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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위해 3시간 기다리는 '팬심', '사녹'이 뭐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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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위해 3시간 기다리는 '팬심', '사녹'이 뭐기에?
  • 김지원 기자
  • 승인 2019.09.0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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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지원 기자] 이른 새벽부터 방송국 앞에 삼삼오오 줄이 서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그 줄의 정체는 바로 '사녹'을 기다리는 행렬이다. '사녹'은 ‘사전 녹화‘의 줄임말로 주로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음악방송의 원활한 무대 연출 및 방송 송출을 위해 미리 무대를 녹화하는 방식을 이른다. 사전 녹화한 방송분은 생방송 시간에 맞춰 송출한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6일 동안 케이블, 공중파 등 각종 방송사에서 음악 방송이 진행되며 이는 모두 ‘생방송’을 표방하고 있다. 더불어 대중들도 ‘음악방송‘ 하면 생방송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요즘 음악방송은 생방송 비율보다 사전 녹화분 비율이 더 높아졌다. ‘사전 녹화’는 보통 아이돌 그룹이 컴백해 특별한 무대 연출이 필요하거나, 불가피한 스케줄이 있을 경우 진행되는데 ‘아이돌 팬덤’이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보는 스케줄이다.

[사진 = MBC MBigTV '쇼 음악중심' 비하인드]
[사진 = MBC MBigTV '쇼 음악중심' 비하인드]

 

# '사녹'은 언제부터? - 사녹의 어제와 오늘

방송국의 사전녹화 시스템은 '문화 대통령' 서태지가 처음 만들었다. '서태지와 아이들'로 가요계에 큰 충격을 주고 1996년 돌연 은퇴한 서태지가 2000년 록밴드로 컴백하면서 밴드 세팅과 현장 분위기 등을 이유로 "미리 무대를 녹화하겠다"고 요구한 것.

당시 MBC는 이를 받아들여 여의도 MBC 공개홀에서 '첫 사전녹화'를 진행했다. 서태지는 방송국 스튜디오 이외에도 클럽 분위기의 외부 홀, 대규모 야외에서 진행한 공연을 녹화해 방송으로 내보내며 방송계에 '사전녹화'라는 새로운 길을 열었다.

서태지 팬들을 비롯한 과거 팬들은 사전녹화 시간에 맞춰 방송국 앞에 선착순으로 줄을 서 기다린 후 정원이 차면 안타깝게도 '사녹'을 관람하지 못한 채 발을 돌려야 했다.

이후 동방신기를 대표로 하는 2세대 아이돌의 데뷔와 함께 온라인 팬카페를 기반으로 하는 팬클럽 문화가 자리 잡히면서 '사전녹화' 시스템은 조금 더 체계적으로 변했다.

요즘 사전녹화는 미리 온라인 신청을 받아 관객 명단을 구성한다. 미리 공지한 시간에 맞춰 방송국 앞에서 팬 확인 절차를 거친 뒤 명단 순번대로 줄을 서서 기다린다. 스튜디오에 입장하면 1~2회의 리허설과 본 녹화를 관람할 수 있다. 스튜디오 안에서 사진 촬영과 녹음 등은 금지돼있으며, 만약 촬영을 하다 적발되면 바로 퇴출당한다. 일부 소속사에서는 "촬영 적발 시 가수 및 팬클럽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고 명시하기도 한다.

[사진 = 모 아이돌 그룹 사전녹화 참여 공지]
팬들은 해당 가수의 최근 발매 앨범, 팬클럽 가입 카드와 신분증, 음원 구매 내역서 등을 갖춰야 관객 명단에 1순위로 오를 수 있다. [사진 = 모 아이돌 그룹 사전녹화 참여 공지]

 

# 사녹 필수품은 간이 의자? - 새벽 4시 집합에 딜레이까지

음악방송은 '새벽 사녹'이 다반사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사전녹화 시간과 참여 인원은 방송국에서 공지한다"며 "음악방송에선 컴백하는 가수의 노래를 2~3곡 정도 소개하고 이 중 일부를 '사녹'으로 대체한다. 생방송 시간은 정해져 있기 때문에 컴백 팀이 너무 많을 경우 '사녹' 시간이 새벽이나 전일 늦은 밤으로 당겨지는 편"이라고 전했다.

