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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 '망원동 인공위성' 쏘아올린 김형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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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성영화관] '망원동 인공위성' 쏘아올린 김형주 감독
  • 용원중 기자
  • 승인 2015.02.07 15: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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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 글 용원중기자·사진 이상민기자]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망원동 인공위성’(2월5일 개봉)은 티셔츠 1만장을 팔아 1억원의 발사 비용을 충당, DIY 방식으로 인공위성을 만들어 우주로 띄우겠다는 OSSI(Open Source Satellite Initiative) 프로젝트에 도전한 송호준(37) 작가의 인공위성 제작 공개운동 과장을 상세히 기록한 작품이다.

1억원에 채 못미치는 제작비, 2011년부터 13년까지 2년의 촬영기간을 거쳐 탄생한 영화는 2013년 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관객상과 한국경쟁부문 특별언급상, 서울독립영화제 특별초청, 지난해 모스크바 컨템포러리 과학영화제 관객상을 수상했다. ‘망원동 인공위성’은 여로 모로 자극적이다. 국내 영화계에선 보기 드물게 촬영감독의 영화 연출작이다. 작품의 오브제인 송호준 작가는 영민한가 하면 세계 최초 개인 인공위성 발사를 향해 돌진하는 예측불허 돈키호테 같은 면모를 시종일관 보여준다. 3년의 잉태 끝에 고생덩어리 창작물을 출산한 김형주(38) 감독을 세로수길에서 만났다.

 

- 송호준의 OSSI 프로젝트를 기록하려고 한 이유가 궁금하다.

▲ 제작이나 연출에 욕심나서 시작한 건 아니다. 하던 작품이 엎어지고, 5년이 넘게 시나리오에 매달려 있는 등 당시 나나 주변 영화인들이 모두 힘든 상황이었다. 희망고문의 연속이랄까. ‘영화를 왜 하나?’란 고민을 거듭하던 차에 우연히 잡지에서 송 작가의 인터뷰 기사를 접했다.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려고 하는 그에 대한 호기심과 더불어 그의 고민이 내 고민과 맞닿아 있는 느낌이 들었다. 당당한 그의 모습이 호기심을 일으켰고 자극을 줬다. 그의 밝고 재미난 에너지를 옆에서 지켜보고 싶었다.

- 제작기간만 3년, 촬영기간은 2년이 걸렸다. 당신은 기획, 제작, 연출, 촬영, 편집, 색보정 등을 도맡았다. 만만치 않은 시간과 노동 강도다.

▲ 3년의 시간을 처음에 우습게 봤다. 하하. 군대 한번 갔다 온 시간인데. 주변의 시나리오 작가 형들이 “1~2년을 어떻게 찍냐”고 우려했다. 그런데 시간이라는 게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더라. 중간에 나도 지치고 두렵긴 했으나 끝을 보고 싶다는 욕망이 지배했다. 과거에 영화가 엎어졌던 공포감을 극복하고 싶었고, 완결에 대한 자신감이 솟구쳤다.

- 사실의 기록인 다큐멘터리 영화는 보통 감독이 철저히 관찰자 입장으로 객관성을 견지한다. 반면 ‘망원동 인공위성’에서 김 감독은 송 작가에게 말을 건네고, 질문하고, 반론을 제시하는 등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특이했다.

▲ 일반 드라마에선 히어로와 안티 히어로가 존재해야 완성되지 않나. 내가 안티 히어로 역할을 해야겠다 싶어서 초반에 빈번하게 했는데 편집과정에서 들어냈다. 다큐멘터리마다 개성이 있을 테지만 난 ‘객관적’ ‘거리두기’를 싫어한다. 그건 창작자에게 족쇄를 채우는 거다. 찍고 있는 사람이 정확히 드러나고, 나의 시각일 뿐임을 명확히 얘기하고 싶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생생되는 거짓이나 믿음에 대한 강요 역시 혐오한다. 그래서 카메라를 든 채 궁금하면 물어보고, 대화를 나눴다. 송 작가도 “말을 걸면 사운드와 물릴 텐데 편집 때 어떻게 하냐”며 걱정하더라.(웃음)

 

- 더불어 국내 다큐멘터리에서 소홀히 취급해왔던 촬영, 편집, 음악에서도 공을 많이 들인 흔적이 역력했다. 역동적인 촬영과 리듬감 넘치는 편집, 다채롭고 인상적인 음악사용 등.

▲ 그동안 장르영화를 촬영해오며 샷 바이 샷 개념이나 바스트 샷 등에 익숙해서 그런 스타일의 촬영과 편집이 이뤄졌다. 또 이 프로젝트가 전자전기 관련 기술 프로젝트라 그런 느낌이 나는 1970~80년대 신스팝이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사용됐다. 주파수 음을 내는 오실레이터 사운드도 가미됐고. 가장 애를 먹었던 건 편집이다. 300시간의 촬영 분량을 러닝타임인 100분으로 걸러내고 편집하는 데 4개월이 걸렸다.

- 제작, 기획, 연출, 촬영, 편집, 색보정 등을 도맡았다. 그야말로 1인미디어 작업이었다.

