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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수원, 열정보다 냉정으로 쓴 슈퍼매치 대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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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수원, 열정보다 냉정으로 쓴 슈퍼매치 대승사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4.18 20: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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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분위기 속에서도 평정심…욕심 버리고 무리하지 않은 수원의 5-1 역사적인 대승

[수원=스포츠Q 박상현 기자] 수원 삼성과 FC 서울의 '슈퍼매치'는 늘 전쟁이다. 국제축구연맹(FIFA)의 세계 7대 더비로 선정될 정도로 항상 뜨거운 슈퍼매치는 화제를 불러 일으키는 K리그 최고의 빅매치다. 감독들도 언제나 한 경기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며 절대 승리를 외쳐왔다. 선수들도 그 분위기에 휩쓸려 그라운드에서 첨예한 대립을 하곤 했다.

18일 올시즌 두 번째로 많은 2만6250명의 관중이 운집한 가운데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현대오일뱅크 2015 K리그 클래식 시즌 첫 슈퍼매치의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어쩌면 사흘 간격으로 정신없이 이어지는 경기 일정 때문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서정원 수원 감독은 최대한 평정심을 찾고자 애썼다.

서정원 감독은 "슈퍼매치에서 최용수 서울 감독에게 뒤지고 있지만 어쨌든 K리그 경기 가운데 한 경기일 뿐"이라며 "물론 지난해 많이 졌기 때문에 올해는 분위기를 좀 바꿔보자는 얘기는 했다. 선수들도 간절함이 컸다. 그래도 우리의 경기 스타일을 계속 지켜가자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고 밝혔다.

▲ [수원=스포츠Q 최대성 기자] 수원 삼성 선수들이 18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C 서울과 슈퍼매치가 끝난 뒤 '5-1'이라는 기록적인 점수가 새겨진 전광판과 서포터스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최용수 감독도 많은 K리그 경기 가운데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었다. 팬들에게는 라이벌 매치로서 한 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겠지만 모든 경기에서 승리를 노리는 감독 입장에서 자칫 한 경기에 너무 많은 것을 쏟다가 흔들릴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평정심은 수원 쪽이 더 앞섰다. 끝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던 수원은 슈퍼매치에서 역사적인 5-1 대승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반면 서울은 후반에 급격하게 무너지면서 평정심까지 잃으며 지리멸렬했다. 무섭도록 흔들리지 않았던 평정심은 비단 감독뿐이 아니었다.

◆ 정대세 "힘 빼니까 되네요" 침착함으로 2골 2어시스트

이날 무서울 정도로 평정심을 잃지 않았던 선수는 정대세(31)였다. 수원의 레전드인 서정원 감독이 달았던 14번을 물려받았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정대세는 지난 두 시즌 동안 목표가 최대한 골을 많이 넣는 것이었다. 늘 "내 등번호만큼 골을 넣겠다"고 외쳤다.

하지만 정대세의 목표치는 언제나 조금씩 부족했다. 여기에 골을 넣으려는 욕심이 너무 많아 이기적인 선수라는 평까지 따라다녔다. 지난해 정대세는 선발보다 교체로 나오는 경기가 더 많아졌다.

특히 정대세는 슈퍼매치와 악연이 있다. 2013년 4월 14일 홈경기에서 골키퍼에 달려드는 불필요한 행동을 했다가 경고 누적으로 퇴장당했다. 당시 경기는 1-1 무승부로 끝났지만 수원은 90분 내내 힘든 경기를 해야만 했다.

올시즌 정대세는 완전히 달라졌다. 서정원 감독이 조금 더 시야를 넓게 보라는 조언을 하면서 정대세의 생각도 바뀌었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책임감까지 느끼게 된 정대세는 이타적인 선수로 180도 확 바뀌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트라이커의 주 역할인 골이 줄었다. 아니 올 시즌 아직까지 골을 기록하지 못하고 있었다.

▲ [수원=스포츠Q 최대성 기자] 수원 삼성 염기훈(왼쪽)가 18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C 서울과 슈퍼매치에서 후반 3분 골을 넣은 뒤 어시스트해준 정대세에게 고마움을 표시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그럼에도 서정원 감독은 정대세에게 절대 신임을 보냈다. 서 감독은 "정대세가 '0골 스트라이커'지만 오히려 칭찬을 받아야 할 선수"라며 "그가 도우미로 변신하면서 경기를 보는 시야가 더 넓어졌다. 자신보다 다른 팀 동료를 볼 줄 알게 됐다. 수원에서 없어서는 안될 선수"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대세는 이날 서울전에서 그야말로 절정의 기량을 펼쳤다. 경기가 끝난 뒤 "K리그에 들어와 나의 최고 경기"라고 자평했을 정도였다.

