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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울버햄튼 식 '늪 축구', 완성까지 2%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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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울버햄튼 식 '늪 축구', 완성까지 2% 부족했다
  • 김준철 명예기자
  • 승인 2020.01.05 14: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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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Q(큐) 김준철 명예기자] 울버햄튼 원더러스 FC(이하 울버햄튼) 특유의 끈끈한 축구가 또 한 번 몰리뉴 스타디움을 수놓았다. 인상적인 경기력에 비해 무승부라는 결과물이 다소 아쉬운 성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울버햄튼은 5일 오전 2시 31분(한국시간) 몰리뉴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9-20시즌 잉글랜드 FA컵 64강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FC(이하 맨유)전에서 0-0 무승부를 거뒀다. 전반전 상대 공세를 잘 막아내고, 후반전 반격에 나섰지만 결정적인 한 방이 부족했다.  

맨유 수비진 사이를 뚫는 울버햄튼 트라오레 [사진=연합뉴스]
맨유 수비진 사이를 뚫는 울버햄튼 트라오레 [사진=연합뉴스]

이번 경기를 앞두고 울버햄튼에 거는 기대감은 높았다. 직전 라운드였던 왓포드전에서 1-2 패배를 당했으나, 최근 맨시티와 리버풀전에서 강호를 상대로 물러서지 않는 인상적인 경기력을 뽐내는 등 분명 경쟁력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또한 작년 FA컵에서 맨유를 상대로 2-1 승리를 거두며 4강에 진출한 점도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번 무승부로 울버햄튼은 체력 부담이 커졌다. 반드시 승점 3점을 확보해야 하는 뉴캐슬과 사우샘프턴 리그 2연전이 기다리고 있고, FA컵 재경기와 다음 달 에스파뇰과 유로파리그 32강전까지 잡혀 있어 선수단 피로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번 무승부가 더욱 뼈아프게 느껴지는 이유다.  

# 질식 수비와 빠른 측면 공격으로 상대 몰아친 울버햄튼  

이번 경기에서 울버햄튼은 전력 상 열세를 보였지만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가장 자신 있어 하는 플레이로 상대를 압박해가며 경기를 풀어갔다.  

울버햄튼은 역시 선 수비·후 역습에 가장 강점을 보였다. 누누 산투 감독은 전반 초반부터 수비 라인을 겹겹이 쌓는데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덴톤커와 코디, 킬먼이 버티고 있는 스리백이 라인을 좀처럼 올리지 않고 최후방 라인을 뒤로 물렸고, 양측 윙백인 도허티와 비나그레도 수비 시에는 빠른 전환으로 파이브백을 만들었다.  

이처럼 울버햄튼의 촘촘한 수비는 최근 밀집 수비에 고전했던 맨유를 상대로 좋은 효과를 냈다. 이날 경기에서 맨유는 유효 슈팅을 단 한 차례도 성공시키지 못하는 등 전반적으로 답답한 공격을 이어갔다. 측면과 중앙을 가리지 않고 공격수들이 상대 수비 라인을 깨기 위해 공격을 끊임없이 시도했으나, 득점으로 이어질 만한 찬스 자체가 많지 않았다. 즉, 울버햄튼의 수비력이 그만큼 상대 공격을 잘 묶어냈다는 방증이었다. 

울버햄튼은 여기에 올 시즌 주로 사용해 재미를 본 빠른 측면 공격으로 맨유를 공략해갔다. 주로 3-4-3 포메이션을 사용하지만, 다수 미드필더가 중원을 장악하는 것이 아닌 윙 포워드들의 빠른 속도를 이용해 역습에 특화된 울버햄튼 공격이 상대 수비를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전반 초·중반 상대 공격을 잘 막아낸 울버햄튼은 전반전 막바지로 흘러가면서 네토와 트라오레가 좌·우에서 애슐리 영과 윌리엄스 뒷공간을 끈질기게 공략했다. 속도 경쟁에서 열세를 보인 맨유 풀백들은 무리한 반칙을 범하거나 센터백들의 협력 수비를 통해 가까스로 울버햄튼의 측면 공격을 막아냈다.  

