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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아픈만큼 강해졌다, 서울시청 사제 임오경-권한나가 부른 '챔피언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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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아픈만큼 강해졌다, 서울시청 사제 임오경-권한나가 부른 '챔피언의 노래'
  • 안호근 기자
  • 승인 2016.10.03 20: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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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경 감독 "여자라는 게 정말 자랑스러워", 권한나 "부진했는데 우승 확정짓자 눈물이 났다"

[올림픽공원=스포츠Q(큐) 글 안호근·사진 최대성 기자] “핸드볼에 남자감독들 밖에 없어 돌연변이가 태어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임오경 감독).” 

“어제 너무 못해서 그게 마음에 걸렸는데 우승이 확정되자 눈물이 났다(권한나).”

스타플레이어 출신 임오경(45) 감독과 여자 핸드볼 최강 공격수 권한나(27)가 서울시청에 리그 첫 챔피언 트로피를 안긴 후 그간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임오경 감독은 여자 사령탑이라는 외로운 자리에 대해, 권한나는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과 챔피언결정 2차전에서 부진해 괴로워했지만 아픔은 성공의 원동력이 됐다.

서울시청은 3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핸드볼경기장에서 벌어진 2016 SK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 챔피언결정전(3전 2선승제) 3차전에서 삼척시청을 23-22로 제압, 창단 첫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 ‘2인자 설움’ 떨쳤다, 여자라서 행복한 임오경 감독

핸드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영화 ‘우생순(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 열악한 환경을 딛고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감동의 은메달 신화를 이룬 여자 핸드볼 대표팀에 대해 조명한 영화다.

임오경은 우생순의 실제 주인공이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을 따냈고 세계선수권 최우수선수(MVP), 국제핸드볼연맹 MVP를 차지한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다. 한국은 물론 세계여자 핸드볼의 '레전드'라고 불릴 만하다.

일본 히로시마 이즈미에서 플레잉 감독으로 뛰기도 했던 임오경 감독은 한국에서 다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지만 하루하루가 외로움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2008년 서울시청의 지휘봉을 잡은 임오경은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적은 있지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늘 2인자였다. 남자 감독들 사이에서 홀로 여자 지도자로서 팀을 이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임오경은 “핸드볼에 남자 감독들밖에 없어서 돌연변이 하나가 태어난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며 “꿋꿋하게 버텨왔는데 (우승을 하게 돼) 내가 여자라는 게 정말 자랑스럽고 여자핸드볼, 서울시청이 있기에 오늘의 임오경이 있을 수 있었다. 우승을 가능케 해준 선수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감격을 감추지 못했다.

2014, 2015시즌에는 챔피언결정전에서 연달아 인천시청에 덜미를 잡히며 준우승에 머물러야 했다. 임 감독은 “3년째 챔피언 티셔츠를 제작했다. 그동안은 입지도 못했다”며 “그러면 안 되지만 마음이 너무 상해서 버렸다. (선수들) 앞에서는 말도 못하고 뒤에서 혼자 마음 고생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에게 올해는 꼭 입어보자고 말했다”며 “선수들끼리 서로 믿음을 가지고 잘해보라고 했는데 말처럼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덧붙였다.

우승까지 순탄치만은 않았다. 임 감독은 위기의 순간을 돌아봤다. 그는 “1라운드서 많이 졌고 무승부도 많았다. 다행히 2라운드부터는 상승세를 탔다”면서도 “올림픽 후 선수들이 쉬지 못하고 매 경기 강팀과 대결이었다. 전국체전 예선도 있어 다른 팀들이 2경기를 뛸 때 우리는 5경기를 치러야 했다”고 토로했다.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임 감독은 “그때 포기하지 않고 선수들이 최선을 다해줬다”며 “그 덕에 힘든 시간을 넘어설 수 있었다”고 전했다.