전반 22분 이상호의 헤딩골을 어시스트한 것도 그였고 비록 골로 연결되지 않았지만 역시 전반 28분 이상호가 슛을 할 수 있게 떨어뜨려준 것도 정대세였다.

정대세가 경기를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것을 느끼게 해준 것은 후반 3분 염기훈의 골이었다. 정대세는 아크 오른쪽에 위치해 있었다. 지난해 정대세였다면 이 상황에서는 무조건 슛이었다. 그러나 정대세는 왼쪽에 따라붙는 수비수가 없던 염기훈을 봤다. 염기훈에게 연결된 패스는 골로 이어졌다.

정대세의 골 감각은 후반 22분과 후반 44분에 볼 수 있었다. 그가 이제 큰 욕심을 부리지 않고도 침착하게 공격 포인트를 올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후반 22분에는 수원 진영에서 나온 패스를 받아 왼쪽으로 치고 들어간 뒤 골키퍼 김용대가 나오는 것을 보고 침착하게 오른발로 마무리했다. 강슛이 아닌 완전히 힘을 뺀 슛이었다. 후반 44분 역시 염기훈의 패스를 받아 상대의 수비를 뚫어내며 역시 김용대의 위치를 침착하게 보고 오른발로 결정지었다.

이에 대해 정대세는 "이제 여유가 생겼다. 슛에 집착하지 않다보니 힘도 안들어가고 주변을 더욱 잘 볼 수 있게 됐다"며 "K리그에 와서 지난 두 시즌은 너무 힘을 주고 슛을 때리다보니 막히는 경우가 만았다. 지금은 긴장을 완전히 푼 상태에서 하다보니 멋진 타이밍에 슛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밝혔다.

서정원 감독도 2골 2도움을 기록한 정대세를 흐뭇하게 바라봤다. 서 감독은 "정대세에게 어시스트를 하면서 팀 동료를 도와주다 보면 더 좋은 기회가 생긴다고 얘기했다"며 "동료에게 좋은 기회를 넣어주다 보면 더 좋은 득점 기회도 나고 나아가서 자신도 기회가 만들어진다고 조언했다. 정대세가 이를 100% 잘 지켜낸다"고 밝혔다.

▲ [수원=스포츠Q 최대성 기자] 수원 삼성 정대세(오른쪽)가 18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C 서울과 슈퍼매치를 대승으로 이끈 뒤 관중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 산토스 부상, 감독도 선수도 "100% 아니면 무리할 필요 없다"

슈퍼매치에서는 수원의 핵심 전력 산토스(30)가 빠졌다. 산토스는 지난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득점왕에 오른 수원 공격의 핵심이다. 하지만 산토스가 왼쪽 무릎 부상으로 올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처음으로 결장했다.

그럼에도 서정원 감독은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권창훈(21)과 이상호(28)가 있기 때문이었다.

서정원 감독이 유일하게 손을 댄 것이 바로 포메이션이었다. 서정원 감독은 산토스를 정대세의 뒤에 위치시키면서 4-2-3-1 포메이션을 주로 썼지만 슈퍼매치에서는 4-1-2-3을 사용했다. 염기훈(32)과 서정진(26)을 조금 더 위로 올려 정대세의 공격력을 뒷받침하게 하면서 권창훈과 이상호를 번갈아 공격 지원하게끔 했다. 이상호가 공격으로 올라가면 권창훈이 수비에서 조금 힘을 실어주고 권창훈이 올라가면 그 반대로 해 마치 시소처럼 움직이게 했다.

서정원 감독으로서는 산토스에게 조금 무리를 시켜서라도 내보낼 수도 있었다. 그만큼 산토스는 수원의 공격에서 없어서는 안될 자원이다. 아니면 조금 더 공격적으로 해서 카이오(28)와 정대세를 나란히 세울 수도 있었다. 서 감독이 올 시즌 투톱을 써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서정원 감독은 선발을 모두 국내 선수로 메웠다. 서정원 감독은 "아직 가야할 길이 멀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일정도 남아있는데 산토스를 무리시켰다가 더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면 걷잡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며 "산토스가 나서지 못한다면 아예 국내 선수만으로 치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봤다. 오히려 커뮤니케이션에서 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수원=스포츠Q 박상현 기자] 수원 삼성 산토스가 18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C 서울과 슈퍼매치에서 동료들의 경기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산토스는 무릎 부상 때문에 이날 경기에 출전하지 않았다.

