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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초점] 테니스 간판 정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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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Q초점] 테니스 간판 정현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 김의겸 기자
  • 승인 2019.11.29 16: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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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충동=스포츠Q(큐) 김의겸 기자]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라는 혜민스님의 유명한 저서가 있다. ‘테니스의 왕자’ 정현(23·제네시스 후원)은 부상으로 반 시즌을 날리면서 내적으로 한층 성숙해졌다. 

“최근에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좋았다면 만족할 수 있어 어릴 때로 돌아간 것처럼 기쁘다. 즐겁게 테니스하고 있다”는 그의 말에 많은 것이 담겨있다. 

정현은 29일 서울 신라호텔 영빈관에서 후원사 제네시스가 개최한 기자간담회 및 팬미팅을 통해 한해를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올 시즌 시련은 그에게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와 같았을까. 정현의 표정이 밝아보였다.

지난해 12월과 비교하면 세계랭킹이 많이 떨어졌지만 정현의 표정은 더 밝아보였다. [사진=제네시스 제공]

정현은 지난해 1월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인 호주오픈에서 4강에 올랐고 남자프로테니스(ATP)랭킹을 19위까지 끌어올리며 톱클래스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후 고질적인 발바닥 부상으로 고전했고, 올해 상반기에는 허리 부상으로 제대로 투어일정을 소화하지 못했다.

지난 2월 ABN 암로월드 챔피언십 이후 재활에 매진했다. 7월 청두 챌린저를 통해 5개월 만에 복귀하기 전까지 상반기 내내 코트에 서지 못했다. 

하지만 하반기에는 꾸준함이 돋보였다. 청두 챌린저 우승을 시작으로 이어진 요카이치 챌린저에서도 허벅지 통증으로 8강에서 기권하기 전까지 7연승을 달렸다.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였던 US오픈에서 3회전에 진출, 개인 최고 성적을 냈다. 라쿠텐오픈 8강, 이스트방크오픈 16강 등 괄목할만한 상승세를 그리며 시즌을 마쳤다.

정현은 “10점 만점에 5점주고 싶은 시즌이다. 부상으로 반 정도 못 뛰었지만 나머지 반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태도로 잘 임했고, 심적으로도 성숙한 것 같다”며 스스로 가장 칭찬하고 싶은 부분으로 정신력을 꼽았다.

더불어 “다음 시즌에는 몸 관리를 더 잘해 부상 없이 오랫동안 코트에서 경기하는 모습 보여드리고 싶다. 경기 내적으로는 서브와 리턴, 체력을 보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빠른 시일에 교정하기는 쉽지 않다. 꾸준히 멀리보고 보완해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정현은 상반기 부상을 딛고 후반기 부활 조짐을 보였다. [사진=뉴시스]

후반기 윔블던 3회전에서 세계랭킹 1위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자웅을 겨루고, 일본오픈에서 2014 US오픈 챔피언 마린 칠리치(크로아티아)를 제압하기도 했다. 몇몇 명승부 중에서도 페르난도 베르다스코(스페인)를 상대했던 윔블던 2회전은 그가 정신적으로 강인해졌음을 대변한 한판이었다.

세트스코어 0-2에 3세트 매치포인트까지 내줬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극적으로 기사회생하며 3시간 22분 혈투 끝에 역전승을 거뒀고, 나달을 상대할 기회를 따냈다.

그는 “베르다스코와 경기 0-2에서 역전했던 경기도 기억에 남고, 큰 경기장에서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으면서 나달과 경기했던 것도 기뻤다. 한 번도 이겨본 적 없던 칠리치를 이긴 일도 생각난다”고 했다.

특히 베르다스코와 붙었을 때 일군 드라마는 ‘정현만 포기하지 않았던 경기’로 불리며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는 “1, 2세트 힘들게 풀어나가 오늘 경기 어렵지 않나 생각했다. 하지만 경기는 5세트까지다. 끝나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많은 팬들도 오신 만큼 어떻게든 이길 방법을 생각하면서 임했다”고 돌아봤다.

정현이 부상으로 주춤하며 세계랭킹 100위 밖으로 밀려 나간 동안 1살 동생인 후배 권순우(당진시청·CJ제일제당 후원)가 무섭게 치고 올라왔다. 정현은 올해 1월 세계랭킹 25위로 시작했지만 현재 129위다. 반면 239위로 이덕희(당시 236위)보다도 뒤에 있던 권순우가 각종 대회에서 활약하며 88위까지 점프했다.

정현(왼쪽)은 2연속 대역전극을 거두더니 윔블던 3회전에서 '흙신' 라파엘 나달과 격돌할 기회를 잡았다. [사진=USA투데이스포츠/연합뉴스]

이제는 정현뿐만 아니라 권순우까지 세계의 주목을 받으며 한국 남자테니스를 이끌고 있다. 상반기 마음고생이 심했던 정현이 조바심을 느낄 법도 하지만 그는 선배이자 동반자다운 현답을 꺼내놓았다.

“나를 포함해 (권)순우나 어린 선수들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순우와는 국내에서 같이 훈련도 하고, 외국에서는 팀과 팀으로 뭉쳐 밥도 먹는 사이다. 앞으로 투어 대회에서 만나는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급격한 오르막길을 거침없이 내달렸던 그는 부상 악령에 시달리고, 브레이크를 잡을 틈도 없이 무서운 속도의 내리막길도 지나면서 한층 성숙해졌다. 

“테니스를 대하는 마음가짐이 예전처럼 돌아갔다는 느낌이다. 작년 호주오픈 잘하고 나서 부담감과 압박감도 있었는데, 현재는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과정이 좋았다면 만족할 수 있어 어릴 때로 돌아간 것처럼 기쁘다. 지더라도 과정이 즐거워서 최근에는 테니스를 즐기고 있다”는 그의 말에 그가 최근 심적으로 얼마나 안정됐는지 고스란히 나타난다. 

정현은 “내년에는 좀 더 성숙하고 멋진 모습으로 경기할 수 있는 선수로 기억됐으면 좋겠다. 또 운동선수라면 당연히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을 거라 생각한다. 기회가 된다면 태극마크 달고 경기에서 이기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

국내에서 잠시 휴식 중인 그는 이제 태국 방콕으로 건너가 동계훈련에 돌입,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 호주오픈으로 전세계에 이름을 알린 이듬해였던 2019년. 그에게는 구기종목에서 자주 쓰이는 ‘2년차 징크스’와 같았던 해였을지도 모르겠다. 즐기는 자가 노력까지 하면 거칠 게 없다. 심적으로 굳건한 선수는 숱한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는 법이다. 2020년 정현의 비상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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