에서 조상무(조우진 분)가 안상구(이병헌 분)의 손목을 톱으로 자르던 장면은 우스워보일 정도.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와 능히 어깨를 겨룰 만한 수위의 참혹한 광경을 김성수 감독은 숨도 쉬지 않고 몰아붙인다.

잔혹한 폭력의 중심에 위치하는 인간군상들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악독한 악당들 사이에서 갈등하는 소악당으로 등장하는 정우성은 입에 'X발'을 달고 다니며 잘 생긴 얼굴이 처참하게 망가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황정민은 '달콤한 인생'에서 "사는 건 고통이야, 몰랐어?'를 외치며 이병헌을 조롱하던 '백사장'을 능가하는 악역 캐릭터로 충격을 선사하고, 검사 '김차인'을 연기한 곽도원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어디까지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놀라운 변모를 통해 보여준다. '문선모'를 연기한 주지훈 역시 순수한 형사 청년이 권력의 단 맛을 보고 변질해가는 모습으로 정우성과 대척점을 세우며 개성 강한 선배 연기자들 틈바구니에서 훌륭히 자신의 위치를 챙겨낸다.

잔혹한 폭력이나 유혈이 낭자한 장면으로 인해 특히 여성관객에게는 상당한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아수라'는 김성수 감독에게 관객들이 기대했던 그런 강렬함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영화다. 김성수 감독은 '아수라'에서 드디어 1990년대 '비트'와 '태양은 없다'를 만들던 전성기 시절의 김성수 감독으로 돌아간다. 타협이 없는 액션과 현란하고 감각적인 편집, 그리고 거침없이 폭주하는 이야기까지. '아수라'는 최근 몇 년간 나온 한국영화, 그것도 주류 상업영화 중에서 아마도 가장 많은 피를 쏟은, 그리고 가장 거칠고 정제되지 않은 날 것의 영화로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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