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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운명처럼 만난 이호정-감강인, 평창 향한 '열정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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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포커스] 운명처럼 만난 이호정-감강인, 평창 향한 '열정댄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1.0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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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선' 올림픽 출전 노리는 아이스댄스 조 "아픈 3년 과거 대신 앞으로 3년만 볼래요"

[목동=스포츠Q 박상현 기자] 다시 한번 아이스댄스 팀이 뭉쳤다. 한때 싱글 스케이터로 활약했던 이호정(18·신목고)과 감강인(19·휘문고) 듀오가 아이스댄스의 선율에 맞춰 연기를 펼쳤다.

이호정-감강인 조는 8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에서 시범경기로 치러진 아이스댄스 쇼트댄스에 출전, 국내 팬 앞에서 첫 선을 보였다.

그동안 한국 피겨는 싱글 위주였다. 남자 싱글과 여자 싱글은 있었지만 짝을 맞춰 연기를 펼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없었다. 워낙 선수층이 얇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아이스댄스 경기가 벌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아이스댄스는 전국 종합선수권에서 1998년부터 2005년까지 치러졌다. 국내 1인자였던 양태화(33)-이천군(35) 조는 1999년 강원 동계아시안게임에서 동메달을 따내기도 했다. 양태화-이천군조와 함께 남매 김혜민(31)-고(故)김민우 조가 있었다. 이들이 2005년 은퇴하면서 아이스댄스의 명맥이 끊겼다.

▲ [목동=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제 걸음마 단계지만 평창까지 3년만 바라볼래요" 지난해 9월 결성된 이호정(왼쪽)-감강인 아이스댄스 조가 평창 올림픽 출전을 향한 도전에 나섰다. 싱글에서는 아픈 과거가 있지만 아이스댄스에서 자신의 미래를 개척하겠다는 꿈에 부풀어 있다.

그러다가 다시 아이스댄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고양 어울림누리에서 열렸던 종합선수권에서 재미교포 민유라(20)-미국의 티모시 콜레토(24)조가 출전했다. 그러나 콜레토가 떠나는 바람에 민유라는 새로운 파트너를 모색 중이다.

대한빙상경기연맹은 평창 동계올림픽에 남녀 싱글 뿐 아니라 페어와 아이스댄스까지 4개 전종목을 모두 출전시키겠다는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호정-감강인 조가 평창 올림픽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다.

◆ 김해진·박소연과 '97년 트로이카'였던 이호정 "아이스댄스로 새로운 삶"

이호정은 기자를 보자 "오랫만에 뵙는 것 같은데 언제였는지 기억이 안난다"고 웃었다. 이호정은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2년 가까이 피겨계를 떠나 있었다.

기자는 한 사진을 보여줬다. 2010년 1월 김해진(18·과천고), 박소연(18·신목고)과 이호정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당시만 해도 초등학교 6학년생 어린이였다. 이호정은 사진을 보자마자 까르르 웃으며 물개 박수를 쳤다. "지금은 이 때보다 살도 많이 찐 것 같아요"라며 쑥스러워했다.

이호정은 소치 동계올림픽에 김연아(25)와 함께 출전한 김해진, 박소연과 절친한 사이다. 당시 김해진, 박소연은 초등학생으로 드물게 트리플 5종 점프를 뛸 줄 아는 유망주였고 이호정 역시 4종 점프를 뛰며 이들을 뒤쫓고 있었다.

"해진이와 소연이는 늘 거의 붙어다녔어요. 사실상 가족이라고 봐야죠. 언제나 훈련장에 가면 해진이와 소연이가 있었죠. 우리끼리 친한 것이 아니라 가족들끼리도 서로 알고 지냈어요."

▲ 이호정(왼쪽부터)과 김해진, 박소연은 초등학생 때부터 피겨 유망주로 평가받은 '1997년생 트로이카'였다. 사진은 2010년 1월 태릉빙상장에서 열렸던 종합선수권 당시 환하게 웃고 있는 세 선수. [사진=스포츠Q DB]

이호정은 부상과 컨디션 난조를 겪던 김해진, 박소연 대신 2011년 강릉에서 열렸던 세계주니어피겨스케이팅선수권에 출전했다. 이호정은 쇼트프로그램 24위로 1차 목표인 프리스케이팅 진출에 성공한 뒤 23위로 대회를 마감했다. 당시 여자 싱글 우승자가 소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아델리나 소트니코바(19·러시아)였다.

친구들을 대신해 세계주니어선수권에 나간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이미 이때부터 크고 작은 부상이 있었다.

