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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루지 코리아, 척박한 토양에서 '꿈'을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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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현장] 루지 코리아, 척박한 토양에서 '꿈'을 뽑다
  • 박상현 기자
  • 승인 2015.04.28 11: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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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스포츠개발원 체력평가로 국가대표 선발…에이스 성은령도 4년전 같은 코스로 발탁, 성장가도

[300자 Tip!] 동계 스포츠 썰매 종목이라고 하면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을 많이 생각하게 된다. 최근 한국 썰매종목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올리며 언론에 자주 오르내리는 것이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이다. 그런데 루지라는 또 다른 썰매 종목이 있다.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한 루지는 한국의 동계올림픽 역사에 가장 먼저 도전한 썰매 종목이다. 또 지난해 한국 루지대표팀은 아시안컵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하는 등 아시아에서도 정상권을 달리고 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 아시아를 넘어 세계 정상권에 도전하는 한국 루지의 국가대표는 어떤 방식으로 선발되는지 그 현장을 찾았다.

[태릉=스포츠Q 글 박상현·사진 이상민 기자] 한국은 썰매 종목의 불모지다. 아직 정규 트랙, 즉 슬라이딩센터가 없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한 슬라이딩센터가 내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건설되고 있긴 하지만 그 전까지는 해외에서 훈련을 하는 수밖에 없다.

슬라이딩센터가 없으니 국가대표 선발 역시 다른 방법으로 진행하게 된다.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평창에 스타트 훈련장을 만들어놓고 스타트 기록을 통해 대표를 선발한다. 중간에 갑자기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스타트 순위가 거의 최종 순위로 직결되기 때문에 스타트 기록만으로도 대표 선발이 가능하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봅슬레이와 스켈레톤 모두 세계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스켈레톤의 경우 윤성빈(21·한국체대)이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16위에 오르는가 하면 지난달 세계선수권에서는 8위에 오르며 어느덧 세계 정상권에 근접했다. 윤성빈은 2014~2015 시즌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FIBT) 월드컵에서 은메달 1개와 동메달 2개를 따내기도 했다.

▲ 아직까지 한국 썰매 종목은 척박하다. 슬라이딩 센터가 없어 국내에서 경기가 치러지지 않는다. 루지 국가대표 선발전 역시 선수들에게 중요한 기초체력과 근력을 측정하는 테스트로 대신한다. 그러나 이들의 땀에는 한국 루지 발전의 밑거름이 포함돼 있다. 27일 서울 태릉선수촌 내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진행된 루지 대표 선발전에서 테스트를 받고 있는 참가자들.

봅슬레이 역시 괄목성장하고 있다. 한국 봅슬레이의 간판인 원윤종(30)과 서영우(24·이상 경기도봅슬레이연맹) 역시 지난달 FIBT 세계선수권 남자 봅슬레이 2인승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5위에 오르며 한국 봅슬레이 역사상 첫 세계선수권 메달을 따내 평창 가능성을 밝혔다.

루지는 봅슬레이, 스켈레톤과 또 다르다. 전력질주하면서 썰매를 미는 봅슬레이, 스켈레톤과 달리 루지는 썰매에 앉아서 스타트를 한 뒤 누워서 질주한다. 아직 평창에 스타트 훈련장이 조성되어 있지 않아 대표선발전 역시 선수들의 근력과 지구력 테스트에 초점을 맞춰 진행된다.

어떻게 보면 상당히 열악해보이는 대표선발전이지만 이런 테스트를 통해 한국 루지의 유망주가 발굴되고 있다. 현재 한국 루지의 에이스로 소치 동계올림픽을 통해 처음으로 여자 싱글 부문에 출전한 성은령(23·대한루지경기연맹)이 가장 대표적이다. 소치 올림픽에서 29위에 올랐던 성은령은 짧은 경력임에도 아시안컵 우승과 세계선수권 23위의 성적을 올리며 성장하고 있다.