최근 컴백해 활동 중인 아이돌의 '사녹'에 자주 참여했다는 A씨는 "새벽 4시에 집합하라고 공지된 녹화에 참여하기 위해 늦은 시간 택시를 타고 방송국에 와야 했다"고 밝히면서 "어린 학생들이나 지방에 사는 팬들의 경우 막차를 타고 방송국 근처로 와 24시간 패스트푸드점 등지에서 대기하는 경우도 많다"며 걱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새벽 사녹'과 더불어 기약 없는 기다림이 잦다는 점도 문제다. 대부분의 소속사는 녹화 시작 시간을 공지하지만 “방송사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고 명시한다. A씨는 "이날 새벽 4시에 인원 확인을 시작해 새벽 6시 반 경에 녹화를 시작했다. 딜레이가 있을 경우 보통 예정 시간에서 1~2시간 미뤄진다"면서 “대기 시간이 길 경우에 대비해 '간이 의자'를 챙기는 사람도 많다. 여름엔 손 선풍기, 겨울엔 핫팩과 담요가 필수품"이라고 덧붙였다.

'사녹' 딜레이로 한겨울에 4시간까지 대기해 본 적이 있다는 B씨는 "응원하는 가수를 위한 마음으로 딜레이가 길어져도 웬만하면 참고 기다린다. 방송국 관계자한테 밉보였다가 가수가 괜히 불이익을 당할까 두렵다"고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사녹’에서 팬이 질서를 어지럽히거나 소란을 일으키면 방송사에서는 본방송을 관람할 수 있는 인원을 줄이는 등의 불이익을 준다.

[사진 = 유튜브 Mnet Kpop 채널 '엠카운트다운' 사전녹화 비하인드]
[사진 = 유튜브 Mnet Kpop 채널 '엠카운트다운' 사전녹화 비하인드]

 

# '사녹', 이렇게 힘든데 왜 가?

집합 시간이 버스도 안 다니는 늦은 시간, 해도 안 뜬 이른 시간인 경우가 다반사에 심지어 입장까지 몇 시간을 기다리는 경우가 빈번하다는 걸 알면서도 팬들은 '사녹'에 간다. 가수를 직접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단 5분이라도 가수를 보고 싶다는 일념으로 매주 방송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1년 째 한 신인 그룹의 ‘사녹’에 꾸준히 출석하고 있다고 밝힌 B씨는 “응원해주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크다”면서 “물론 가수를 가까이서 보고 싶은 마음으로 가기도 하지만 ‘사녹’ 인원이 적으면 가수가 실망하거나 아쉬워할까봐 최대한 자주 가려고 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밤낮없이 열심히 응원해주는 팬들을 위해 기획사는 '출석 이벤트'를 통해 미공개 사진 등 경품을 증정하거나, 녹화 이후 방송국 근처 공원에서 '미니 팬미팅'을 진행해 팬들을 직접 만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 커피차나 간식차를 빌려 기다려 준 팬들을 위해 음료나 간식을 '역조공'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역조공'이란 팬이 연예인에게 주는 선물을 뜻하는 '조공'의 반대 개념이다. ‘역조공’을 기획한 경험이 있다고 밝힌 한 기획사 관계자는 "'팬 서비스'의 일환으로 준비하는 것"이라며 “여러 가지 다양한 이벤트를 하려고 노력한다”고 전했다.

간절한 '팬심(心)'을 이용해 ‘원하는 그림’을 얻는 방송사와 그런 팬들의 마음을 달래려는 기획사 사이에서 팬들은 오늘도 응원봉을 들고 첫 차를 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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