"진통제를 맞고 통증을 참아가면서 대회에 출전하고 훈련을 했어요. 하지만 부상을 제때 치료하지 못하고 부상이 쌓이고 쌓이다보니 큰 부상이 됐어요. 2012년말에 오른쪽 발목 수술을 두 차례나 받았어요. 의사 선생님도 '선수로 뛰긴 힘들다'고 말하셨죠. 하늘이 무너지는 줄 알았어요."

사실상 피겨를 떠난 이호정은 공부에만 열중했다. 사실 피겨를 하면서도 반에서 상위권에 들 정도로 공부는 잘했다. 그러나 공부를 하면서도 늘 눈은 빙판을 향했다. 소치 올림픽에서 절친한 친구인 김해진과 박소연이 출전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본 것은 더욱 그의 마음에 불을 질렀다.

"단짝 친구들이 소치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하지만 마음 한쪽 구석에는 '나도 스케이트를 타고 싶은데'하는 생각이 계속 들었어요."

▲ [목동=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호정(왼쪽)-감강인 조가 8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아이스댄스 쇼트 프로그램에서 환상의 호흡을 맞추고 있다.

그러다가 아이스댄스를 생각해냈다. 평소 여자 싱글을 하면서도 아이스댄스 선수인 스캇 모이어-테사 버츄(캐나다) 조의 영상을 즐겨볼 정도로 아이스댄스에 관심을 가졌다. 싱글 종목이나 페어 종목과 달리 점프를 할 필요가 없다. 발목이 좋지 않은 이호정에게 딱 맞는 종목이었다.

"아이스댄스는 제게 선수 생활을 계속하게 해준 고마운 종목이에요. 피겨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요. 빙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순간순간이 너무나 행복해요."

◆ 감강인과 이호정, 세미나서 운명적인 만남

이호정이 아이스댄스로 전향하겠다고 마음을 굳혀가고 있을때 또 한 명의 남자선수 역시 아이스댄스 전향을 계획하고 있었다. 감강찬(20)과 함께 '피겨 유망주 형제'로 각광을 받았던 감강인이었다.

감강찬-강인 형제는 일찌감치 피겨 유망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강인보다는 형 강찬이 조금 더 주목을 받았다. 형은 2013년 평창 동계 스페셜올림픽에서 개막식에 나서기도 했지만 동생은 쉽사리 기량이 늘지 않았다.

최고 8급까지 있는 피겨 등급에서 6급에 그친 그는 미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니어 등급인 6급에서 시니어 등급인 7급으로 올라가려면 트리플 점프 하나를 더 완성해야만 했는데 이 과정을 제대로 넘기지 못하는 선수가 적지 않다.

감강인도 마찬가지였다. 이 때문에 중학생 신분인 2011년까지도 노비스 대회를 출전하고 있었다. 속이 상했다.

그래도 피겨를 그만 두고 싶지는 않았다. 결국 새로운 활로를 찾았다.

스케이팅 기술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를 받는 그였기에 아이스댄스를 생각했다. 평소에 혼자 타는 것보다 파트너와 함께 타는 것을 하고 싶었던 감강인은 페어 전향을 생각했지만 점프를 하지 않아도 되는 아이스댄스를 하기로 결정했다.

▲ [목동=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호정(왼쪽)-감강인 조가 8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아이스댄스 쇼트 프로그램에서 호흡을 맞추며 아름다운 연기를 하고 있다.

그 역시 파트너를 찾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나 아이스댄스 파트너를 하겠다는 여자 선수는 나오지 않았다. 사실 선수층이 얇은 상황에서 아이스댄스 파트너를 찾는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호흡을 맞춰 훈련하다가도 트러블이 일어나 팀이 알게 모르게 깨지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 페어와 아이스댄스 종목이다.

지난해 8월 17일부터 23일까지 아이스댄스 종목을 널리 보급하고 활성화하기 위해 연 아시아-태평양 아이스댄스 트레이닝 캠프에서 운명의 상대 이호정을 만났다. 일주일 동안 열린 세미나에서 이호정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결국 의기투합하기로 했다.

"아이스댄스 팀은 파트너의 성격이 똑같으면 서로 의견 충돌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성격이 서로 달라요. 호정이는 약간 급하고 적극적인데 비해 저는 조금 느긋한 성격이거든요. 호정이가 조금 강한 성격이라면 저는 좀 부드러운 편이예요. 제가 호정이가 얘기하고 요구하는 것을 잘 들어주고 서로 의견을 조율해나가다보니 크게 충돌한 적이 없어요."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평창 올림픽팀'에는 2012년부터 활동해왔던 김레베카(17·리투아니아)-키릴 미노프(22·러시아) 조와 민유라-콜레토 조가 있었다. 김레베카-키릴 미노프 조는 지난해 3월 세계주니어선수권에서 6위를 차지한 뒤 지난해 11월 챌린저급 대회인 볼보오픈에서 동메달을 차지했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콜레토가 개인 사정을 이유로 팀을 떠난 것. 재미교포인 민유라는 현재 계속 미국에서 새로운 파트너를 모색하고 있는 중이다.