벤치가 아닌 기자석 뒤에서 경기를 지켜본 산토스도 느긋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산토스는 "전남전이나 울산 현대전 모두 치열한 경기였는데 내 컨디션은 60%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전남과 울산전을 치르면서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라면 오히려 팀 경기력에 방해만 된다는 것을 느꼈다"며 "서정원 감독도 앞으로 경기가 많은데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면 구태여 무리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컨디션이 100%가 될 때까지 시간을 줬다"고 말했다.

그래도 슈퍼매치라는 경기에 뛰고 싶지 않느냐는 질문에 산토스는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당연히 뛰고 싶다"며 "그렇다고 무리해서 다치면 나도 손해고 팀도 손해 아니냐. 주중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 AFC 챔피언스리그 경기도 거를 예정이다. (오는 26일에 벌어지는) 대전과 경기에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씩 웃어보였다.

자신을 대신해 나온 이상호가 2골을 넣자 산토스는 활짝 웃어보이며 "내가 뛰었으면 저런 골이 나왔겠느냐. (이)상호가 잘하니까 나도 기분좋다. 이래서 수원이 강팀"이라고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 '부상 투혼' 염기훈 "대표팀 욕심 버린지 오래다"

산토스는 부상으로 뺐다고는 하지만 서정원 감독이 염기훈까지 빼지는 못했다. 차마 빼지 못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염기훈은 전날 연습경기를 하면서 발목을 다쳤다. 그것도 자신의 전매특기인 왼발이었다. 뚝하는 소리까지 나면서 서정원 감독은 인대를 다친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 다행히 자기공명장치(MRI) 검사 결과 인대 손상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 [수원=스포츠Q 최대성 기자] 수원 삼성 이상호(왼쪽에서 두번째)가 18일 경기도 수원월드컵경기장서 열린 현대오일뱅크 2015 K리그 클래식 FC서울과 '슈퍼매치' 홈경기 전반 22분 선제골을 넣은 후 환호하고 있다.

그래도 서정원 감독은 좌불안석이었다. 서 감독은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염기훈을 넣을지 말지를 너무 고심했다. 그런데 괜찮으니까 뛰겠다고 하더라. 고마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염기훈은 수원 대승의 또 다른 주역이 됐다. 후반 3분 정대세의 어시스트를 받아 골을 넣었고 4분 뒤 이상호의 골을 어시스트했다. 후반 44분에는 자신에게 어시스트를 밀어준 정대세의 골을 도우며 도움 하나를 더 추가했다. 1골 2도움으로 K리그 클래식 6경기 공격 포인트, AFC 챔피언스리그까지 포함해 8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올렸다.

이쯤 되면 대표팀 욕심이 날 법도 하다. 그렇지만 염기훈은 이미 대표팀 발탁 여부에 대해 초월했다. 또 다른 의미의 평정심이었다.

염기훈은 "불러주면 당연히 감사하겠지만 대표팀 복귀에 대한 생각은 없다"며 "지금은 대표팀을 생각할 때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소속팀에서 더 많이 뛰어야 할 때다. 선수들이 힘들어할 때 나부터 더 많이 뛰자고 채찍질하니까 잘 되는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염기훈은 평정심을 끝까지 잃지 않은 덕분에 후반 막판 거친 태클에도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후반 41분 김진규의 거친 태클에 넘어져 큰 부상이 예상됐지만 툭툭 털고 일어났다. 구태여 감정 싸움도 하지 않았다.

이기려는 욕심과 간절함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마음까지 흔드는 일은 없었다. 그렇기에 1999년 3월 20일 수퍼컵 경기에 이어 다시 한번 5-1 경기를 만들어냈다. 4골차 경기도 1999년 7월 21일 이후 처음으로 나왔다.

그리고 이들은 경기를 마친 뒤에도 끝까지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슈퍼매치에서 역사적인 대승을 거뒀다. 그러나 대승의 기쁨은 오늘까지만이다. 오늘 거둔 승점 3으로 만족하지 않겠다"는 정대세의 말이 이를 잘 말해준다.

▲ [수원=스포츠Q 최대성 기자] 수원 삼성 염기훈이 18일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진 FC 서울과 슈퍼매치에서 후반 3분 골을 넣은 뒤 지휘자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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