◆ 한국스포츠개발원서 12개 항목에 걸쳐 체력평가

대한루지경기연맹은 해마다 4월이면 국가대표 선발전을 실시한다. 기존 국가대표도 빠짐없이 참가해야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루지 유망주가 발굴되기도 한다.

올해 역시 27일 서울 태릉 선수촌 내에 위치한 한국스포츠개발원에서 국가대표선발전을 실시했다. 루지를 타고 기록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라 심폐지구력이나 근력을 측정해 높은 점수를 받은 남녀 8명을 구분하게 된다. 남녀 선수 선발 비율은 측정 결과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진다.

▲ 루지 대표선수 선발전 참가자가 사이드스텝 테스트를 받고 있다.

평가 항목은 △ 허리와 등의 수축력의 강도를 재는 배근력과 △ 목 근육의 힘을 재는 목근력 △ 아랫배 근육 힘을 재는 하복근력 테스트 △ 양다리를 뻗은채 상체를 앞으로 구부려 유연성을 재는 장좌체전굴 등 기초 테스트가 있다. 이외에 △ 턱걸이 △ 서전트 점프 △ 사이드스텝 △ 벤치프레스 △ 딥스(평행봉 팔굽혀펴기) △ 스쿼트 △ 60m 달리기 △ 400m 달리기 등 모두 12가지로 나뉜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은 이를 모두 측정해 점수로 55점 만점으로 환산하고 면접 점수까지 포함해 선수들을 선발하게 된다. 남자 18명과 여자 6명 등 모두 24명이 이날 테스트에 참가했다.

김언호 한국스포츠개발원 스포츠과학실 연구원은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은 달려나가면서 스타트를 하기 때문에 다리 근육 힘이 절대적으로 중요하지만 루지는 전신근력, 즉 모든 신체부분의 근육이 골고루 발달해야 한다"며 "목을 약간 들어주면서 타야 하기 때문에 목근력과 하복근력이 더없이 중요하다. 또 스타트를 하면서 봉을 힘차게 잡아 당기기 때문에 그만큼 벤치프레스 등을 통해 팔의 근육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또 김언호 연구원은 "루지의 평가 항목은 순발력과 근력, 민첩성 등 기초체력과 심폐지구력, 무산소 운동에서 낼 수 있는 파워 등 전문체력 등으로 나뉜다. 이 모든 것을 제대로 수행해야만 루지 선수로 육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루지 국가대표 에이스 성은령이 60m 달리기 테스트에서 트랙을 달리고 있다.

◆ 루지 종목에 용인대 출신이 많은 이유는

대표선발전 명단을 보면 유독 용인대 출신이 많다. 연맹 소속으로 되어 있는 선수들 역시 대부분 용인대 출신이다. 이는 대한루지경기연맹 전무이사인 임순길 용인대 교수가 신입생을 대상으로 선발전 출전을 추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강미애와 이하나, 최정은(이상 19) 등 용인대 1학년에 재학중인 지원자 역시 임순길 교수의 추천을 받고 대표 선발전에 응시했다.

강미애느 "원래 스키 크로스컨트리 선수지만 루지에 도전해보고 싶어서 아직 대한스키협회와 재계약을 하지 않았다"며 "사실 루지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온 것은 아니다. 게다가 크로스컨트리는 장거리 종목으로 심폐지구력이 더 중요한데 루지는 단거리 능력과 근력을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나란히 체육 입시생 출신인 이하나, 최정은 양 역시 "루지라는 새로운 종목에 도전하면서 색다른 경험을 했다. 뽑히면 좋겠지만 선발되지 않아도 다른 목표가 얼마든지 있기에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한국 여자루지의 에이스인 성은령도 대표선발전을 치렀다. 성은령도 용인대 1학년이던 2011년 임순길 교수의 권유로 루지 대표 선발전에 지원해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그 역시 체육 입시생 출신이다.