승장의 여유일까. 임 감독은 삼척시청에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그는 “삼척시청이 우승했어도 이상할 게 없을 만큼 훌륭한 실력을 보여줬다. 정말 수고했다고 말하고 싶다”며 “우승도전은 항상 했다. 내년도 우승에 도전하겠지만 모든 팀에 열린 기회이니 만큼 같이 우승 도전하자고 말하고 싶다”

“앞으로도 핸드볼 발전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다짐한 임 감독이지만 공석인 국가대표 사령탑에 대한 질문에는 손사래를 쳤다. 그는 “대표팀 감독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제의가 와도 맡을 생각이 없다”며 “뒤에서 좋은 선수들을 만들어 대표팀을 지원하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 올림픽-2차전 부진 만회, 득점머신 권하나의 비상

임오경 감독이 팀 운영의 계획을 책임졌다면 그의 구상을 실행에 옮기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준 주역은 권한나였다. 주장으로서 감독과 선수들의 가교역할을 하며 코트에서는 가장 믿음직한 공격수로 맹위를 떨쳤다.

핸드볼리그서 첫 우승을 차지한 권한나는 3차전이 서울시청의 승리로 끝나자 눈물을 쏟아냈다. 그는 “이 감정을 말로 표현을 다 못하겠다”며 “올해 목표였던 우승을 이뤄서 너무 기쁘다. 첫 리그 우승이라 너무 기뻐서 눈물부터 나왔다”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사실 기뻐서만 흘리는 눈물은 아니었다. 권한나는 이내 “어제 너무 못해서 마음에 걸렸는데 우승을 확정짓자 눈물이 났다”고 밝혔다.

지난 두 대회서 연속 준우승에 그쳤던 서울시청은 먼저 1승을 거두고도 전날 경기 막판 삼척 우선희에게 역전골을 허용, 통한의 패배를 당했다. 자칫 3연속 2인자에 머물 수 있는 상황.

권한나의 마음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171골을 쏘아 올리며 정규리그 득점왕에 등극했지만 정작 가장 중요한 챔프전서 부진했다. 1차전에서 팀은 승리했지만 권한나는 15개의 슛을 던져 5골을 넣는데 그쳤다. 2차전에서도 득점 성공률이 50%(6/12)에 그쳤고 경기 막판에는 퇴장을 당하며 팀의 역전패를 지켜봐야 했다.

이날은 달랐다. 초반부터 코트를 휘저었다. 전반 던진 8개의 슛 중 7개가 골망을 흔들었다. 신중했지만 정교했다. 이날 총 12득점 2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 우승을 이끈 그는 대회 MVP의 영예를 누렸다.

하지만 정작 기록보다는 팀의 우승만을 생각했다고 밝혔다. 권한나는 “경기에 너무 집중하다보니 12점을 넣은 것도 몰랐다”며 “2차전에 대해 반성을 했다. 내일이 없는 만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팀을 위해 뛰자고 다짐했다”고 반전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임오경 감독도 “어제는 에이스 권한나가 평정심을 못 찾았다”며 “경기 후 1대1 면담을 했고 눈물도 흘리면서 ‘괜찮으니까 못하면 옆에서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는데 시작부터 한나가 제 역할을 다 해줘서 경기가 잘 풀렸다”고 팀의 주포를 치켜세웠다.

우승의 원동력이 된 또 하나의 이유는 올림픽 무대가 안겨준 실망감이었다. 권한나는 리우 올림픽서도 득점 본능을 뽐냈다. 25골로 팀내 최다 득점을 기록했다. 하지만 여자대표팀은 1승 1무 3패로 8강 진출에 실패하며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권한나는 “리우 올림픽이 사람들에게 너무도 빨리 잊혀지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올림픽 때 못한 것을 대신해 리그서 우승하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임오경 감독에 대한 감사함도 표시했다. 그는 “(감독님이) 선수생활을 오래하셔서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주신다”며 “주장이지만 부담감을 갖지 말고 자신 있게 하라고 늘 말해주셨다”고 전했다.

간절히 바라던 리그 우승을 차지한 서울시청은 오는 7일부터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에도 출전해 기세를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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