▲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의 관계, 누군가를 고용하기 힘든 경제적 상황 등으로 인해 오히려 긴밀하게 들어갔다. 이런 제작방식이 얼마나 건강한지는 따로 논의돼야할 것 같다. 되돌아보니 하루에 5분, 10분, 4~5시간씩 찍은 적도 있었다. 중간에 영화 ‘가족시네마’ 촬영을 병행했을 때는 육체적으로 힘들어 카메라를 든채 졸기도 했다.

- 설치미술·음악작가인 송호준씨는 비범하기도 하며 괴짜처럼 다가온다. 극중 욕설과 비속어를 툭툭 던지기까지 한다. 옆에서 지켜본 이 영화의 주인공 송 작가는 어떤 인물인가.

▲ 내가 영화화 제안을 했을 때 흔쾌히 동의했다. 미디어에 많이 오픈된 사람이다. 내가 만만해 보여서인지 속내를 잘 드러내줬다. 다른 조력자들도 그랬고. 그래서 유쾌하고 풀어져 있는 인터뷰 장면이 나왔다. 광주 출신의 송 작가는 일단 외모가 포토제닉하다. 그리고 솔직하다. 그의 작업 테마는 ‘권위에 대한 부정’이다. 그는 스크린이나 다큐멘터리의 권위에 대해서도 불편하다고 말했다. 아무리 내용이 열린 결말이라 하더라도 공적 매체에 담기며 은연중에 대중에게 각인될 수도 있는 ‘권위’를 몹시도 불편해 한다. 나 역시 작품을 통해 뭔가를 강하게 주장하거나 규정하고 싶진 않다.

- ‘개인 인공위성 프로젝트’나 이를 기록한 ‘망원동 인공위성’은 이 시대 청춘에게 꿈과 희망의 소중함을 역설하는 영화인가? 영화에도 등장하듯 꿈을 이루기 위한 5년의 시간 동안 직업은 백수가 되고, 육체적·정신적·시간적 손실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영화 속 대사 “레퍼런스는 위안을 가져다 준다. 희망은 모르겠고 위안이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도 나름 의미심장하다.

 

▲ 보는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기성세대가 흔히 말하는 ‘아프니까 청춘이다’ ‘꿈과 희망을 가져라’ 식 공익광고를 찍으려던 게 아니었다. 실제 그 시간들은 괴로웠다. 그래서 그 시간을 최대한 많이 보여주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작된 인공위성이 로켓에 실려 발사 후 단 5초 만에 끝나버리는 작업이 얼마나 대단하기에 30대를 망치나,란 의문이 들었다. 독기를 품고 뭔가를 하는 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건 아닐 거라는 의문을 계속 가졌다. 관객들이 그런 의문을 한번쯤 마음에 품으셨으면 한다.

-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에서 촬영을 전공한 뒤 ‘포도나무를 베어라’(2006)를 시작으로 ‘그녀에게’ ‘절벽’ ‘더 폰’ ‘말하는 건축가’ ‘오늘’ ‘개를 훔치는 방법’ 등 다양한 장단편 영화에서 촬영을 맡았다. 촬영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분이 무언지 궁금하다.

▲ 촬영은 이미지와 서사인데 서사를 중요시한다. 이미지는 서사에 종속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촬영은 문학적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가급적 배우의 대사, 시나리오를 줄여주는 게 촬영의 미덕이라고 본다. 샘 멘데스 감독의 ‘레볼루셔너리 로드’(2009)에서 낙태한 여주인공의 치마에 강렬한 빛이 비추며 핏물이 얼룩지는 장면은 대사 없이 장면만으로 모든 게 이해되는 숨 막히는 이미지다. 상업영화에서 정해진 조명, 동선과 딱 맞아떨어지는 장면이 촬영됐을 때의 기쁨도 크지만 배우의 표현이나 현장에서의 즉흥성으로 인해 그 이상의 결과물이 나올 때 맛보는 희열은 무척이나 크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표현이 ‘때깔’이다. 조명, 미술로 만들어지는 이미지가 아무리 휘황찬란해도 이야기 자체가 엉성하면 관객과 공명할 수 없기에 거품일 뿐이다.

- 두 번째 연출작 구상은 하고 있나?

▲ 다큐멘터리 연출과 영화 촬영감독 일은 각각의 경험치를 서로 주고받는 게 있다. 장점이다. 이번에 서로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단초를 경험했다. 카메라를 들고 인물과 인터랙션 하는 건 몇 차례 경험했으니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보고 싶은 욕망이 있다. 좀 더 공부를 해서 이야기가 들어가 있는 기록 윤리를 다뤄보고 싶다.

 

[취재후기] 영화잡지를 즐겨보던 소년은 친구 따라 한예종 영상원 시험을 쳤다가 촬영의 길로 들어섰다. 재기발랄하며 말솜씨가 뛰어난 그는 현장에서의 영화작업 뿐만 아니라 대학(추계예술대학)에서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인터뷰가 끝난 뒤 여담으로 국내 라이팅(조명)과 촬영의 발전상 그리고 현주소를 들려줬다. 이 분야에 대한 연구 서적이 취약한 현실에서 김형주 감독이 일익을 담당할 수 있지 싶었다. '한국의 미셸 공드리'란 닉네임을 거머쥘 그에게 적극 권유했다.

goolis@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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