이에 따라 이호정-감강인 조가 주니어 랭킹 포인트를 따내기 위한 대회 출전의 기회가 생겼고 결국 지난해 12월 에스토니아 탈린에서 열린 탈린컵에서 쇼트프로그램 3위, 프리스케이팅 6위를 차지하며 종합 4위로 데뷔전을 마쳤다.

"탈린컵이 첫 경기였어요. 호정이와 얼마나 떨었는지 몰라요.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니까 너무나 신났어요. 어떻게 연기했는지 몰랐을 정도로 무아지경의 연기에 빠졌죠. 점수가 나온 순간 너무나 기뻤어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점수가 나왔거든요."

▲ [목동=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호정-감강인 아이스댄스 조가 8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훈련 직전 코치들과 상의하고 있다.

◆ "호흡 맞출 때는 짜릿, 이제 걸음마이니 조급하지 않을래요"

민유라-콜레토 조가 해체됐기 때문에 현재 한국 피겨스케이팅의 공식 아이스댄스 조는 두 팀만 남았다. 개최국 자격으로 본선 티켓이 1장 나오기 때문에 사실상 한 조만 출전할 수 있다. 지금 현재 상황이라면 김레베카-미노프 조를 제쳐야 한다.

"지금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당연히 뒤지죠. 우리는 이제 막 걸음마를 한 단계고 김레베카-미노프 조는 벌써 2년 넘게 준비했으리까요. 하지만 첫 술에 배부를 수 있나요. 조급하지 않으려고 해요."(감강인)

"강인이 오빠와 항상 '우리 것을 하다 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해요. 그리고 김레베카-미노프 조를 경쟁자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아직 정식으로 만나서 인사한 적은 없지만 카카오톡이나 페이스북 메신저로 서로 연락을 주고받곤 해요.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면서 발전시켜나가자는 얘기를 해요. 또 미국에서 또 다른 선수들이 아이스댄스 팀을 만든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경쟁자를 의식하기보다 신나게 연기해야죠."(이호정)

아이스댄스가 신난 탓인지, 아니면 늘 신나게 타자는 마음을 갖고 있어서인지 종합선수권 아이스댄스 쇼트프로그램을 마친 이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묻어났다. 이날이 탈린컵에 이어 자신의 두번째 공식 경기였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아이스댄스를 한 것이기에 기쁨이 더했다.

"호흡을 맞출 때는 정말 짜릿해요. 빙판에서 신나게 춤을 추고 나오는 듯한 기분으로 경기를 해요. 관중들도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신났어요." (이호정)

▲ [목동=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호정(왼쪽)-감강인 조가 8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아이스댄스 쇼트댄스 경기에서 현란한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그러나 역시 이들에게 시급한 것은 적응이다. 일단 스케이트화가 일반 피겨 선수들의 것과 다르다. 점프를 하지 않는 대신 현란한 스텝을 밟아야 하기 때문에 발목 부분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스케이트날도 일반 피겨 스케이트화보다 짧다. 경쟁까지 이겨내야 하니 모든 것이 도전의 연속이다.

"그래도 아이스댄스를 하니 너무 즐거워요. 이제는 아이스댄스가 제가 가야할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감강인)

"아까도 경기장에서 소연이, 해진이를 만났어요. (인터뷰하기 바로 전에도)만나서 서로 안아주고 했어요. 소연이는 1위를 해서 좋은데 해진이가 컨디션이 안좋아서 순위가 많이 떨어져서 안타까워요. 그래도 평창 올림픽에 친구들과 함께 모두 나갔으면 좋겠어요."(이호정)

이들의 흥은 오를대로 올랐다. 아직 팀이 결성된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아 호흡을 맞추는데 중점을 뒀지만 앞으로는 삼바나 자이브 등 댄스스포츠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면서 어떤 동작을 만들어낼지에 대해 연구하겠다고 한다. 이들의 현란한 스텝과 화려한 연기는 이제 막 시작됐다. '쇼'는 이제 막 시작됐고 이들의 '쇼'는 계속될 것이다.

▲ [목동=스포츠Q 최대성 기자] 이호정(왼쪽)-감강인 조가 8일 서울 목동아이스링크에서 열린 전국 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 아이스댄스 쇼트댄스 경기에서 마무리 연기 동작을 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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