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Q(큐) 안호근 기자] 티에리 앙리와 아르센 벵거 전 감독이 이끌던 2003~2004시즌 아스날은 무패로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우승을 차지했다. 풋볼리그(EPL 전신) 원년이었던 1888~1889시즌 프레스턴 노스 엔드 이후 끊겼던 무패 우승 기록을 세운 기념비적 시즌이었다.
그리고 16년 만에 또 다른 무패우승팀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는 아스널의 라이벌 리버풀. 1992년 EPL 출범 후 단 한 번도 정상에 오르지 못했던 이들이지만 가장 완벽하게 우승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고 있다.
리버풀은 25일(한국시간) 영국 리버풀 안필드에서 열린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 2019~2020 EPL 홈경기에서 3-2 역전승을 거뒀다.
26승 1무(승점 79)라는 압도적 성적으로 1위를 내달리고 있는 리버풀이다. 2위 맨체스터 시티(승점 57)과 차이는 한참 벌어졌다. 펩 과르디올라 맨시티 감독마저 우승 도전은 물건너갔다고 인정할 정도. 이제 시선은 리버풀의 무패 우승으로 옮겨지고 있다.
집중력이 빛난 경기였다. 전반 9분 조르지니오 바이날둠의 헤더 선제골과 2-2로 팽팽하던 후반 36분 마네의 결승골 모두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도전의 결과물이었다. 두 장면 모두 라이트백 알렉산더 아놀드의 집념 어린 질주와 크로스가 골로 이어졌다. 공세가 이어지던 후반 24분엔 행운까지 겹쳐지며 모하메드 살라의 슛이 상대 골키퍼 루카시 파비안스키의 가랑이 사이로 통과했다.
EPL 18연승을 이어간 리버풀은 2017~2018시즌 맨시티의 리그 최다 연승과 동률을 이뤘다. 구단 최다인 홈 연승(21경기) 경신에도 한걸음만 남겨두게 됐다.
자연스레 16년 전 아스날과 오버랩된다. 당시 아스날은 앙리와 데니스 베르캄프를 위시한 공격과 이들을 돕는 프레드리크 융베리, 로베르 피레, 중원을 탄탄히 지켜주는 파트리크 비에이라. 후방엔 숄 캠벨과 콜로 투레 등 탄탄한 스쿼드를 구축했었다.
결과는 리그 38경기 중 26승 12무(승점 90) 무패 우승, 기존의 것과 다른 황금색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당시 아스날이 좀처럼 패할 것 같지 않은 느낌을 주는 팀이었다면 올 시즌 리버풀은 도저히 꺾을 상대가 보이지 않는, 더 강력한 팀으로 평가받는다. 11경기를 남겨뒀지만 벌써 승점 80에 근접했다. 지난해 10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원정에서 비겼던 게 옥에 티일 정도.
마네-호베르투 피르미누-살라로 이어지는 공격 삼각편대 ‘마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파괴력과 호흡을 보여주고 버질 반다이크가 이끄는 수비는 경기당 0.63실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으로 철벽을 세우고 있다.
엄청난 압박을 바탕으로 한 프레싱 축구에서 중원을 책임지는 조던 헨더슨, 파비뉴, 바이날둠, 제임스 밀너 등도 빼놓을 수 없고 리버풀의 자랑인 좌우 풀백의 매서운 공격력도 리버풀을 유럽 챔피언으로 만든 동력이었다. 이젠 오랜 숙원인 리그 우승을 가장 완벽하게 마무리할 준비를 하고 있다.
리버풀을 위협할 팀이 있을까. 오는 4월 6일이 최대 고비가 될 수 있다. 맨시티 원정경기인데, 맨시티로서도 우승은 포기했지만 마지막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리버풀전 사력을 다할 가능성이 크다.
5월 2일 아스날전도 빼놓을 수 없는 빅매치다. 프리미어리그 출범 이후 유일한 무패 우승팀으로 남고 싶어하는 아스날로서는 리버풀의 성적표에 유일한 패배를 장식하려 달려들 것이다. 또 일주일 뒤(5월 9일) 치를 첼시전도 리버풀로선 쉽게 볼 수 없는 고비다.
그럼에도 리버풀 팬들의 의심은 크지 않다. 어느 팀보다도 완벽하고 부족할 게 없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헨더슨이 부상으로 3주간 결장이 예상되지만 그 외엔 큰 구멍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강점이다.
우승은 기정사실화되고 있지만 16년 만에 무패로 정상에 설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것 또한 사실이다.
위르겐 클롭 리버풀 감독은 경기 후 영국 스포츠매체 스카이스포츠와 인터뷰에서 “이번 시즌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모든 건 우리 모두의 노력 덕이다. 지금까지는 매우 좋다”며 긍정론을 보였다.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리버풀의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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