성은령은 "2011년만 하더라도 턱걸이를 하나도 하지 못했지만 대표선수에 뽑힌 이후 루지 선수에 맞는 훈련을 하고 그에 맞춰 몸을 만들었다. 불과 3, 4년 사이에 완전히 인생이 바뀌었다"며 "사실 1, 2년 하다가 그만두려고 했었는데 루지를 한 번 타니까 몸으로 느껴지는 속도감과 짜릿함에 빠져들어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밝혔다.

▲ 루지 대표선수 선발전 참가자가 몸의 유연성을 재는 장좌체전굴 테스트를 받고 있다.

◆ 체중관리? 우리는 많이 나갈수록 좋아요

썰매 종목은 특이하게도 체중 관리가 필요없다. 아니 체중 관리를 하긴 한다. 그런데 체중을 줄이는 관리가 아니라 늘리는 관리를 해야 한다. 유럽 선수들이 썰매종목에서 언제나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것은 역시 체격조건이 아시아권 선수들보다 뛰어나기 때문이다.

성은령 역시 용인대 입학하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살이 찌는 체질이 아니었다고 한다. 아무리 밥을 먹어도 살이 찌지 않아 자신이 루지 선수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중도에 그만두려고 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꾸준히 체중 관리를 하면서 이번 선발전에는 61.5kg을 기록했다. 세계선수권 23위와 소치 동계올림픽 29위를 기록했던 지난해 줄곧 59~60kg 수준을 유지했기 때문에 나름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성은령은 "해외에서 훈련할 때마다 라면을 30봉지씩 사가지고 가서 매일 밤 끓여먹었다. 야식으로도 먹고 틈이 날 때마다 조금씩 먹으면서 체중을 불렸다"며 "이번에도 60kg 이하로 떨어지면 안된다고 주문받았는데 이를 지켜냈다"고 좋아했다.

체중 고민 때문에 운동을 그만둔 뒤 루지를 생각한 지원자도 있었다. 이번 선발전 참가자 가운데 최연소인 강민권(17) 군은 고등학교 2학년생으로 누나인 강미애와 함께 응시했다. 강 군은 원래 유도 선수였다.

▲ 루지 대표 선발전에 도전한 참가자들이 60m 달리기 테스트에서 있는 힘껏 속도를 내고 있다.

강민권 군은 "유도 선수로 중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뛰었는데 코치 선생님께서 원하는 체중에 맞추지 못했다. 처음에는 66kg급이었지만 지금은 87kg급까지 늘어났다. 체중이 늘어나니 큰 선수와 만나야 하고 결국 경쟁력이 없어 포기했다"며 "1년 동안 공부만 하다가 운동이 너무 하고 싶었던 차에 누나가 루지 대표 선발전에 도전한다는 얘기를 듣고 함께 지원했다"고 지원 이유를 밝혔다.

이어 "사실 철봉 턱걸이 등 유도를 했을 때 하지 않았던 테스트를 하니 좀 힘들었다. 뽑힐지는 잘 모르겠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이날 24명의 지원자들은 오전에 실시한 체력 테스트와 오후 면접을 거친 뒤 오후 늦게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2015~2016 시즌 한국 루지를 대표할 선수들은 체력 테스트 결과, 면접 점수를 포함한 점수와 기존 국가대표의 경우 지난 시즌 기록 가산점까지 고려해 선발된다.

[취재후기] 성은령은 "유망주들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잊지 않았다. 독일 등 유럽의 경우 4, 5세부터 루지를 시작해 세계적인 선수로 발전한다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루지를 접할 수 있는 방법은 대표선발전을 통해 선수가 되는 것 뿐이다. 그러나 대표선발전을 거치면서 차점자나 가능성이 보이는 선수에 대해서는 상비군으로 별도 운영해 육성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학을 졸업한 선수는 '백수'가 된다. 성은령도 예외 없이 용인대 졸업하자마자 실업자가 됐다. 무직임에도 그가 루지를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평창을 향한 열정 때문이다. 하루빨리 여러 선수들의 열정이 모이고 모여 한국 루지가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해본다.

tankpark@sportsq.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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