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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유학자 송시열 집중 탐구...북벌의 진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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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유학자 송시열 집중 탐구...북벌의 진심은?
  • 이남경 기자
  • 승인 2018.07.08 21: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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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이남경 기자] 조선 후기 문신 겸 학자 송시열. 숙종실록보궐정오에서는 송시열에 대해 “굳세고 결단력이 있었으며 기력이 뛰어나 기개와 절조를 숭상하였다. (중략) 그는 큰 뜻을 내세웠으나 재주가 없었고 기질이 거칠며 학문이 허술하여 함양의 덕이 부족했다”는 평을 남겼다. 같은 서인들 사이에서도 상반된 평가를 받은 그는 어떤 인물일까?

8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 1TV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송시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에 3천 번 이상 이름이 거론되고, 4명의 임금을 모셨던 강직한 유학자다. 효종의 든든한 정치 파트너였던 송시열의 이야기가 궁금증을 자극한다.

 

'역사저널 그날' 송시열. [사진 = KBS 1TV '역사저널 그날' 제공]

 

송시열은 청나라를 정벌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인 효종과 뜻을 함께 했다. 당시 송시열은 효종에게 조선의 13가지 당면 과제를 담은 비밀 상소를 올리는 등 정치적 파트너로서 힘을 모았으나 북벌에서는 다소 다른 입장을 보였다. 주자학에서 비롯된 송시열의 북벌론과 예론에 대한 입장을 짚어본다. 

송시열은 서인의 우두머리로 남인과의 권력 다툼 속에 희생됐다. '죄인의 우두머리'라는 죄명으로 사형을 당한 것이다. 

사후 영의정으로까지 추증되었던 그지만 생전에 종2품 이상 정무직 벼슬을 한 건 고작 10개월이었다. 이날 '역사저널 그날'에서는 송시열을 통해 관직은 하지 않으면서 강력한 정치력을 행사한 산림(山林)에 대해 알아본다.

조선중화주의로 설명되는 '조선 유교의 거성' 송시열의 속내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오는 8일 오후 9시 40분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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