또한 울버햄튼은 단순히 측면 스피드만 살리는 것이 아닌 공격권을 빠르게 반대로 전환하며 경기 전환 속도도 높였다. 이는 맨유가 좁은 지역에서 점유율을 가져가는 상황에서 울버햄튼이 공격으로 풀어 나올 수 있는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맨유 미드필드 진 다수가 공격권을 뺏기 위해 압박을 하자 울버햄튼 선수들은 빠르게 공격 방향을 전환해 압박에서 벗어났고, 수비 숫자가 적어진 맨유 후방을 노리는 공격이 날카로움을 더했다.  

# 결정력 부재와 무리한 플레이에 발목 잡힌 울버햄튼 

프리킥을 시도하는 울버햄튼 사이스 [사진=연합뉴스]
프리킥을 시도하는 울버햄튼 사이스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울버햄튼은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축구를 구현하고도 미완에 그치며 아쉬움을 보였다.  

우선 결정력 부재가 가장 컸다. 날카로운 측면 공격까지는 좋았으나, 측면 돌파 이후 확실히 마무리 지을 수 있는 공격이 원활히 이뤄지지 못했다. 측면에서 상대 페널티 박스로 올라오는 크로스 정확도가 현저하게 떨어졌고, 침투하는 2선 미드필더 숫자도 부족했다. 애슐리 실이 최전방에서 맥과이어와 린델로프의 견제에 꽁꽁 묶이며 네토, 트라오레와 공격 패턴을 만들기 어려웠다. 울버햄튼은 역습에서 좋은 속도감을 유지해 놓고도 아쉬운 마무리로 맨유 수비진과 로메로 골키퍼를 뚫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결국 답답함을 느낀 누누 산투 감독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히메네즈를 투입해 공격진 변화를 꾀했지만 결정력은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히메네즈가 2선과 최전방을 가리지 않고 활동량을 늘리며 상대 수비를 끌고 다니는 효과를 내 전반전보다 다양한 공격 옵션을 구축하는 데까지 성공했으나, 맨유 골문은 끝내 열지는 못했다.  

후반 31분 도허티가 상대 골망을 흔들고도 이전 상황에서 핸드볼 파울이 선언됐고, 후반 35분 히메네스의 강한 무각 슈팅 역시 골대를 맞고 나왔다.  

수비 지역에서 무리한 빌드업 또한 발목을 잡았다. 덴톤커나 코디 등 울버햄튼 중앙 수비수들이 보다 안전하게 공을 처리하는 것이 우선적이었지만 오히려 무리한 드리블이나 패스를 시도하며 위험 지역에서 공격권을 뺏겼다. 맨유 미드필드진이 촘촘히 라인을 이루고 있었기에 공을 잡은 수비수들이 직접 그 사이를 빠져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오히려 상대 수비 라인 뒤를 돌아가는 애슐리 실을 목표로 길게 걷어 내거나 측면에 넓게 벌리고 있던 도허티나 비나그레에게 공을 연결하는 편이 위험 상황을 최소화하는 방안이었는데 드리블과 패스 줄기가 부정확했다.  

이는 자신들의 역습 속도를 떨어뜨리는 동시에 맨유 공격진 숨통을 틔우는 결과를 낳았다. 맨유는 공격 시 공을 뺏기면 곧바로 페레이라와 마티치, 마타 등이 중원에서 수비 라인을 형성했다. 굳이 수비 라인을 뒤에서 형성하지 않아도 울버햄튼 수비수들이 실수를 범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후반 35분 래시포드의 골대를 맞는 슈팅 역시도 울버햄튼 수비진의 무리한 빌드업이 원인이었다. 따라서 울버햄튼은 치명적인 몇몇 실수로 인해 경기를 보다 주도적으로 끌고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놓친 셈이 됐다. 

빡빡한 ‘박싱데이’ 일정을 성공적으로 처리한 울버햄튼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많은 경기를 치르는 과정에서 결과물을 내지 못한다면 선수들이 체력적으로도, 심적으로도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경기에서 노출한 문제점들을 보완해 그들만의 ‘늪 축구’를 완성시키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만 이후 일정에서 반전을 꾀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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